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돈으로 세금 털어버린 집주인, 이젠 어림없다[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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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 후속조치
경매∙공매 시 당해세 우선원칙 예외 적용

앞으로는 임차인이 사는 집이 경매나 공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최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게 될 예정이다. 그동안은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을 정부가 먼저 떼간 뒤에 보증금이 후순위로 지급됐지만, 이제는 체납분만큼의 보증금을 먼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깡통주택에 들어가 대항력이 없는 세입자도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길이 열렸다.

세금고지서 등 우편물이 쌓여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 ⓒ 시사저널 박정훈
세금고지서 등 우편물이 쌓여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 ⓒ 시사저널 박정훈

 

기획재정부는 9월28일 이 같은 내용의 대책을 내놓았다. 앞서 9월1일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동으로 마련한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의 후속 조치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당해세(부동산에 부과되는 종부세, 재산세 등 국세∙지방세)를 주택임차보증금에 배분하도록 국세기본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현행 국세기본법은 경매∙공매 시 국세를 먼저 갚아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예외를 두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로 은행이 2021년 7월에 저당권을 4억원 설정한 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2021년 8월 한 세입자가 5억원을 전세보증금으로 낸 뒤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이후 집주인이 사정이 어려워져 2021년 12월 1억원의 종부세를 체납했다. 결국 이 아파트는 올해 초 경매에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가령 이 아파트가 5억원에 낙찰됐을 때, 정부가 법원칙에 따라 국세인 종부세 체납액(1억원)을 먼저 가져간다. 뒤이어 은행이 세입자보다 우선해 저당권(4억원)을 행사한다. 세입자가 저당권 설정일보다 늦게 전입신고를 해 대항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는 배당금(낙찰금)은 ‘0’이다. 즉 보증금을 모두 날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입자가 종부세 체납액만큼을 먼저 챙길 수 있다. 즉 같은 조건일 때 정부가 가져가는 체납액 1억원을 세입자의 몫으로 양보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세입자는 은행이 저당권을 행사하기 전에 보증금(5억원)의 20%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해당 아파트가 고가에 낙찰돼 저당권을 변제하고도 배당금이 남는다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더 받아갈 수도 있다.

당해세 우선 예외 적용 방식 ⓒ 기획재정부
당해세 우선 예외 적용 방식 ⓒ 기획재정부

 

전셋집에 밀린 종부세, 경매 시 세입자에게 돌려준다

다만 당장 한계는 있다. 일단 이번 조치는 종부세 등 국세에만 해당된다. 배병관 기획재정부 조세법령운용과장은 “재산세나 교육세 등 지방세의 경우 정부가 지자체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또 세입자의 확정일자 이전에 발생한 체납액은 그대로 징수하게 된다. 배 과장은 “확정일자 이전의 국세 체납분까지 양보하면 조세 권한이 은행의 채권(저당권 등)보다 밀리기 때문에 기본적인 순서는 지키되 그와 무관한 건 양보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는 전세사기에 가담한 집주인이나 악성 채무자가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체납액을 털어버리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이제는 추징 권한이 있는 국가가 조금이나마 세입자의 보증금을 지켜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세입자가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미납한 세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임대차계약서를 들고 세무서에 신청하면 체납액을 열람하는 식이다. 지금은 임차 희망자가 집주인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체납액의 열람이 가능하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체납 여부를 꼭 확인해보고 그에 따라 임대차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특약을 계약 사항에 적어 놓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체납액 징수가 미뤄지면 결국 세금을 못 걷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배 과장은 “(국세 체납분을 양보해도) 집주인의 채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다른 재산이나 소득이 포착되면 압류를 걸어서 징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개선사항을 담은 국세기본법 등 개정안을 10월 중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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