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 2022년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4 16: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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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도 물어서도 안 되는 ‘숨겨진 슬픔’의 비극
희생자, 광란에 빠진 사람으로 일반화하지 말아야

10월29일 오후 6시. 학교에서 입학전형 서류심사를 마치고 6호선 전철을 타고 가던 중 이태원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내리는 상황을 목격했다.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의 모습도 있었지만 평범한 옷차림으로 친구 또는 부모와 함께 해당 역에서 내리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핼러윈을 경험하기 위해 이태원역에서 내린 이들에게 특별히 시선을 부여한 사람은 없었다. 기분 좋은 주말 그리고 일상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10월29일 오후 8시. TV를 켜보니 지상파 뉴스는 이태원역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많은 이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며, 이 축제가 모든 이에게 기분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태원 자영업자분들의 활기 넘치는 인터뷰가 전달되고 있었다. 방송 화면에 비친 인파는 점점 늘어나는 모습이었지만 뉴스에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보도나 기사는 없었다.

11월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악의적 프레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일부 언론

2022년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참사가 벌어졌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20대라고 보도됐기에 필자가 가르쳤던 또는 담소를 나눈 무수히 많은 학생 중 희생자가 나오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사고 발생 후 며칠이 지난 뒤에 담소를 나눈 친했던 여학생이 이번 희생자 명단에 포함된 걸 확인했다. ‘10월29일 10시15분.’ 이제 그 시간은 내게도 멈춰진 시간이 됐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0월30일부터 모든 언론이 사고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워낙 급박하게 발생한 사고였던지라 상당수 기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된, 팩트가 전제되지 않은 소식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그사이 일부 언론은 대중이 몰라도 되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과도하게 흥분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내비쳤다. 보도는 선정성을 향해 논스톱으로 달려갔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선 희생자를 향해 차마 공개하기 힘든 다양한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다. 시신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춘 영상도 쏟아져 나왔다. 희생자 중 일부의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죽어도 싸다’는 반응을 보였고, 희생자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춘 영상에는 ‘(클럽) 죽순이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댓글도 달려 있었다. SNS는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생중계했고 시신의 모습 또한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퍼져 나갔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 정부는 빠르게 수습 대책을 약속하며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1500만원 지급을 선언했다. 이태원 참사 후속기사 밑에 달린 댓글에는 ‘나라를 위해 애쓴 이들도 아닌데 왜 세금으로 충당하느냐’ ‘클럽과 유흥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위해 왜 돈을 낭비하느냐’ ‘나는 저 시간 알바를 하고 도서관에 있었는데 왜 놀다가 사망한 이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느냐’는 등 날 선 비난이 이어졌다.

이들의 반론과 항의를 모르는 건 아니다. 사고 초기 일부 커뮤니티와 SNS에 퍼진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는 데 집중했던 언론의 책임은 여기서 자유로울 순 없다. 어느새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클럽/유흥) 죽돌이·죽순이’ 프레임에 갇히게 됐고, 상당수 언론은 침묵하며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공개적으로 분노도 그리고 슬픔도 표현하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홍대 앞·강남역·연남동·익선동 지역도 살펴봐야

친했던 학생이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됐고, 우리가 성찰해야 할 일이 됐다. 그럼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그리고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 점이 가슴 아프다. ‘유흥을 위해 모인 이를 위해 왜 애도해야 하는가?’라는 일부 목소리로 인해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희생당한 피해자는 우리 곁에 쓸쓸히 사망자 숫자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사이 누군가는 이번 참사를 정치권 이슈로 빠르게 전환시켰고, 누군가는 일부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에 초점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로 하반기에 예정됐던 축제가 취소돼 경제 활성화가 또다시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기사도 있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정부가 최소 1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낭비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추모와 애도는 정치·경제 이슈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는 형국이다.

사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인파가 많은 곳에선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비극이다. 폭 3.2m, 길이 5.7m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상자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비극은 일상의 공간인 평범한 거리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그리고 우리가 고민하고 질문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언론이 물었다면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외롭게 눈물을 쏟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이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과 일부 인사의 무책임한 발언을 비판하고,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 경찰과 정부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 지적하는 건 올바르다. 그러나 초기 인터넷에 쏟아진 혐오 표현과 적나라한 낙인찍기 그리고 영상을 빠른 속도로 공유한 언론의 행태에 자성을 촉구한 보도는 많지 않다. 경찰청장과 행안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기사는 많지만 자극적 보도를 퇴출해야 한다는 기사는 이번에도 부족하다.

그 결과, 이태원 참사에서 안타깝게 희생당한 분들의 스토리는 우리가 알아서도 안 되고 물어서도 안 되는 숨겨진 슬픔이 됐다. 희생자의 국적은 15개국, 연령은 10대에서 50대까지 광범위했다는 점에 비춰봐도 희생자들을 광란에 빠진 사람들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10월29일 저녁 이태원에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당해도 싼, 그리고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사고는 그래서 몇 명의 인사를 경질하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된다.

당시 이태원에 모인 사람들은 애타게 경찰을 찾았다. 경찰은 무기력했고 당일 저녁부터 이태원 거리를 비춘 일부 언론사 또한 심각성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태원 좁은 골목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언론도 정부도 그리고 경찰도 홍대, 강남, 연남동, 익선동 등 또 다른 일상의 공간에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는다. 언론도 경찰도 정부도 이번 사고의 책임을 모두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우리는 지금도 희생자와 함께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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