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죽은 자의 땅…전두환 집안 재산의 미스터리[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1 07:3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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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장인 故 이규동 소유 수십억짜리 서초동 도로…세무상 문제 없지만 주인도 없어

서울 서초동 1628-67번지. 서울교대 맞은편의 주택가를 끼고 도는 약 100m 길이의 1차선 도로다. 아주 평범한 아스팔트 도로지만, 서초동 한복판답게 그 가치는 만만치 않다. 올해 기준 ㎡당 개별공시지가는 309만7000원으로 총 지가는 12억여원(392.8㎡)에 달한다. 그런데 등기상 이 도로의 절반이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소유주는 망자(亡者)다. 그 주인공은 대한노인회 회장을 지낸 고(故) 이규동씨다. 전두환의 장인이자 이순자의 친정아버지다.

9월27일 현재 서초동 1628-67번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도로의 총 면적 392.8㎡ 중 223.6㎡(56.9%)가 이규동씨 명의로 돼있었다. 나머지 169.2㎡(43.1%)는 전두환씨 소유였지만 2005년 검찰이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류해 경매에 내놓았다. 지금은 일반인 정아무개씨 명의로 돼있다. 원래 전씨는 이 도로 전체를 1975년 이씨로부터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면서 1986년 지분 일부를 이씨 앞으로 넘겼다. 이씨는 2001년 사망했다.

9월27일 서울 서초동 1628-67번지 도로. 전두환 장인 고(故) 이규동씨가 소유주로 돼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9월27일 서울 서초동 1628-67번지 도로. 전두환 장인 고(故) 이규동씨가 소유주로 돼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이규동 자녀, 20년째 상속등기 안 해

왜 죽은 지 20년이 넘도록 소유주가 바뀌지 않고 있을까. 상속등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소유권이나 지상권 등 부동산 등기에 의해 공시되는 권리가 피상속인(상속을 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상속인(상속을 받는 사람)에게 옮겨갔다는 걸 표시하는 등기다. 피상속인, 즉 죽은 사람은 당연히 상속등기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가족인 상속인이 관청에 신청하면 된다.

법무법인 금성의 박재범 변호사는 “상속등기를 하지 않았을 뿐 소유권은 이미 상속인들에게 넘어간 상태”라며 “등기상으로는 상속인과 지분율을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작고 당시 배우자가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민법에 따라 자녀들이 1순위 상속인이 된다. 그는 슬하에 1남 6녀를 뒀지만 딸 셋이 사망해 지금은 1남 3녀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따라 부동산 소유권 이전 계약을 맺고 등기신청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그러나 상속은 계약에 의한 소유권 이전이 아니기 때문에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박 변호사는 “실무에선 상속등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상속지분 갈등 때문에 유족 간에 합의가 안 돼 등기를 안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13년 전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해명문을 통해 “이규동씨가 작고하기 전까지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을 이순자 등 네 자녀가 고루 상속하도록 유언을 남겼다”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 자산도 자녀에게 고루 상속됐다면 서초동 도로의 지분 역시 균등하게 분배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민 전 비서관은 “이순자는 현재 (상속받은) 재산으로 연금보험 등에 들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 세금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걸까. 땅을 갖고 있으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 또 재산을 상속받은 시점에 취득세를 내야 한다. 모든 상속재산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상속세 부담도 추가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 당국은 상속인 조회를 해서 이들에게 세금 고지서를 발송하고 있을 것”이라며 “땅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해도 친족관계를 확인해 납세 대상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민법상 상속인으로 정해진 사람들이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서초동 도로의 등기부등본에는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 내역이 없다. 압류 해지된 적도 없어 깨끗하다. 세금을 모두 제때 납부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가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등기를 하지 않은 부동산이 있다면 국가나 지자체는 대위등기(채권자가 등기의무자 대신 등기하는 것)를 해서라도 세금을 걷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굳이 상속등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단점이 있다.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속등기를 하지 않으면 매매, 양도 등 부동산 처분이 불가능하다. 부동산을 담보물로 쓰는 것도 안 된다. 결국 서초동 도로는 세무상 문제가 없지만, 겉으로는 주인이 없는 땅인 셈이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전두환, 이순자, 이규동(왼쪽부터)ⓒ시사저널 자료사진

등기 안 해 처분 불가…목적은 추징금 회피?

이를 두고 ‘추징금을 피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상속등기를 하면 소유 관계가 뚜렷해져 법률상 추징 대상이 분명해진다. 물론 서초동 도로는 전씨 명의가 아니기 때문에 추징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명의를 신탁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전씨가 토지구획정리사업 이전에 도로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전씨는 1987년 장남 전재국씨에게 감정가 2억2000만원 상당의 용평클럽 회원권을 명의신탁한 이력이 있다. 게다가 전씨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받았던 동생 고(故) 전경환씨가 1998년 “160억원어치의 명의신탁 재산과 양도성 예금증서를 갖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적도 있다.

처가 쪽도 예외가 아니다. 2004년 검찰은 전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0억원 정도가 처가 쪽 계좌로 흘러들어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씨가 대통령 재직 시절 비서관들이 관리하던 40억원대 재산을 퇴임 후 이규동에게 넘겼고, 그가 사망한 후 130억원으로 불어난 재산을 다시 넘겨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시대에 따라 부동산, 개발신탁, 기업어음(CP), 국공채 등에 투자한 ‘재테크의 고수’로 통했다. 또 그의 아들 이창석씨는 전씨의 명의신탁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일단 당장은 명의신탁이 사실로 밝혀져도 추징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몰수’ 판결을 받은 경우 사망해도 상속재산을 강제로 뺏을 수 있다. 반면 전씨는 뇌물 등 혐의로 ‘추징금’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처분해 돈으로 환수할 수 없다. 올 7월 대법원은 전씨 며느리가 가져간 연희동 자택 별채에 대한 검찰의 압류 처분을 정당하다고 확정하면서도 “전씨가 사망한 뒤로는 원고(며느리)를 상대로 추징 집행을 계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어 상속재산도 추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위헌 논란으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전씨는 남은 추징금 956억원을 끝내 내지 않고 지난해 11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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