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 의견 듣겠다더니…반대 측 초청 안 한 ‘반쪽 간담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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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 단체들만 불러 간담회 연 뒤 “여가부 개편 시도는 긍정적” 입장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여성계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여성계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0일 '여가부 폐지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여성단체, 여성기업인 단체와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여가부 폐지안이 담긴 정부조직개편안이 나오기까지 여성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둘러 마련한 자리다. 그러나 여가부가 이른바 '거수기' 역할을 할 단체들만 불러 '반쪽자리' 간담회를 열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여가부는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단체, 여성기업인 단체를 불러 부처 폐지안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여가부 폐지를 폐지하고 기존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전하는 취지를 설명하며 "여가부 정책들이 보건복지, 고용노동 정책과 연계돼 예산이나 프로그램 내용 측면에서 현재보다 더욱 확대·강화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참석한 단체 대표들에게 "회장님들께서도 여성정책이 향후 '남녀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이은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박현주 IT여성기업인협회장, 김분희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황은숙 한부모가정사랑회장, 홍순이 한국비서사무협회장이 참석했다.

간담회 후 여가부는 참석자들이 여가부 폐지안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여가부의 새로운 개편 시도는 긍정적"이라며 "조직개편 과정에서 여성계가 불안하지 않도록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황은숙 한부모가정사랑회장은 "큰 틀에서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을 지지한다"며 "생애주기 정책이 일원화되고, 여성편향적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가부가 이번 간담회에 정부와 입장이 같은 단체들만 불러 의견을 들었다는 점이다. 이날 모인 단체들은 대부분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며, 반대 의견을 가진 단체들은 초청조차 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반대 목소리는 제외한 '반쪽짜리' 간담회라는 지적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견수렴 과정이라기보단 여가부 폐지 방침을 미리 정해놓고,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을 사람들만 불러 모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졸속 행정"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의견이 다른 사람은 얘기조차 못하는 것이 자유와 공정인가. 정부 방침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모인다면 밀실에서 하는 간담회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방식이 국민으로 하여금 더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방안과 관련해 설명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방안과 관련해 설명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과정에서 성장한 여러 여성단체들을 배제하고 거수기를 만든 정부 행태는 시민단체를 탄압했던 박정희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정부는 국민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정부가 정부의 존재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가부 폐지안이 '안갯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은 앞서 꾸준히 제기됐다. 여가부는 폐지안을 내기까지 내부 회의록이나 행정안전부와의 소통 기록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정부부처 한 곳을 없애는 작업 과정이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어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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