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DNA 입증한 김하성, 팀의 중추 되다
  •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30 13: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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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에서 ‘광탈’ 예상 깨고 잇따라 메츠·다저스 격파한 샌디에이고의 선봉장 역할
FOX스포츠 “샌디에이고 수비의 심장이자 공격의 발동기” 극찬

지난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김하성(27)은 162경기 중 117경기에 출전했다. 고정된 자리가 없다 보니 내야의 여러 포지션을 전전한 김하성은 선발 출장은 63경기에 그침으로써 99번이나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김하성은 162경기에 모두 출장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포함한 142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후반기에 휴식을 받은 날은 나흘에 불과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교체 없이 모든 이닝을 소화했다. 지난해 선발 출장률이 39%였다면, 올해는 89%였다. 그야말로 대반전인 셈이다.

샌디에이고의 김하성이 10월9일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 3차전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4회초 공격 때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어들며 득점을 노리고 있다.ⓒAP 연합

김하성 출루와 득점, 샌디에이고 승리의 보증수표

단순히 출전만 많이 한 것이 아니다. 성적도 크게 좋아졌다. 지난해 2.1에서 올해 4.9로 두 배 이상 오른 김하성의 대체선수대비승리(bWAR)는 팀 내에서 다르빗슈 유(4.5)보다 앞서고 매니 마차도(6.8)에는 뒤진 투타 통합 2위였다. 몸값이 가장 비싼 유격수인 뉴욕 메츠의 프란시스코 린도어(5.4)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올 시즌 LA 다저스를 꺾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샌디에이고의 정규시즌은 사실 실망의 연속이었다. 다저스와 19번 대결에서 14번을 패했다. 8월13일 터진 부동의 주전 유격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금지약물 적발 사태를 극복하고 힘들게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냈지만 ‘광탈’이 예상됐다. 포스트시즌의 첫 상대가 사이영상 듀오를 보유한 뉴욕 메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예상을 깨고 도합 5개의 사이영상을 보유한 맥스 슈어저와 제이컵 디그롬이 버틴 메츠를 꺾었다. 승자가 시리즈의 승리를 가져가는 3차전에서 김하성은 한국 선수 최초이자 샌디에이고 선수 최초로, 그리고 메이저리그 유격수 최초이자 7번 타자 최초로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3출루 3득점을 달성했다. 메이저리그 가을야구에서 도루에 성공한 한국 선수도 김하성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상대가 샌디에이고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정규시즌에서 내셔널리그 역대 2위 기록에 해당되는 111승을 올린 무적함대 LA 다저스였다. 샌디에이고가 1차전을 무기력하게 패할 때까지만 해도 또 한 번의 광탈이 예상됐다.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2차전. 다르빗슈가 홈런 2개를 맞아 1대2로 뒤진 샌디에이고는 3회초 김하성이 다저스의 에이스 커쇼를 상대로 선두타자 안타를 때려내고 득점에 성공하면서 시리즈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저스타디움 외야에 거위가 나타난 그 경기에서 샌디에이고는 극적으로 승리했고, 거위는 샌디에이고의 마스코트가 됐다.

4차전은 더 극적이었다. 7회초까지 0대3으로 뒤져 승리 확률이 10%로 떨어졌던 샌디에이고는 7회말 5득점을 올리고 대역전승을 만들어냈다. 무사 1, 2루에서 등장해 희생번트를 대려고 했던 김하성은 5득점의 가장 큰 분수령이 된 결정적인 적시 2루타를 때려냄으로써 감독의 강공 지시에 보답했다. 89승 팀이 111승 팀을 꺾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정규시즌의 22승 차이를 포스트시즌에서 극복한 건 106년 만에 처음이었으며, 정규시즌에서 여섯 번의 시리즈를 모두 진 팀이 포스트시즌 대결에서 승리한 건 사상 최초였다.

샌디에이고가 연봉 총액 1위 메츠와 2위 다저스를 연달아 격파하자 미국의 전국 채널이자 해당 시리즈를 중계한 FOX스포츠는 한 선수를 집중 조명했다. 김하성이었다. 샌디에이고 가을 돌풍의 주역으로 김하성을 꼽은 FOX스포츠는 김하성을 “샌디에이고 수비의 심장(defensive heartbeat)이자 공격의 발동기(offensive dynamo)”라고 표현했다. 올해 샌디에이고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휴스턴과 함께 수비(OAA)에서 메이저리그 공동 2위에 올랐다. 두 팀의 공통점은 내야 수비의 핵인 유격수를 담당하는 김하성과 제레미 페냐(휴스턴)가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아시아 출신 내야수가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에서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린 건 김하성이 처음이다.

24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꿈꿨던 샌디에이고의 뜨거운 불길은 더 크게 타오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불을 막지 못하고 꺼졌다. 샌디에이고는 1승4패로 물러났는데, 유일한 승리는 김하성이 득점에 성공한 경기였다. 1루 주자로 나가 도루를 시도한 김하성은 우전 안타가 나오자 2루와 3루를 찍고 홈으로 돌진하는 과감한 주루를 선보여 또 한 번 큰 화제가 됐다.

포스트시즌 12경기에서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이 득점한 6경기에서 5승1패, 득점하지 못한 6경기에서 1승5패를 기록했다. 꽉 막힌 경기를 김하성이 출루와 득점으로 풀어준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마차도는 김하성이 출루에 성공하자 정확한 발음으로 “사랑해”를 세 번 외쳤다.

 

“김하성보다 더 열심인 선수 본 적 있나? 나는 보지 못했다”

김하성은 FOX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보다 나아진 건 맞다. 하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하성은 “체력 유지를 위해 토할 때까지 먹었다”고 한 다르빗슈처럼 식사량을 크게 늘렸고 더 많이 운동했다. 그리고 10월이 되자 마치 3월을 시작한 사람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의 발전기였다.

그 자신은 만족스럽지 않을지 몰라도 김하성은 충분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유격수 중 한 명이었으며, 샌디에이고 54년 역사에서 3위에 해당되는 유격수 승리 기여도를 기록했다.

그동안 홈런에 집중했던 메이저리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홈런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다른 공격 옵션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베이스가 더 커지고 투수의 견제에 제한이 생기는 내년에는 김하성의 도루 능력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KBO리그에서 도루 성공률이 78%였던 김하성은 포수들이 무시무시한 어깨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 86%를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김하성의 입지는 완벽하지 않다. 샌디에이고가 무려 14년의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24)의 존재 때문이다. 도핑 테스트 적발로 80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고 자신의 가치를 크게 깎아먹은 타티스지만, 샌디에이고는 타티스를 포기할 수 없다. 3억400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비용 때문이다. 미우나 고우나 샌디에이고는 타티스와 2034년까지 함께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타티스가 포지션을 옮기지 못한다면, 김하성의 유격수 경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 그 상황을 이겨낼 것으로 보이는 김하성의 정신력을 근거로 한다. 특히 지난 2년간 김하성의 도전을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는 득점에 성공하고 들어온 김하성을 꼭 안아준 밥 멜빈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당신은 메이저리그에서 김하성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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