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해야 할 진실 덮고 허구의 광장 지었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8 15: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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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에 무감각한 현실 지적한 현직 기자 박종인의 《광화문 괴담》

지난 5월 개방된 청와대에 가본 사람이라면 옛 대통령 관저 뒷산 절벽에 새겨져 있는 큼직한 글자 여섯 개를 보았을 것이다.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 이 글자는 1990년 청와대 신축공사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청와대 자리는 예로부터 명당’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입증한 것이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돌고 있다. 정말 풍수지리를 잘 아는 옛사람들이 그 자리가 명당임을 알아보고 바위에 새겨놨던 것일까.

광화문 괴담│박종인 지음│와이즈맵 펴냄│336쪽│1만9000원
광화문 괴담│박종인 지음│와이즈맵 펴냄│336쪽│1만9000원

‘직시하는 사실의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역사의 맨 얼굴을 낱낱이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현직 기자 박종인씨는 이를 ‘괴담’으로 규정한다. 그는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최근 《광화문 괴담》을 펴냈는데, 청와대 명당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좋은 말씀 해주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결론부터. 이 여섯 글자를 새긴 시기는 구한말 19세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탄 궁궐을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던 즈음에 누군가가 새긴 글자다. 이미 1990년 글자가 발견될 당시 결론이 난 사안이다. 그런데 호사가들은 ‘한양이 풍수에 따라 수도로 결정됐고 경복궁이 그 중심’이라는 풍수설을 근거로 다시 이를 들먹인다. 하지만, 괴담이다.”

박씨는 이념, 권력욕에 사로잡혀 조작된 수많은 괴담이 역사의 탈을 쓰고 우리 곁을 떠돌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책 제목으로 삼은 ‘광화문 괴담’은 지난 8월 월대 복원을 포함해 1068억원짜리 대규모 공사를 마친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내용이어서 눈길을 끈다.

“광화문광장 공사 배경에는 ‘정도전의 백악주산론’이 있다. 600년 전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할 때 도읍지와 궁궐을 북한산-북악산-관악산 축을 기준으로 설계했다는 이론이다. 그런 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에 북한산-북악산-관악산을 잇는 직선을 그어보면 경복궁과 육조거리는 그 축에서 동쪽으로 비껴나 있다. ‘정도전 한양 도시계획’은 선 하나만 그어봐도 알 수 있는 괴담이다.”

풍수지리로 조선 수도 한성이 건설됐는데 그걸 간악한 일제가 비틀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광화문 앞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풍수설에 입각한 논리는 근거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광장 복원을 주도한 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관련 내용을 다 찾아본 건 아니니 풍수상의 근거가 없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박종인씨는 공사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풍수지리 주장이 근거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전설도 사람들이 믿으면 진실이 된다”고 말했다.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박씨는 의도적이거나 왜곡된 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전문가들이 무책임하게 유통시킨 가짜뉴스부터 애국적 영웅담까지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역사를 파헤친다.

“괴담은 재미있다. 잘 짜인 스토리보드와 적당한 반전, 소름 끼치는 결론이 융합해 읽는 이를 흥분하게 만든다. 그런데 ‘진실’은 그렇지 않다. 재미가 없다.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돌 더미와 철근 덩어리처럼, 철거당한 폐가 속에서 사실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재구성해야 진실은 보인다. 그러니 지저분해서 보기도 싫은 것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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