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장 패싱’ 조상준, 檢 출신 이시원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사의 직보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8 14: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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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최측근’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 사퇴도 檢 라인 통해 이뤄져 
“사의 표명부터 면직 처리까지 비상식적” 지적…원장과 갈등설에 비위 의혹까지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 10월26일 임명 넉 달 만에 돌연 직에서 물러났다. 조 전 실장은 검찰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사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문재인 정부 때 사건과 관련해 고강도 감찰 작업을 벌이는 등 사실상 국정원 개혁 작업을 주도한 ‘실세’로 여겨져온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가 거론되고 있으나, 김규현 국정원장과의 갈등설을 비롯해 도덕성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사직 절차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국정원 기조실장이 자신의 직속 상관인 국정원장이 아닌 대통령실에 곧바로 사표를 던졌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조 실장은 같은 검찰 출신인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이 돌연 사퇴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뉴스1

“대통령실이 원장 인사안 받아들이자 사의”

조 전 실장은 국정원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10월25일 사직 절차를 밟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과 대통령실은 “조상준 전 실장은 전날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유관 비서관은 검찰 출신 이시원 비서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김대기 비서실장 직속 조직이다. 이에 따라 조상준 전 실장→이시원 비서관→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직보 라인으로 사의 표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간에 김 비서실장에게도 보고가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윤 대통령은 조 실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만류 등의 과정 없이 수용·재가했다. 김규현 원장은 오후 늦게 대통령실로부터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과 대통령 재가 사실을 전해 들었고, 인사혁신처에 조 전 실장에 대한 면직 제청을 했다. 최종 면직은 10월26일 이뤄졌다.

조 전 실장의 사퇴 사실에 정치권은 종일 술렁였다. 그는 ‘소(小)통령’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검찰 시절 윤 대통령의 왼팔과 오른팔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받던 인사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학교 후배이기도 한 그는 1999년 검사로 임관해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대검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을 지낸 특수통이다. 2006년 대검 중수부에 파견돼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당시 수사팀의 부부장검사였던 윤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이후 ‘윤석열 라인’으로 통했다.

그는 2019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대검 형사부장을 지내며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그러나 조 전 실장은 이듬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충돌 과정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사실상 좌천됐다. 그리고 6개월 뒤 그는 사직서를 냈다. 당시 윤 총장은 그의 사직을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이번 사직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다. 조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정치 도전 과정에서도 물밑에서 조력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국정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변호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명목상 1·2·3차장과 함께 차관급 대우를 받지만, 예산과 조직 등 내부 살림을 총괄해 실질적인 국정원 2인자로 통한다. 윤 대통령이 최측근이자 검찰 출신인 조 전 실장을 기조실장에 임명한 것도 국정원 내부 개혁 적임자라고 봤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실제 눈에 띄는 국정원 정리 작업은 그가 기조실장에 임명된 직후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들은 모두 ‘물갈이’됐고, 국정원 원훈을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서 쓰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적힌 원훈석을 교체하는 작업도 있었다. 서훈·박지원 등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장들에 대한 고발 역시 조 전 실장이 주도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그런 인물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으니 정치권에선 온갖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공식적인 조 전 실장의 사직은 ‘일신상의 이유’다. 더 구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조 전 실장이 지금 입원 중이라고 하더라.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다른 이유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건강 문제를 표면상 이유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일각에선 최근 국정원이 지난 정부 관련 사정 정국에서 감사원 등 타 기관과 엇박자를 내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10월26일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김규현 원장은 국정원이 서해 피격 사건을 인지한 것은 SI(특별취급정보) 첩보를 통해서였다고 밝혔다. 첩보엔 ‘월북’이란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했다. 이는 감사원이나 수사기관 등과 차이가 있는 입장인데, 김 원장과 조 전 실장이 내부에서 ‘파워 게임’을 벌이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원장은 외교부 차관을 지낸 정통 외교관료 출신이다.

구체적으로는 김 원장과 조 전 실장이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갈등을 빚은 게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이 보도됐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아는 다른 여권 핵심 관계자도 통화에서 “김 원장과 조 전 실장이 인사 문제 등과 관련해 이견이 있었다”며 “국정원 2, 3급 인사가 상당히 지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데 막판엔 대통령실에서 김 원장의 인사안을 받아들여 조 전 실장이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대통령실

“자기 사람 믿는 尹, 즉각 수용 이유 있을 것”

다만 일각에선 조 전 실장이 오히려 윤 대통령이 바라는 수준의 개혁적 인사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면직에 경질의 성격이 다분히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 국정원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누구보다 그 의중을 잘 알고 있을 조 전 실장이 개혁에 소극적이었다는 게 이해되진 않는다. 윤 대통령도 누구보다 자기 사람을 믿는 분인데 4개월 만에 신뢰를 접은 이유가 따로 있지 않겠나”라며 “김 원장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조 전 실장 후임자로는 추미애 전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지휘했던 김남우 전 차장검사가 즉시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전임자의 갑작스러운 사퇴 직후 하루도 안 돼 후임자가 정해진 것을 두고도 이미 예견된 인사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몇몇 언론에선 조 전 실장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가 전부터 불거졌다는 관측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10월27일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조 전 실장 신변 문제에 대해 격노했다며, 신변 문제란 도덕성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조 전 실장 사퇴 과정 자체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국정원 기조실장이 원장에게 귀띔도 없이 대통령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했는데, 전화를 받은 쪽 역시 검찰 출신인 이시원 비서관이다. 공식 라인이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검찰 라인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다는 점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다소 비상식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규현 원장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 것도 검찰 출신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보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통화에서 “김 원장 말로는 대통령실의 한 비서관이 전화로 조 전 실장 사퇴 사실을 알려줬다고 한다. 이름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이건 정말 비정상적인 과정”이라고 꼬집었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검찰 출신 최측근들을 통해 기관들을 직접 장악하려다 부작용이 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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