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위기보다 심각한 저출산 위기 [쓴소리 곧은 소리]
  • 윤승모 나의미래연구소 대표/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smo80@naver.com)
  • 승인 2022.09.26 14:0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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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일본 합계출산율 1.33, 한국 0.84…이대로 가면 나라 없어져
대통령이 틀어쥐고 ‘40조원 저출산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짜야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이제 결단할 때입니다. 아니면 우리는 죽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평화로운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따내던 어린 소녀의 눈동자가 줌인 되더니 중후한 남성 목소리의 역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셋 둘 하나, 그리고 핵폭발 버섯구름.

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공공연하게 베트남전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는 등 강경 대외정책을 외쳤다. 열세로 밀리던 민주당의 린든 B 존슨 후보가 이에 대항해 내세운 1분짜리 TV광고가 바로 ‘데이지 소녀’였다.

1964년 미국 대선에서 존슨 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가져온 선거광고 방송. 데이지 꽃을 따는 소녀(왼쪽)와 핵무기 실험 장면을 대비했다. 지구 멸망의 묵시록적 메시지로 유권자의 공포심을 자극한 게 존슨 대통령의 몰표 효과로 이어졌다.ⓒ유튜브 캡처

1분짜리 핵폭탄 광고, 1964년 미국 대선 뒤집어

핵폭탄 사용의 용인은 나라의 미래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는 이 정치 광고 메시지는 미국인에게 일대 쇼크로 다가왔다. 존슨 후보는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어 선거인단 수로 486대 52, 총투표자 대비 62% 득표, 50개 주 중 44개 주 석권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2022년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핵무기보다 더한 국망(國亡)의 위기가 눈앞에 와있다. 세계 최저로 추락한 저출산 위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0년까지 그래도 60만 명대였던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2002년 40만 명대로 뚝 떨어지더니 2017년 30만 명대, 2020년 20만 명대로 가파른 최저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인구 2명(1부부)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따지는 합계출산율은 2018년 1이 깨진 이래 현격한 차이로 세계 최저를 기록 중이다.

많은 한국인이 이웃 일본의 초고령 사회 문제를 ‘걱정’하지만 2020년 기준 일본의 출산율은 1.33으로 한국 0.84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다. OECD 국가 평균 출산율이 1.59나 된다. 일본은 바닥에서 4위다. 한국에 이어 꼴찌에서 2등인 이탈리아만 해도 1.24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없어질 게 자명하다. 9월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인구구성을 보면 15세부터 64세까지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71%이고, 노인 인구가 17.5%, 아동이 11.5%를 각각 차지한다. 그러나 2040년에는 그 비율이 각각 56.8%, 34.4%, 8.8%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지금은 현역 세대 3명이 노인과 아동 1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2040년이 되면 1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 것인가? 20년도 안 돼 병역자원이며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같은 기본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데이지 소녀’ 같은 경고음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8년 처음으로 출산율 1이 깨졌지만 당시 정권은 저출산 대책 비상국무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 선진국 위엄을 자랑하며 ‘국뽕’을 만끽하는 풍악소리만 요란했을 뿐이다. 잔칫집에 재를 뿌리는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혹자는 반론한다. 저출산 문제는 주택 가격, 여성 의식, 경쟁사회 등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수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대로 국가 소멸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합계출산율 단숨에 1.691로 끌어올릴 방법 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정부가 명운을 걸고 나서면 상당한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특히 출생아 부모에게 출산지원비를 직불하는 방식으로 가면 눈에 띄는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 독일의 경우 모든 학비 면제, 소득공제 같은 혜택 외에 아이가 25세가 될 때까지 계속 출산지원금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2021년 한국 정부가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지출한 예산은 42조9000억원. 같은 해 태어난 신생아는 26만500명이니, 신생아 1인당 1억6000만원 넘게 투입됐다. 막대한 돈이다. 이를 아이의 부모(산모)에게 직접 지급하면 어떨까.

그 효과를 짐작하게 하는 여론조사가 최근 발표됐다(시사저널 8월4일 보도). 8월1일 ‘나의미래연구소’와 한길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신생아 1인당 1억6000만원에 달하는 저출산대책비를 부모에게 일시금 또는 장기 분할 월급여 형식으로 직불한다면 아이를 새로 낳거나 더 낳을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여성(18세부터 49세)의 44.1%가 그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동연령대 남성의 긍정 응답은 53.1%였다.

희망 아이 수를 1명으로 한정하고 여성의 긍정 응답 44.1%만 따져 출산율로 환산하면 신규 추가로 0.881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를 2021년 출산율 0.81과 합하면 단숨에 1.691이 된다. 획기적이다. 필자가 주변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1인당 1억6000만원은커녕 그 반만 직불해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42조9000억원 중에는 변동할 수 없는 고정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예산 편성 지출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확실히 입증된 만큼 저출산 대책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혁신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각 부처에 배정된 예산을 다 긁어모아 가장 효율적인 집행방식을 새로 강구해야 한다. 부처이기주의의 현실을 감안할 때 예산 전면 재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지금의 저출산 위기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최대의 국가 현안이기도 하다.

차기 대통령선거 시기쯤 되면 병역자원 및 학생 부족 문제가 현실화하면서 저출산은 최대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이지만 차기 대선주자들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희망 찬 어젠다를 꺼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왜 암울한 미래를 얘기하느냐며 정치공학을 들이미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데이지 소녀’의 교훈을 되새겨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승모는 누구

20년 동아일보 기자 생활 동안 주로 국회와 청와대 등 공공 영역을 취재했으며, 이후 민간기업에서 임원을 지냈다. 현재 나의미래연구소를 운영하며 ‘자신과 국가를 위한 작은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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