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논의조차 못한 IRA…‘비속어 논란’에 된서리 맞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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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협상력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서 ‘찬물’
美 의회서 ‘유연함’ 요구 목소리 커지지만 효과 미지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9월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9월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산업계와 정치권의 기대를 모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논의가 결국 불발됐다. '48초' 짧은 환담으로 양국 정상 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한 데다, 윤 대통령이 미 정상과 의회를 동시에 겨냥한 '비속어' 논란에 휩싸이면서 된서리를 맞게 됐다. 미 의회를 중심으로 '한국산 전기차 차별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에 예상치 못한 논란이 워싱턴 정계를 강타하면서 법안 개정 논의에도 찬물을 끼얹게 됐다. 

26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조지아주를 지역구로 둔 미 상·하원 의원들은 최근 미 정부를 향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원(최대 7500달러)을 제외토록 한 IRA 법안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은 최근 조지아주에 대규모 전기차 공장 투자계획을 발표한 현대차에 대한 법 적용을 최대한 유연하게 해달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보냈다. 민주당 소속으로 조지아주가 지역구인 워녹 의원은 IRA 표결 과정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워녹 의원은 해당 법안이 원안대로 시행, 내년부터 현대차가 판매하는 전기차의 세액공제 혜택이 없어질 경우 그 피해는 결국 조지아주 노동자와 주민들이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방 하원 에너지 통상위원회 소속으로, 조지아주를 지역구로 둔 버디 카터 의원(공화)도 워녹 의원과 궤를 함께 하는 주장을 펼치는 등 재논의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현안이 조지아주 지역을 넘어 민주, 공화당 의원들의 공감대를 얼마나 살 수 있는지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서명까지 한 상황에서 일부 조항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한국산 차별을 최소화하려면 전방위적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뒤늦게 총력전에 뛰어든 것도 미 정부와 의회의 관심 및 지지를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예정된 점과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등 한국 입장에선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달 초에 이어 지난 21일 또 다시 미국 출장길에 오른 것도 녹록지 않은 미 현지 상황을 짐작케 한다. 

만일 법안 개정이 가로 막힐 경우 한국산 전기차는 미 현지 공장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미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성한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IRA 여파로 10만 대 이상의 전기차 수출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완성차 직전 단계까지는 한국에서 제조하고 최소한의 최종 조립만 북미에서 진행해도 세제 혜택을 받는 등 방향으로 협상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협상 채널을 최대한 가동한다면 세부내용을 조정해 나갈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월5일 방한 중인 미국 하원의원들을 만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우려를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사진은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을 만난 박 장관 ⓒ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월5일 방한 중인 미국 하원의원들을 만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우려를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사진은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을 만난 박 장관 ⓒ 연합뉴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의회의 지원사격이 절실한 시점에 순방 당시 윤 대통령의 '이XX' 발언으로 스텝이 꼬였기 때문이다. 대미 협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이 빌미를 주면서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통령실과 윤 대통령은 해당 발언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것이었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이 발언을 미 의회를 겨냥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 의원들도 개인 SNS에 해당 발언을 소개하며 윤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단 정부는 미국 측이 IRA 법안에 문제를 제기한 한국 측 입장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을 것으로 자신하는 분위기다. 

5박7일 간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IRA 문제에 대해 한국 입장을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기업에만 별도의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협의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 불발은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지만, IRA와 관련한 정부 차원의 협상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IRA 법안과 관련해 직접 미국을 찾았던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IRA에 대해 한국 측 문제 제기를 수용하는 쪽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29일 방한 예정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통해서도 IRA와 관련한 한국 입장을 적극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에 참석한 뒤 한국을 찾아 윤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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