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심 끌기’ 위한 김정은의 연쇄 도발, 미사일 완성도 높여가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5 12: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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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간선거 겨냥한 승부수…‘이태원 참사’도 아랑곳 안 해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게 진심일 수도

11월2일 오전 북한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지역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쏘는 도발을 하자 서울의 일부 대북 전문가 그룹에선 “김정은이 윤석열 정부를 돕기로 작정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사상 처음으로 우리 수역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태원 참사에 초점이 맞춰졌던 방송사 특보는 북한 도발로 아이템이 바뀌었고 국민 관심이 쏠렸다. 울릉군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는 등 긴박한 상황도 벌어졌다. 마침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112 신고 녹취가 공개돼 경찰의 늑장대응과 정부의 책임론에 한창 불이 붙던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소방수 역할을 한 셈이다.

평양의 대남 전략가들이 제대로 된 ‘남조선 분석 보고’를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노련하게 남한 정세를 꿰뚫어 보곤 하던 노동당 통전부 라인이 퇴장하면서 북한이 ‘피아 식별’도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관측과는 달리 북한은 자신들의 프로세스와 시간표에 맞춰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하는 패턴을 고수해 왔다. 필요한 시점에 준비된 카드를 꺼내들고 무력시위를 통해 소기의 전술적 효과를 거두려 시도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국민장을 치르던 2009년 5월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北 미사일, 정밀타격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러

김정은의 정책 결정 경로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NLL 이남 미사일 낙폭 다음 날인 11월3일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재차 확인됐다. 앞서 벌어진 NLL 이남 탄도미사일 도발은 대미 무력시위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김정은의 잇단 도발 행보는 한국을 겨냥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국 미국 중간선거를 타깃으로 한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이태원 참사나 이에 따른 추모 분위기 등은 북한의 고려 대상이 안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김정은의 최근 도발 행보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올 들어 3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쐈는데, 9월 하순 이후 집중되고 있다. 10월4일 발사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4000km 이상을 비행해 일본 열도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은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11월3일 동해상으로 쏜 장거리미사일에 일본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고, 미국은 북한 미사일의 본토 타격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의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이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한창인 시기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미 핵항모가 한반도에 전개된 상황에서 전술핵 운용 훈련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한국 수역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발사나 일본 열도를 넘는 미국 겨냥 미사일 도발도 한미가 10월31일부터 닷새간 일정으로 치르던 대규모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기간에 이뤄졌다. 특히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로 불리는 미 F-35B가 처음으로 한반도에 착륙해 발진 상태로 대기 중인 상황에서 보란 듯이 도발에 나선 것이다. 이는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 중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개 활동을 중단하고 은신처를 찾던 이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다.

북한의 이런 변화는 9월8일 김정은 위원장이 이른바 ‘핵무기 법령화’에 나서면서 예고됐다. 핵 버튼에 대한 김정은만의 접근을 허용하는 이 교리는 핵사용 판단의 범위를 확대해 사실상 상대에 대한 선제 핵공격의 길을 열어놓았다. 당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김 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곧바로 같은 달 25일부터 보름에 걸쳐 전술핵 운용훈련을 벌였고, 이후 북한의 도발 행보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배합해 쏘고 여기에 방사포와 포사격을 배합하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웠다. 북한 주장으로 150대의 항공기가 동원된 대규모 공지 합동훈련을 통해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도 이전과 다른 양상이다. 다분히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의도가 감지된다.

북한의 최근 도발에서 눈길을 끄는 건 미사일 사거리가 다양해진 데다 정밀타격이 가능한 수준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 완성도가 높아진 점도 주목된다. 과거 북한은 미사일 도발 시 일부가 발사 과정에서 폭발하거나 도중에 소실되는 등의 문제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미 군 당국의 대북 감시망에 이런 내용이 포착되는 게 거의 드물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정 시점에 의도하는 방식의 도발이 언제든 가능할 만큼 완성된 형태의 핵과 그 투발 수단인 미사일 운용체계를 갖췄다는 의미다.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AP 연합

美 차관 “北이 대화 원하면 군축 협상이 옵션 될 수도”

이를 토대로 북한은 일단 미국의 중간선거를 전후한 시기에 북핵 이슈를 띄우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시진핑 주석의 3연임 등에 온통 쏠려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려 지속적인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7차 핵실험 카드를 쓸 수 있다. 다만 과거 북한의 6차례 핵실험 등을 포함해 모든 핵실험에 반대하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발효를 촉구하는 유엔총회 제1위원회(군축·국제안전) 결의안에 10월28일 중국과 러시아까지 찬성표를 던진 점은 북한에 압박 및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도발은 종국적으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 마련을 겨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술핵 운용까지 가능해져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핵 위협 범위에 넣고, 미 본토 공격을 압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만큼 이를 토대로 미국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보니 젱킨스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10월27일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군축 (협상이)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은 김정은에게 강력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 국무부가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의 복심이 드러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선 비핵화 협상에서 군축 협상 또는 북·미 수교 협상으로 대전환을 이루는 단초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질 공산이 있다.

김 위원장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북·미 정상회담을 하던 달콤한 날들을 여전히 추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김정은이 남긴 여러 말 가운데 핵심은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한마디였다. 어쩌면 김정은은 워싱턴을 향해 체제의 명운을 건 ‘담대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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