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가》, 아따 신박하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9 13: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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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낸 노래가 비기
의기양양한 패기와 기발한 아이디어 돋보여

다짜고짜, ‘나의 고백.’ 《대무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무당이라는 소재도 끌리지 않았지만, 프리스타일 굿판 대결이라는 콘셉트도 당최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소 촌스럽고(?) 전형적인 포스터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낮추게 했다. 그렇게 의무방어 태세로 극장에 들어섰는데, 웬걸. 《대무가》는 무엇을 상상했든, 그 모든 예견과 편견을 과감하게 비켜가는 ‘신박한’ 영화다. 만듦새가 매끈하다 할 수는 없지만, 의기양양한 패기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 《대무가》가 제안하는 기이한 설정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도, ‘독특한 영화 한 편 봤다’는 느낌만큼은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 《대무가》 스틸컷ⓒ판씨네마㈜ 제공
영화 《대무가》 스틸컷ⓒ판씨네마㈜ 제공

전설의 노래 ‘대무가’로 얽힌 세 명의 무당

여기 ‘단기 속성 무당 학원’이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수강료 1000만원! 이 바닥을 취업계의 블루오션이라고 여긴 20대 청년 백수 신남(류경수)은 엄마에게서 1000만원을 당겨 온다. 피 같은 돈이다. 문제는 투지만 넘칠 뿐 재능은 영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런 신남에게 무당 학원 선생은 접신을 위한 비기가 담긴 전설의 ‘대무가’를 알려준다. 대무가를 익힌 신남은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불러달라는 의뢰인 정윤희(서지유) 앞에서 드디어 접신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종되고 만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여기에서 영화는 포커스를 무당 학원 우등생인 30대 청담도령(양현민)으로 옮긴다.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타고난 공감 능력과 화려한 말발로 호스트바를 휩쓸었던 전설의 에이스. 무당 세계로 뛰어든 후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이다. 동자신을 업고 역술계를 평정한 그의 인생은 그러나 아들을 찾아달라는 신남 엄마의 요청으로 브레이크가 걸린다. 신남을 찾다가 신기를 잃어버린 것.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 ‘대무가’다.

사연 많은 무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남을 거쳐 청담도령 찍고, 영화는 이 남자에게로 달려간다. 50대 마성의 남자 쭌! 한때 무당계를 평정했으나 ‘신빨’이 떨어진 후 ‘술빨’에 ‘쩔어’ 퇴물 취급받는 무당 마성준(박성웅)이다. 그런 마성준이 지키고 싶은 여자가 있었으니, 신남의 의뢰인이었던 정윤희다. 윤희를 위해 신빨을 다시 살려야 하는 마성준에게 필요한 것? 이쯤이면 예상하겠지만, ‘대무가’다.

이처럼 ‘대무가’로 얽힌 세 사람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이가 있으니, 재개발 지구를 장악해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깡패 손익수(정경호)다. 재개발권을 얻기 위한 이주계약서 문제로 손익수는 정윤희를 협박하고, 신남과 청담도령, 마성준은 이주계약서의 행방을 알고 있는 죽은 정윤희의 아버지 혼령을 만나기 위해 한판 굿을 벌인다.

영화 《대무가》 글로벌 포스터ⓒ판씨네마㈜ 제공

힙합으로 풀어낸 한

대무가(大巫歌).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대무가’는 쿵후 영화에서 필살의 비기로 취급받는 권법과도 같다. 쿵후 영화 주인공들이 달인이 되기 위해 권법을 연마하듯, 《대무가》 속 세 명의 무당도 1등 무당이 되기 위해 대무가 수련을 한다. 권법과 다른 게 있다면? 대무가는 노래라는 것. 대무가를 통해 비상한 기운을 얻으려면, 무당들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낸 ‘나의 고백’을 노래로 완성해야 한다. 《대무가》가 흥미로워지는 건 이 구간으로, 영화는 ‘대무가’를 랩으로 풀어냈다. 신선한 발상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세 명의 무당이 함께 벌이는 대형 굿판 신이다. 종교적이지 않냐고? 살벌하지 않냐고? 힙합 신의 능력자 타이거JK, MC 메타, 넉살이 참여한 프리스타일 굿 배틀은 이것이 ‘쇼미 더 머니’인지, ‘스트릿 맨 파이터’인지 모를 흥겨움을 자아낸다. 굿판을 벌이는 세 무당의 춤사위를 보는 마을 주민들, 그러니까 단역배우들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연기가 아니다. 이 현장을 진짜 즐기고 있다.

《대무가》는 모두가 두 손 들어 환영할 영화는 아니다. 누군가는 배꼽 잡고 웃을 장면이 누군가에겐 혀끝을 찰 지점이 될 수 있다. 재기발랄한 설정과는 별도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으며, 미세하게 그어진 뉘앙스 하나를 두고 호불호가 널을 뛸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나 좀체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영화라는 점은 그 누구도 쉽게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뻔뻔할 정도로 질주하는 패기다. 청년 실업, 부동산 같은 시의성 있는 사회 현안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힙합 리듬을 극 전반에 풀어넣어 신선한 활력을 만들어낸다.

웃음을 쌓아올리는 방법도 눈에 띈다. 많은 창작자가 코미디 영화를 만들면서 쉽게 빠지는 함정은 관객은 웃지 않는데, 먼저 웃으려는 설레발이다. 상황 속에서 유머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극 전개와 상관없는 일회성 개그로 웃음을 조장하려는 강박 말이다. 《대무가》의 유머 감각이 그런 영화들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모든 유머가 영화가 세운 설정 안에 유기적으로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원초적 개그가 아니라, 편집이나 음악 같은 테크닉으로 웃음의 리듬을 쌓는다는 것도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다.

 

신명 나게 노는 배우와 감독

《대무가》에서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판을 제공받는다. 감독이 돗자리를 깔아줬으니, 그 위에서 얼마나 신명 나게 노는가는 배우들의 몫일 터. 류경수, 양현민, 박성웅의 각기 다른 개성은 ‘따로 또 같이’ 나름의 앙상블을 빚어낸다. 눈에 반항기와 순수를 동시에 품은 류경수는 캐릭터 운신의 폭이 넓은 배우임을 보여준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안에서 주로 좋은 연기를 펼쳐 왔던 양현민은 그의 재능이 다른 감독과의 호흡 속에서도 충분히 꽃피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 영화에서 박성웅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3인의 무당 중에서도 고참이지만, 영화에서도 허리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악당으로 분한 정경호도 제 몫을 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악당은 쉽게 희화화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그런 여지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극에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대무가》를 보고 나면 가장 궁금해지는 건, 감독이다. 《대무가》는 이한종 감독이 2018년 만든 동명의 43분짜리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한 결과물. 이한종 감독에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길 마지막까지 뻔뻔스럽게 밀고 나가는 대범함이 있다. 연출의 개성이 잘 잡히지 않는 공산품 같은 작품들이 허다하게 쏟아지는 상황이기에, 《대무가》 같은 작품은 반갑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그의 개성이 보이지 않는 규격 안에서 평이해지지 않길. 그런 재능을 보호해줄 제작자를 다음 영화에서도 만나길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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