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기획, 진부한 내용, 탁월한 선곡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4 11:0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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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류승룡·염정아의 절묘한 호흡

어쩌면 필요한 건 한 번의 도약대다. 국내에서 비주류로 평가받던 스릴러 장르가 《추격자》를 기점으로 꽃을 피웠고, 외면받던 좀비물이 《부산행》 이후 ‘K좀비물’이라는 수식어가 생길 정도로 승승장구했듯,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분야도 숨통을 틔워주는 작품이 등장하면 역전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 충무로가 《인생은 아름다워》에 주목하는 이유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장르적 기반이 취약한 뮤지컬 장르에 길을 터줄 수 있을까.

뮤지컬 영화는 충무로에서 일종의 도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성공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초기 뮤지컬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은 1975년 신상옥 감독이 선보인 《아이 러브 마마》다. 이후 오랜 시간 명맥이 끊겨 있던 뮤지컬 장르는 2006년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을 계기로 새로운 시동을 거는 듯했으나, 이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뮤지컬 영화는 역시 안 된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투자자들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작품 편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런 가운데 등판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대중에게 친숙한 인기곡들로 넘버를 구성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으로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려 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레트로로 엮은 음악 여행

두 달.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세연(염정아)에게 남은 시간이다. 두려움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온다. 남편 진봉(류승룡)을 뒷바라지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게 소홀했던 과거가 후회된다. 게다가 남편이라는 자는 아내가 아프다는데 위로는커녕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화가 잔뜩 난 세연은 자신을 위해 버킷리스트를 적어나가기 시작하고,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 정우 선배를 찾기로 마음먹는다.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세연의 요구에 당황하던 진봉은 못 이기는 척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 함께 길에 오른다.

용감한 기획에 비하면, 내용은 여러모로 진부하다. 노래에 맞춰 이야기를 짜야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핸디캡을 감안하고 살펴보더라도, 《인생은 아름다워》의 플롯은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빤하다. 서로에게 소원했던 부부가 눈앞에 닥친 이별을 빌미로 애틋해지고, 엄마에게 무심했던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순한 양이 되는 과정이 별다른 창의성 없이 수학 공식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충무로가 잘 다루지 않았던 장르를, 충무로가 익숙하게 다뤄온 시한부 판정이라는 신파적 요소와 첫사랑 찾기라는 복고적 방식으로 풀어헤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인생은 아름다워》가 노래만큼이나 힘을 준 것은 ‘레트로’다.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는 진봉과 세연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일견 강형철 감독의 《써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암투병 중인 친구를 위해 주인공 나미(유효정·심은경)가 중학생 시절 칠공주 ‘써니’ 멤버들을 찾아나서는 이벤트를 벌였듯, 《인생은 아름다워》는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친구 관계가 아니라 부부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차이인데, 영화는 진봉과 세연의 운명적인 만남-연애-행복한 신혼기-셋방살이의 추억 등을 춤과 노래에 담아 소소하게 풀어낸다.

뮤지컬 장르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냈는가는 의문이다. 최국희 감독이 밝힌 뮤지컬이란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펼쳐지는 판타지”다. 그러나 그 정의가 깔끔하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어색해지는’ 구간이 초반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덜하긴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대사와 노래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데 여러 번 실패한다. 대사 신과 노래 신 사이에 낯설기 효과가 들어간 듯, 묘하게 이질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보인다. 노래가 들어오는 타이밍이 급작스럽기도 하고, 노래하는 부분과 일반 연기하는 부분의 사운드 갭 차이가 너무 커서이기도 하다. 사운드 갭 차이는 후시 녹음과 연관이 있을 텐데, 후시 녹음 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지만 후시라는 티가 너무 나는 건 문제다. 흡사 립싱크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안기는데, 가뜩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그로 인해 더욱 인공적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신이 극 안에서 하나의 의미를 담은 드라마로 기능하지 못하고,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도 아쉬움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이 지닌 힘

그러나 《인생은 아름다워》는 음악의 매력이 뮤지컬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는 예이기도 하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라는 가사가 담긴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으로 주인공들의 상황을 짚어낸 영화는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이던 눈동자여 / 사랑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이라고 노래하는 토이의 《뜨거운 안녕》 사이사이에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에코브릿지와 최백호가 콜라보한 《부산에 가면》 등을 적재적소에 녹이면서 통속적인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마술을 부린다. 다만 40·50대 맞춤 선곡이기에, 세대에 따라 감흥의 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을 듯 보인다.

류승룡과 염정아는 가창력이 뛰어나거나 가무에 능한 배우는 아니지만, 연기력에서는 이견이 없는 배우들이다. 무거운 소재를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그려내는 게 영화의 목표 중 하나였을 텐데, 두 사람의 호흡이 그러한 의도를 능숙하게 살려낸다. 뮤지컬 영화 속 배우의 가창력을 중요시하는 관객이라면, 옹성우(세연의 첫사랑)-박세완(세연의 어린 시절)이 연기한 과거 버전이 더 흡족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수로 출발해 연기력도 인정받은 옹성우와 드라마 《땐뽀걸즈》를 통해 춤과 노래에 재능을 선보인 박세완이 호흡하는 뮤지컬 장면은 이물감 없이 사랑스럽고 흥겹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이미 발표된 인기 대중음악으로 만든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한다. 동전을 넣고 원하는 곡을 선택하면 노래가 나오는 기계인 주크박스에서 유래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확산을 이끈 일등 공신은 《맘마미아!》다. 스웨덴의 전설적 그룹 아바(ABBA)의 노래로 꾸민 《맘마미아!》는 199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고, 2001년 브로드웨이를 거쳐 현재까지 롱런하고 있다. 2008년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흥행을 기록했다.

《맘마미아!》의 인기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는데, 밴드 자우림의 노래로 만든 《매직 카펫 라이드》, 작곡가 고(故) 이영훈의 곡으로 엮은 《광화문 연가》,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의 대표곡을 모은 뮤지컬 《브라보 마이 러브》 등 수십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단일 작곡가나 가수의 곡으로 구성한 것을 ‘어트리뷰트 뮤지컬’, 여러 가수의 노래를 모아 구성한 것을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라고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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