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새벽 “제주살이 10년 차, 나는 템포가 느린 사람”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8 11:05
  • 호수 17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기파 배우 송새벽, 《컴백홈》으로 컴백

송새벽이 지난해 영화 《특송》 《브로커》에 이어 《컴백홈》까지 연이어 관객과 만났다. 《컴백홈》은 모든 것을 잃고 15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짠내 폭발 개그맨 기세(송새벽 역)가 거대 조직의 보스를 상속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송새벽은 특유의 나른한 말투와 묘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연기파 배우다.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 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0년 《방자전》의 ‘변학도’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시라노 연애조작단》 《위험한 상견례》 등의 작품에서 유쾌한 매력을 뽐내며 ‘코미디 장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서는 고퀄의 연기도 선보였다.

영화 《컴백홈》은 《거북이 달린다》(2009), 《피 끓는 청춘》(2014) 등 생활밀착형 유머 코드로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이연우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송새벽 외에도 ‘배테랑 배우’ 라미란, 이범수가 출연한다. 코미디부터 범죄 스릴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캐릭터 장인 송새벽을 직접 만났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그는 전날 서울에 올라와 밤잠을 설쳤다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컴백홈》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

“개인적으로 극 중 캐릭터가 저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저는 지방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가 서울 대학로에 올라온 케이스다. 이 인물도 지방에서 개그맨을 꿈꾸며 상경한 뒤 대학로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를 돌린다. 예전의 저를 보는 듯한 느낌이 친근했다. 덧붙이자면 감독님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시사회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사실 인터넷 검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가끔씩 내 이름을 검색해 보는 정도다(웃음). 사실 우리 집이 제주도에서도 시골 쪽이라 인터넷이 잘 안된다. 하하. 주변에서는 재미있다고들 해줘서 전해 듣고만 있다.”

영화를 이끄는 역할인데, 부담은 없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이끌어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역할마다 캐릭터들이 너무 잘 배어있어 내가 오히려 다른 배우들에게 의존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역할들이 다 살아있다.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작품마다 연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은 항상 있다. 대중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것이고, 그 마음을 머금고 고민하며 연기한다. 어떤 장면이든 내게 주어진 장면은 잘 표현해 내고 싶다.”

영화 속 캐릭터 중 무명배우나 신인배우 캐릭터가 종종 있다. 실제 연기를 해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저는 지방에서 극단 생활을 했고,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로에 와서 극단 생활을 이어서 했다. 그땐 모든 배우가 그랬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은 뻔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계속 설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시절이었다. 차비가 없어 명절 때 고향에 못 간 적도 있었다. 하다못해 식용유 한 통이라도 사들고 가야 하는데 그걸 못 했다. 그런 시절을 보냈다. 결혼이나 연애에 관한 생각도 없었다. 내 입에 풀칠하기 바빴던 시절이니까. 오로지 연기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마음속으로도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열정이 지금도 있나.

“상대적인 거 같다. 상황이나 여건은 예전에 비해 좋아졌지만, 과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열정이나 캐릭터에 대한 갈증 등등 그때의 에너지를 지금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잘 모르겠다.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뭔가 그때가 더 뜨거웠던 거 같다. 20대 때는 빨리 내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팔팔한 에너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라미란과 이범수도 출연한다. 호흡은 어땠나.

“글쎄, 내가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니지 않나. 일단 저는 이범수 선배와 라미란 선배의 팬이다. 특히 이범수 선배는 아주 오래전부터 코미디 연기를 했고, 저도 그의 연기를 봐왔다. 라미란 선배도 그렇다. 어떤 매력인지는 관객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라미란 선배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제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놀러 왔다. 밥 한 끼 먹자고 하시더라. 상견례를 한 느낌이랄까. 하하. 얘기도 많이 나누고 밥도 같이 먹어서 촬영할 때 한결 편했다. 주변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범수 선배는 애초에 궁금했던 선배이기도 했고, 또 조금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간 해왔던 캐릭터들이 강하지 않나. 실제로 만나 보니 굉장히 유쾌하고 농담도 많이 하신다. 촬영장에서도 그랬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영화 《컴백홈》 포스터 및 스틸컷ⓒ(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제주도 생활은 어떤가.

“정말 산속에 산다. 부락 같은 작은 마을이다. 7~8가구만 있는데, 그래도 다 젊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시내에 나가면 극장이 있어 간혹 가지만 자주 가지는 못한다. 개봉을 앞두면 사람 마음이 그렇다. 여유롭지 못하고 걱정이 앞선다. 시간은 많은데 다른 걸 못 하겠더라.”

제주도 생활에 만족하나.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처음에는 살다가 아니다 싶으면 올라가자 했는데 10년이 된 거 보니까 앞으로도 제주도에서 살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마음은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니까 장담은 못 하겠다. 제 성격이 매사에 느린 편이다. 예전부터도 빠르다는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다. 말투부터가 그렇다. 사실 지금도 빨리 말하려고 노력 중인데, 일상에서는 조금 더 느린 거 같기도 하다. 저는 템포가 급한 게 싫다. 별다른 게 제주도의 매력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살게 됐다. 살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촬영을 할 때도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제주도에 사는 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코미디 연기에 임하는 철학이 있나.

“거창한 그런 거 없다. 그저 매 장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코미디 장르라 해도 웃기려고 뭔가를 하진 않는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코미디든 다른 장르든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버하면 도리어 위험하다. 어둡고 ‘빡센’ 상황인데도 뒤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울 때가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인생의 모토나 좌우명도 궁금하다.

“없다. 하하. 저는 단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안 그래도 단순한데 머리가 복잡해지면 참기 힘들어진다. 단순한 템포가 저에게 맞다. 그래야 편안하게 사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한다. 멀티 플레이어들이 간혹 부럽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론을 내린 게, 더욱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주의다.”

성격상 연예계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예전에 서울 삼청동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영화 《마더》 때였던 것 같다. 너무 긴장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뭔가 들었다 놨다 하는 느낌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체하기까지 했다. 계속 연극 무대에 서다가 독립영화를 찍고 그 후에 상업영화 찍고 인터뷰를 하게 된 상황이었다. 앞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데 긴장돼서 힘들었다. 무대 인사 때도 그랬다. ‘내가 거길 간다고?’ 스스로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적응이 되더라. 물론 아직도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처음 영화를 찍을 때보다는 10여 년이 지나서인지 조금 괜찮아졌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나.

“당연히 서고 싶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오면 대학로 극단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하지만 무대에 서려면 다시 정비를 해야 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관객 앞에 서는 건 굉장히 다르다. 얘기는 계속 오가고 있다.”

오늘 인터뷰 자리는 낯설지 않았나.

“편했다(웃음).”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