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리더-문화예술] 한준희 영화감독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0 09:05
  • 호수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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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선정 '2022 차세대리더' 100인]
[인터뷰] “작품을 만드는 건 캐릭터 통해 답을 파악하는 과정”

시사저널의 창간 기획 ‘차세대 리더 100’은 국내 언론 사상 최장기 기획인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미래 버전이다. 창간 33주년을 맞아 시사저널이 내놓는 ‘2022 차세대 리더 100’의 선정 과정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경제(기업·IT·스타트업), 사회(법조·환경·NGO·종교·의학·과학·크리에이터), 문화(예술·영화·방송연예·스포츠·레저) 각 분야에서 내일의 대한민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 100명을 추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전문가 500명, 일반 국민 500명 등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기초자료로 해서 시사저널 기자들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후보군을 압축했다. 최종적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올 한 해 미디어에 나온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국내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함께 위기감이 커지는 2022년 말. 시사저널이 제시하는 100명의 차세대 리더를 보면서, 그래도 내일을 기대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이야기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그 오래된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 탈영병 잡는 체포조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의 이야기는 폭력의 질서로 유지되는 군 조직의 폐쇄된 특수성 그 자체를 주목한다. 시스템의 기만 아래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함께 훈련하고 잠드는 이들을 방관자로 겨냥하고, 죽지 않기 위해 다치는 일뿐이다. 현실의 어둠을 정확하게 고발하면서도 보편적 공감과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 나아가 하나의 사회적 담론이 된다는 것,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열광하게 만든다는 것. 《D.P.》의 치열한 시도들이 거둔 성과다.

이 시리즈를 만든 한준희 감독(39)은 《사이코메트리》(2013)의 각본 작업 등을 시작으로 장편 연출 데뷔작 《차이나타운》(2014), 《뺑반》(2019) 등을 만들며 충무로에 안착했다. 그가 겪어온 최근 10년은 스크린과 OTT 플랫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1984년생인 한준희 감독은 그 안에서 영화와 오리지널 시리즈의 작업을 두루 겪고, 그 자신이 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 유연한 이동이 가능한 몇 안 되는 한국 영화계의 ‘허리 세대’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신예 유수민이 연출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이 공개됐다.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1~3화를 선공개한 이 작품은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한 소년이 비상한 두뇌와 심리를 활용해 싸우는 성장물로,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오는 11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D.P.》 시즌2를 한창 촬영 중인 한준희 감독도 짬을 내 부산을 찾았다. 그는 “특별히 어떤 방향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을 추구하다 보니 커리어 안에 이런저런 시도들이 쌓인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차세대 리더로 선정된 소감은.

“부끄럽긴 하지만 정말 감사하다. 나는 박찬욱, 봉준호 등 선배 감독들의 영화들을 보고 자란 ‘한국 영화 키드’다. 부족하지만 나 역시 그런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끔 부지런히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으로 일한다.”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약한 영웅》이 부산에서 첫선을 보였다. 어떻게 기획된 작품인가.

“지난해 부산영화제 즈음 첫 삽을 뜬 작품이다. 쇼트케이크(한준희 감독이 속한 제작사)가 젊은 에너지가 장점인 플레이리스트라는 회사와 손잡고 무언가 도모해 보려는 시점이었다. ‘요즘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나 《파수꾼》(2011) 같은 작품이 왜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던 시기이기도 했다. 마침 내가 원작 웹툰을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를 하면서 눈여겨봤던 단편 《악당출현》(2017)의 유수민 감독이 떠올랐다. 경험 많은 연출가보다 에너지가 들끓는 신인이 어울리겠다고 판단해서다. 마침 그도 원작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각본을 쓰면서 캐스팅을 동시 진행했고, 이후 판권 구매, 플랫폼 결정, 8개 에피소드 전체 촬영까지 딱 1년 정도 걸렸다. 물 들어올 때 노를 미친 듯이 저은 결과다(웃음).”

남성 서사는 많지만, 차별점을 가지는 시선이 없다는 데서 갈증을 느꼈다는 뜻인가.

“그렇다. 10대와 20대는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항상 욕을 먹는 세대다. 몰지각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한 이야기가 과연 있나 싶더라. 여성의 세계와는 또 다르지만 남성의 세계 역시 섬세하고 복잡하다. 관계 안에서의 질투나 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학습된 이상한 자존심도 존재하고.”

《약한 영웅》은 유수민 감독, 신예 배우들이 뭉친 프로젝트다. 《D.P.》를 성공시킨 한준희 감독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힘을 얻은 부분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역할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때 지지하고 싶은 사람들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다. 선배들에게 배운 태도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다음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유수민 감독이 그중 하나였다. 단편에서 보인 재능이 너무도 뛰어났다. 제작사 무비락과 공동 제작을 진행 중이고 내가 기획한 《파일럿》 역시 김한결 감독(《가장 보통의 연애》 연출)의 다음 작품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추진된 것이다.”

크리에이터의 개념을 쇼러너(showrunner)처럼 이해하면 될까. 그들은 각본에 참여하기도 하고, 작품 전체의 톤 앤 매너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비슷하다. 할리우드에서는 쇼러너가 자신의 지향점에 맞게 각 에피소드별 감독과 작가들을 찾는 시스템이라면, 《약한 영웅》은 감독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즉 내 비전에 연출가를 끼워맞춘 것이 아니다.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연출가의 색깔과 의중을 지지하기도 하고, 가장 좋은 결과물이 무엇인가의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크레딧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게 맞다고 본다. 《약한 영웅》은 각본과 연출, 편집에도 깊게 관여했으니 기획이라기보단 크리에이터가 어울린다고 봤다.”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다른 감독의 연출작을 제작하고, 스크린과 플랫폼을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창작자다. 스스로 자신의 포지션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몸소 겪어온 업계의 변화는 분명 드라마틱했지만, 뭔가를 일궈야 하고 어떤 모습이 돼야 한다고 의도한 행보는 아니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무식하게 일단 시도해 보는 타입이라 지금의 결과들이 나온 것 같다. 나는 내 영화 잘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요즘 콘텐츠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실은 그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스스로를 영화 만드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시리즈도 300분짜리 영화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D.P.》 시즌2를 한창 촬영 중인데.

“4분의 3 정도 찍었고, 크랭크업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 감사하게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 이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 중요했다. 만드는 사람들끼리는 ‘기분 좋게 배신하는 작품이 돼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비슷한 것의 반복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시즌2는 전작의 시간적 배경에서 거의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에피소드별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에 덧붙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쫓던 인물들은 어떻게 성장해야 할 것인가의 고민을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여섯 개의 에피소드이고, 내년 7월이나 8월쯤 공개 예정이다.”

《D.P.》는 물론이고 이전 연출작들로부터 이어지는 공통점이 보인다. 특정한 질서로 유지되는 자체적인 생태계, 그 안에서 다양한 인물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좋은 배우들을 발굴하는 눈을 지닌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맞는 것 같다. 한번은 연출부원이 ‘감독님 영화 주인공은 왜 다 대학 안 나온 애들이에요?’라고 묻더라. 인물의 학력이 부족하다고 표현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확실히 부족한 면이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모자란 것을 채워가거나, 어떤 이유로 수긍하게 되는 과정이 좋다. 새로운 배우들을 부지런히 알아가고, 공부하려 한다. 배우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다. 극장에서든 TV로든 우리는 배우를 보려고 작품을 보니까. ‘저 사람 누구야’라고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 명의 감독이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같은 줄기에서 파생되며 변주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새로울 수 있는 방식은, 결국 다양한 이들과 만나 함께 고민하고 도전해 보는 것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 좋은 기획이란 무엇인가.

“캐릭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내 인생의 변하지 않는 테마이기도 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나? 최소한 애는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작품을 만드는 건 캐릭터를 통해 그 답을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도덕적인 무언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하지 못하면 사람이 비겁해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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