또 공약 후퇴? 알맹이 빠진 물적분할 대책에 기업들 꼼수 남발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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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분할에 풍산·DB하이텍 주주, 단체행동 시동
‘신주인수권 부여’ 빠진 대책, 실효성 논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적분할 이슈가 또 다시 주식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기업의 물적분할 움직임에 풍산과 DB하이텍 주주들이 단체행동에 나서기 시작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일반주주 보호방안이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신주인수권 부여’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에 주주 가치 훼손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풍산 소액주주 연대는 지난 16일 풍산 본사에 10월31일 임시주주총회에 상정할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지난 7일 방산사업 물적분할을 공시한 기업에 대한 단체행동이다. DB하이텍 주주들도 주주 결집을 위해 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DB하이텍은 7월 시스템 반도체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설계(팹리스)를 담당하는 사업부의 분사를 검토한다고 공시했다.

주주들의 단체행동의 핵심은 기업의 일방적인 물적분할이다. 알짜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모회사 소액주주들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LG화학의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으로 극에 달한 바 있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상장 기업의 주주가 물적 분할에 반대하는 경우 기업에 주식을 매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당국은 매수가격은 주주와 기업 간의 협의로 정하기로 했지만 불발될 경우 이사회 결의 2개월, 1개월, 1주일 전 주가를 가중평균해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식매수청구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물적분할을 앞두고 기업이 고의적으로 장기간 주가를 억누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저평가된 가격으로 주주를 내보내면서 지분을 더욱 확보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단팥빵이라고 하면서 팥은 빼고 주는 격”이라며 “결국 사업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매수가격을 시장가격이 아닌 공정가액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과 같은 주주 환원 정책 없이 낮은 주가를 유지하다가 그 가격에 팔고 나가라고 하면 주식매수청구권은 결국 주주를 축출하는 수단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다”라며 “주식의 거래가격이 아니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산정한 공정가액으로 기업이 매수해야 주주들이 수긍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 가운데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 일부분 ⓒ국민의힘 공약자료실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 가운데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 일부분 ⓒ국민의힘 공약자료실

“신주인수권 빠진 대책, 대증치료에 불과”

투자자들의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신주인수권 부여’ 방안이 빠졌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12월 ‘공정회복 자본시장 선진화 공약’을 발표하며 “앞으로는 신사업을 분할해 별도 회사로 상장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당국 발표에서는 빠졌다.

전문가는 신주인수권 부여가 빠진 이번 대책이 열이 오른다고 해열제를 처방하는 대증 치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물적분할 논란은 결국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희석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탈퇴할 권리만 부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상법 418조를 피하기 위해 인적분할 대신 물적분할을 택하는 것인데 이는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시킨다”며 “현재 한국 기업 지배구조상 신주인수권을 모회사 주주에게 부여하는 것은 기업 반발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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