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오른 이재용, 삼성의 공전(空轉) 끝낼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2.11.08 10: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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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매출 400조 목표했으나 현실과 차이 커
기존 사업구조 변화 및 인수합병 여부에 관심

삼성전자는 10월27일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이사회가 회장 승진을 의결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회장의 승진은 이사회의 동의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별도의 취임식이나 이벤트 없이 조용히 이뤄진 이 회장 승진을 두고 시장에선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해오고 그룹의 세대교체를 이뤄온 만큼 요란한 취임식은 불필요했을 것이란 시각과 경영 환경이 그만큼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란 해석이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현재도 삼성전자는 말 그대로 ‘잘나가는’ 기업이다. 반도체 시장 위축으로 이익은 감소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감산하지 않고 밀고 가는 전략을 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메모리 기업이다. 작년 최대 매출을 찍은 데 이어 올해는 사상 최초로 매출 300조원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기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8일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면서 파이팅 구호를 제안하고 있다.ⓒ연합뉴스

잘나가지만 ‘잘나간다’고 말 못 하는 삼성

하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매출 400조원을 달성하는 것을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목표를 이룬다면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규모의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는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2020년 삼성전자 매출은 236조원이었다. 최대 매출을 찍었던 지난해는 279조원이다. 올해도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난 몇 년간 각국이 경기부양책으로 돈을 많이 푼 탓에 삼성전자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질적 성장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변화를 이뤄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크게 반도체 등 부품, 모바일, 가전의 3가지 사업 부문을 주축으로 한다. 부품과 세트를 한 번에 운영하는 안정적인 구조로 평가받아 왔지만, 최근 몇 년 새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의 미래 성장성이라는 측면을 놓고 봤을 때 경쟁력 강화를 통한 보완과 미래 먹거리 발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가전과 모바일 부문은 시장 자체가 과거처럼 큰 성장을 기대하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고(故) 이건희 회장 시대부터 구축된 사업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도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해 엄중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과 함께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에서도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던 굵직한 경영 리스크를 끝내고 회장직에 오른 만큼, 이 회장이 ‘이재용의 삼성’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이 가장 즉각적으로 시장에 감동을 주면서 경쟁력을 강화할 선택지 중 하나로는 인수합병(M&A)이 거론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민주가 된 삼성전자 주식의 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기업 가치의 상승”이라며 “이를 위해선 제대로 된 밸류에이션을 받아야 하는데 사업구조 변화, 인수합병 등이 그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시장에서는 2016년 하만 인수 후 멈춰진 삼성전자의 M&A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 업계 인사는 “오랜 시간을 거쳐 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그룹 경쟁력에 변화를 줄 만한 큰 결정이 하나 나오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현재로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메모리 부문의 빅딜 가능성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TSMC를 제치고 1위를 탈환하겠다고 선언한 파운드리나 성장성이 좋은 차량용 반도체 부문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특히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가 50%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부문에서 삼성전자의 인수 행보가 각국의 견제를 받을 우려가 적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무리한 인수합병보다 당분간 기본 다지기에 집중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이재용 회장의 취임 일성은 “세상을 바꿀 인재를 모셔오고,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하겠다”였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당장 사업적으로 큰 변화보다는 기본기를 다지고 내년에 뉴삼성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과 더불어 사업구조 변화 역시 시장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있었던 파운드리 분사가 대표적이다. 8월30일 웨이저자 TSMC CEO는 연례 기술포럼에서 “TSMC는 상품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절대 내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며 “고객들은 TSMC에 설계를 빼앗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는데, 자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들이 나온 바 있다. 파운드리 사업을 따로 떼어내지 않는 상황이 경쟁사의 시각에서 볼 때 여전히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전실 대신할 컨트롤타워 복원 방안도 주목

이처럼 사업적으로 여러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회장으로선 그 이전에 지배구조를 손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우선 부회장에서 회장이 됐지만 현재 지분구조 자체만 놓고 보면 이 회장의 지배력은 사업과 마찬가지로 역시 공전 상태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고리를 통해 간접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가운데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배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삼성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과 더불어 컨트롤타워 복원 방안도 삼성전자나 이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과거 미래전략실 해체 후 계열사별로 3개 TF로 나눠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TF’ 수준에 그치고 있는 만큼 계열사 간 시너지 및 강력한 리더십을 위해 관련 조직 복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거 논란이 됐거나 경쟁력이 약해진 부분들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주목되는데, 12월에 있을 정기인사 때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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