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發’ 자금 경색 사태는 예견된 인재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31 16: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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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한도 육박한 한전채 발행으로 채권시장 불안 가중
정부의 “유동성 확대” 발표는 시장 불신만 키울 수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퇴하면서 영국 역사상 최단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됐다. 당원 투표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토러스 총리의 이른 퇴장은 금융시장 불안을 가져온 재정정책 때문이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었는데, 정작 정부는 대규모 감세를 추진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가져왔다. 파운드화의 대폭적인 약세와 함께 국채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장기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고 영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사태를 봉합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결국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먼 외국의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와중에 정부는 채권안정펀드 재가동과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발표했다. 흔들리는 채권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전형적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엇박자였지만 시장은 일단 정부의 대책에 대해 안도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불안하다는 심리는 계속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 자금 경색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해 주목된다. 사진은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모습ⓒ연합뉴스

금리 인상 시기에 유동성 확대, 왜?

시중금리는 기준금리 인상에 더해 채권시장 불안까지 겹치면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6%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투자자를 쉽게 찾을 수 있던 AA급 기업의 회사채도 연 6%의 금리를 제시했음에도 미달이 속출하면서 회사채 순발행은 3조원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자금 조달보다는 기존 부채 상환에 매달렸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2023년 상반기 만기 도래 회사채 규모가 6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의 자금난이 향후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이 일시에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은 강원도에서 전해진 하나의 소식 때문이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9월28일 춘천 중도에 위치한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한 2050억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이행하지 않고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에 준하는 신용도를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하는 채권이 상환되지 않음에 따라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건설을 주도한 주체다. 강원도가 44%의 최대주주고, 멀린엔터테인먼트가 22.5%, 한국고용정보가 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20년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동화 전문회사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어치의 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해당 어음에 대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섰는데, 시장에서는 해당 ABCP를 지방채에 준하는 안정적인 채권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2022년 9월20일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만기가 도래하는 2050억원 가운데 412억원에 대해서는 자체 상환이 불가능함을 강원도에 보고했다. 정상적이라면 강원도가 지급보증 약속에 따라 해당 금액을 상환하면 됐는데, 강원도는 상환 대신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지속적인 적자가 예상되는 레고랜드에 대한 비용 지원 대신 회생 절차를 통해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따라 10월5일 해당 어음은 최종 부도 처리됐다. 국채와 동일한 수준의 신용도로 여겨지던 지자체 보증 채권의 부도에 따라 이보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및 은행채 금리는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에 대한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10월17일부터 각종 공공기관의 채권 발행이 실패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등 채권시장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사실 이전부터 채권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전력의 대규모 채권 발행이었다. 한전은 연료비 상승에도 전력요금 인상이 지연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2021년 하반기부터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섰다. 망 사업자인 한전은 발전회사에 전력 구매대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채권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고 신용등급의 한전이 발행하는 채권(한전채) 물량이 매월 수조원 규모에 이르면서 회사채 및 은행채 등의 금리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됐다. 최근에는 한전의 채권 발행 규모가 법정 한도에 육박하자 법률을 개정해 추가 발행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정부 관계자의 언급이 알려졌다. 연초에 원가 상승 요인을 전력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채권 발행으로 충당한다는 결정으로 채권시장의 충격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은행권이 발행한 채권은 10월에만 15조2000억원 규모다. 10월 전체 채권 발행액의 41% 수준이다. 회사채 금리 상승과 회사채 수요 감소로 인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채권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기업대출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은행채 발행 증가는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대출 전반의 금리 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우려되면서 부동산 시행사 및 건설사의 부도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자금시장은 더욱 경색되고 있다.

 

건설업계 연쇄 부도 우려도 확산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시기에 이뤄지는 유동성 확대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상황은 매우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제한된 규모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한전채 물량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 채권 발행을 줄이도록 해야 하며, 전력요금 인상 역시 빠르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전력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지방정부가 보증하고 있는 각종 개발사업의 규모 및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필요하다. 높은 신용도를 가진 지자체가 보증하는 채권의 부도가 다시 발생한다면 금융시장은 더 큰 충격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모순되는 단기 대책과 장기 대책을 절묘하게 조합해 적용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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