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떤 싸움의 기록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4 17:05
  • 호수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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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법정 드라마가 인기다. 나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영화도 보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영화보다 재미있어 영화를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내 인생이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어서 웬만한 연속극은 따분해 견딜 수가 없다.

내게 가장 재미난 드라마인 스포츠. 야구, 축구, 테니스 경기는 매일 챙겨 보지만 드라마? No No. 실생활과 동떨어진 허구를 보느라 내 눈을 버리고 싶지 않다. 법정 드라마는 더더군다나 보고 싶지 않다.

‘법정’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나는 두 번이나 재판을 했다. 한 번은 내가 원고였고, 한 번은 내가 피고였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보도한 언론사에 제기한 내가 원고였던 재판은 반론보도를 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1990년대 후반에 거북했던 그 언론사와 지금은 잘 지낸다. 생애 최초의 재판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둔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재판은 하지 않는다’였다. 재판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간 나는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고, 언론사와 적이 되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 등 손해가 막심했다.

다시는 재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황해문화에 《괴물》을 발표한 뒤 폭풍이 몰아쳤다. 2017년 9월 페미니즘 특집호를 낸다며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를 세 편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았다. 그즈음 할리우드 미투(MeToo) 뉴스가 한국에 보도되었다. CNN을 통해 할리우드 미투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했던 나는 그녀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괴물》을 썼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미투 이전에 황해문화의 청탁이 있었고, 시를 구상하는 동안 미투 소식이 한국에 상륙했고, 원고 마감은 10월20일이었던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괴물》을 다듬으며 내가 이 시를 더 일찍 써야 하지 않았나, 자괴감을 느꼈다. 2016년 고등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던 남자 시인이 여고생들을 성추행·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 사회가 벌컥 뒤집힌 적이 있다. ‘문단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어느 방송사의 기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문단 성폭력에 대해 물어보았다. 기자에게 ‘En’의 추행을 실명으로 말했고, 그는 내게 카메라 앞에서 공식적인 인터뷰를 요청했다. ‘카메라’라는 말을 들으니 겁이 났다. 내게 어떤 문학적인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데, En과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과 한판 붙으면 어떤 문학상도 타지 못할 게다. ‘문학상’에 대한 기대를 아직 버리지 못한 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피곤한데 귀찮은 일을 벌이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카메라 인터뷰를 거절했다.

남성 문인들의 성적인 괴롭힘은 한국 문단의 관행이었다. 내가 등단할 무렵인 1990년대에는 여성 시인을 기생 취급하는 전근대적인 유교문화가 횡행했다. 오죽하면 갓 등단한 신인인 내가 아래와 같은 등단 소감을 썼을까.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기고한 ‘등단 소감’에 등장하는 시인데, 시집에 넣지 못하다가 2000년에 에세이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사회평론)를 출간하며 원문을 수록했다. 고은태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증거자료의 하나로 내가 제출한 ‘등단소감’을 1심 승소 후 출간한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넣으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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