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원웅, ‘유공자 논란’ 父母 이름 딴 도로명 제안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6 07:3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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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전월선 말년 생활지였던 성남시에 2020년 제안
“광기에 가까운 집착…정치적 의도 개입하면 안 돼”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자기 부모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성남시에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회장의 부친 김근수씨와 모친 전월선씨는 독립운동 행적과 관련해 논란에 휩싸여온 인물이다. 도로명에 논란 소지가 있는 부모의 이름을 명기해 본인의 ‘유공자 자손’ 지위를 공고화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사저널은 2020년 6월 김 전 회장의 광복회가 성남시에 건넨 ‘지방자치단체 관할 공공시설에 독립유공자 이름·호 명칭 사용 제안’ 문서를 입수했다. 모두 34쪽짜리인 해당 문서는 성남시를 연고로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이나 호를 도로명에 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2020년 8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안익태 친일·친나치 행적 영상 자료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성남 연고 독립운동가’ 16명에 부모 포함

문서에 나온 ‘성남시 연고 독립운동가’ 목록 16명 중에는 김근수씨와 전월선씨가 포함돼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광복군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1990년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과 애족장을 받았다.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생애 말년 생활지가 성남시 궁내동이었다는 이유로 목록에 이름이 올라갔다. 목록상 말년 생활지가 성남인 독립운동가는 윤주연 선생(1990년 애족장)과 김우전 전 광복회장(1990년 애국장)도 있다. 그 외에 목록의 다른 독립운동가 12명은 출생지 또는 독립운동 활동지가 성남으로 기록돼 있다.

광복회의 도로명 제안 근거는 국가보훈기본법이다. 이 법은 “국가와 지자체는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사랑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도로, 거리, 광장, 공원, 지하철역 등에 희생·공헌자의 이름 등을 명칭으로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8월말 기준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전국 도로명 주소를 살펴본 결과, 독립유공자 이름이나 호가 부여된 도로는 37곳(분기도로 제외)이었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경기 부천시 안중근로, 부산 기장군 박영준길, 충남 천안시 유관순길 등이다. 이는 도로명을 지닌 전국 도로 약 16만 곳에 비하면 0.1%도 안 된다. 성남시의 경우 독립운동과 관련된 도로는 3·1운동 발생지에서 유래한 ‘만세길’이 유일하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김 전 회장의 제안은 일리가 있다. 문제는 김근수-전월선씨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광복회의 제안이 있은 지 4개월 뒤인 2020년 10월, 광복회 개혁모임은 “김근수와 전월선의 독립운동 관련 공적을 분석해 봤지만 기록이 전혀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김 전 회장의 부친은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김근수 선생과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또 모친은 창씨개명을 한 데다 독립운동가인 언니 전월순(全月順)의 공적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김 전 회장은 그동안 본인의 부모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답변을 회피해 왔다”고 비판했다. 반면 보훈처는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7월 김 전 회장 부모의 독립운동 공훈기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강 교수는 “공훈기록은 사망 일자부터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라며 “보훈처로서는 이제 와 입장을 바꿀 수도 없으니 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형진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 회장은 “최근 우리가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비롯해 김 전 회장 부모의 공적을 반박할 100페이지 정도의 기록을 제출했는데도 보훈처는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보훈처에 재심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김 전 회장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부모의 거짓 과거에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로명은 도시의 상징으로 청소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코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회장이 부모의 이름을 붙이려 했던 도로가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김근수-전월선씨 말년 생활지가 성남시 궁내동이었던 점으로 볼 때 해당 지역 내 도로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수도용지를 끼고 조성된 도로가 있다. 도로명 주소는 ‘궁내로 7번길’이다. 이곳은 전씨가 생전에 산책하던 길로 알려져 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2020년 6월 성남시에 제출 한 도로명 건의안. 부친 김근수씨와 모친 전월선씨 이름이 포함돼 있다.ⓒ성남시 제공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 7번길. 전월선씨의 생전 산책길로 알려져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성남에 카페 개설” 제안도…결국 수용 안 돼

결론적으로 김 전 회장의 도로명 사용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안 검토를 맡은 성남시 토지정보과 관계자는 “당시 광복회에 서류 형태로 답변을 보내진 않았다”며 “구두로 답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광복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익명의 전직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성남시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다른 기초단체에도 (도로명)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도로명 사용 제안은 광복회가 성남시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걸 계기로 이뤄졌다. 성남시가 추진하던 ‘독립유공자 100인 웹툰 프로젝트’의 일환인 만화 출판사업을 광복회가 맡기로 한 것이다. 이때 광복회는 “성남시 중앙공원에 카페 2호점을 개설해 달라”는 제안도 건넸다. 카페 2호점이란 광복회가 앞서 국회에 연 카페 ‘헤리티지 815’의 지점을 뜻한다. 하지만 성남시가 난색을 표해 광복회는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에 카페 2호점을 열었다.

이는 나중에 김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보훈처는 8월19일 광복회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 전 회장이 광복회 카페(헤리티지 815 2호점) 인테리어 공사에 개입해 공사비 9800만원을 초과 지급했다”고 밝혔다. 공사비를 필요 액수보다 부풀렸다는 것이다. 성남시와 진행한 만화 출판사업도 지적을 받았다. “인쇄비 견적을 5억원 과다 책정했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감사 내용에 관해 검찰에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경찰은 9월14일 김 전 회장을 횡령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김 전 회장의 사업 파트너였던 은수미 전 성남시장은 뇌물공여 등 혐의로 9월16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현재 김 전 회장이 암 투병 중이라 의혹에 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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