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늪’에서 허우적대던 與, 문제는 이제부터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10: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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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가처분 기각에 한숨 돌린 국민의힘, 본격 당권 경쟁으로
당권주자 지원이냐, 신당 창당이냐… 이준석 선택지는

91일.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잃어버린 시간’이다. 7월8일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징계로 시작된 당의 지난한 갈등은 91일 만인 10월6일 법원이 이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하면서 ‘일단’ 수습되는 수순이다. 이 기간 동안 안정된 리더십이 없었던 여당은 국정 안정이 절실한 새 정부 집권 초에 사실상 제 역할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그들이 잃어버린 건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7월초부터 9월말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10%포인트 가깝게, 혹은 더 넘게 추락했다. ‘경제가 어려운데 집권여당은 싸우고만 있냐’는 국민들의 질타도 쏟아졌다. 만약 결과가 ‘인용’이었다면 이미 한 차례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복됐던 당은 더 큰 혼란을 마주할 게 뻔했다.

약 석 달 만에 ‘이준석 늪’에서 빠져나온 당내 주류는 한숨을 돌리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안도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안 소송과 추가적인 법적 대응 등 이 전 대표와의 싸움이 계속될 거란 전망 때문이다. 아울러 집권 초 여당 내 ‘권력투쟁’이 만들어놓은 빈틈을 노리는 이들이 우후죽순 등장해 더 큰 혼란이 닥쳐올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원 판단이 나온 10월6일 여의도 국회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이동하고 있다.ⓒ뉴스1

차기 당권 두고 계파 간 혼전 벌어질 듯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는 10월6일 오후 이준석 전 대표가 당을 상대로 낸 3~5차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구체적으로 △‘비상상황’ 당헌 개정 전국위원회 효력정지(3차) △정진석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정지(4차) △비대위원 6명 직무집행정지(5차) 등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당초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지난 1~2차 가처분에서 이 전 대표 손을 들어줬던 같은 재판부가 이번에도 인용 판단을 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엔 비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가처분에서 법원은 비대위 구성의 명분인 ‘비상상황’ 구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당은 2차 비대위를 구성하며 비상상황 요건에 대한 당헌을 개정했고, 이 점이 큰 차이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법조계에선 첫 가처분 판단에 대한 파장이 컸던 만큼 법원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다시 내리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의 판단이 나오자 정진석 위원장 등 비대위는 크게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가처분으로 인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던 지도체제가 결국 인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당내 분란으로 인해 오래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집권여당 지도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립해 윤석열 정부 성공을 튼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1차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주호영 원내대표도 “당이 안정을 찾아 지도체제가 구축됐다는 데서 아주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전까지 정진석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의 투톱 체제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전 대표와의 싸움이 아예 끝난 것은 아니다. 본안 소송도 여전히 남아있고, 가처분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당 윤리위 징계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 이 전 대표가 추가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다만 법원이 이번 가처분에서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만큼 첫 가처분 결과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겠냐는 게 국민의힘 내 다수의 생각이다.

그보다 당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재 여야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국정감사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다. 자칫 지도부가 또다시 뒤집힌다면 국민의힘이 정기국회에 집중할 동력을 잃을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컸다. ‘가처분 악몽’이 끝난 만큼 당이 야당과의 전투에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당내에서 읽힌다.

다음으로 국민의힘이 직면한 중요 과제는 전당대회를 통해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는 일이다. 다음 지도부는 2024년 총선을 지휘할 권한이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특히 이 전 대표를 둘러싼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주류인 친윤(親윤석열)계와 비주류 간 혼전이 벌어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미 당권 경쟁엔 불이 붙은 모양새다. 현재 자천타천 거론되는 당권 주자만 10명이 넘는다. 김기현·안철수·조경태·윤상현 의원 등은 이미 적극적으로 출마 의지를 드러내며 움직이고 있다. 이 외에도 중진그룹인 김태호·정우택·홍문표 의원,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친윤계 핵심 권성동·장제원 의원, 그리고 원외에서는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차기 전대가 열릴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내년 초가 유력하다. 일각에선 정식 지도부가 빨리 구성돼야 당의 혼란도 수습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올해 안에 조기 전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예산안 확정 등 중요한 국정 과제들이 쏠린 연말이 다가오는 만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9월2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출석한 이준석 전 대표ⓒ국회사진취재단

수사 결과 따라 윤리위 징계 역풍 가능성도

두 번째 가처분에서 패배한 이준석 전 대표의 여권 내 입지는 크게 줄어들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전 대표는 법원의 판단 직후 SNS에 “지금까지 두 번의 선거에서 이겨놓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때로는 허탈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덩어리진 권력에 맞서 왔다”며 “앞으로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가처분 결과가 나온 10월6일 오후부터 자정을 넘겨 5시간여 동안 회의를 갖고 이 전 대표에 대해 기존 6개월에 더해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를 추가로 의결했다.

법원의 가처분 기각과 추가 징계로 해석의 여지가 있었던 이 전 대표의 당권은 완전히 박탈된 셈이다. 추후 이 전 대표에겐 차기 전대에서 특정 주자를 지원하거나, 신당을 창당하는 등의 선택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신당 창당 가능성은 크지 않으리란 전망이 많다. 이 전 대표를 비롯해 그 주변인들도 과거 바른정당 때의 트라우마 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9월21일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묻는 시사저널 질의에 “전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두 차례의 중징계로 이 전 대표가 차기 총선 공천에서도 불리해졌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일단 현재로선 2022년 4월엔 총선 전엔 당원 자격은 회복된다. 차기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징계가 조기에 면제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예측도 존재한다. 아울러 추후 선거법 개정 등의 환경적 변화가 있을 경우 총선을 앞두고 창당 등의 선택지도 여전히 열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가 받고 있는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해 남은 경찰 수사 결과가 관건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전 대표를 둘러싼 의혹 중 성 접대 의혹에 대해선 공소시효 등의 이유를 들어 불송치 결론을 내린 바 있는 경찰이 향후 증거인멸 교사와 무고 등의 혐의에 대해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경우 혼란의 시작이었던 지난 7월 윤리위 징계에 대한 역풍이 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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