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미지의 계속된 노출이 부르는 ‘또 다른 재난’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6 10: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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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자극적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가
공동체에 상처 주는 것을 방지할 제도 필요

비극적 사고가 일어났던 그날 밤, 필자는 모임을 가진 뒤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고 있었다. 그러다 같이 있던 친구가 이태원에서 무언가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태원 핼러윈 인파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심각하지 않은 부상 사고가 몇 개 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동행했던 친구랑 헤어지고 혼자 귀가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사고를 자세히 접하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카카오톡에는 개인 메시지와 단체 채팅방을 가리지 않고 소식이 쏟아졌다. 지금 무사히 있냐고 안전을 확인하는 물음부터 온라인에 올라온 사고 현장 사진이나 영상의 링크를 공유하는 메시지까지, 계속해서 무언가가 스마트폰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정이 있었음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소식을 지켜보느라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11월2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이태원 참사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마음안심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는 재난 이미지의 홍수

주변에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가 그들과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갑작스럽게 비극적인 사고 현장을 보게 되면서 받은 심리적 충격이었다. 사고 자체의 비극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애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넘어, 단순한 궁금증이나 정보 공유의 욕구로 인해 전파되는 현장의 모습은 사고 현장을 넘어 훨씬 넓은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 듯하다.

비극적인 사고가 사실 이처럼 사고 현장을 담은 이미지와 영상, 소식이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급속도로 전파되는 것은 ‘스마트폰 시대의 재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2007년에 아이폰이 출시된 지 15년이 지난 이래로, 우리는 재난뿐 아니라 그 어떤 사건이라도 현장에서 찍은 이미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미디어 기록, 생산, 전파에 들어가는 비용이 스마트폰 보급으로 사실상 0에 가까워진 것에서 기인했다. 과거라면 어떤 사건의 현장에 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설령 기록을 남긴다 해도, 중앙 통제 미디어는 충분한 선별을 거친 뒤에야 대중에게 어떤 기록을 전파할지 아닐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사건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때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길 이미지의 전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건전한 효과를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모든 전통적 미디어 방법론은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사건 현장에 있는 모두가 스마트폰을 지니게 되었고, 촬영을 통해 기록물을 남긴 사람들이 자신의 기록물을 온라인에 전파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게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근래의 생활양식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빠른 인지와 행동보다는 먼저 촬영과 기록부터 추구하게 하는 새로운 본능을 일깨웠다.

물론 기록과 전파를 실행하는 사람은 여전히 다수가 아니라 소수지만, 온라인에서의 확산 속도와 통제 불가능성은 온라인에서 재난 이미지의 홍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윤리적 문제가 있는 몇몇 기록물은 사후적으로 규제를 통해 전파를 차단하고자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 시점에 이미 해당 기록물은 사회 전역에 확산된 상태가 돼있을 것이다.

이렇게 퍼져 나가는 사건들은 이제 사고와 재난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사실 스마트폰이 확산된 2010년대부터, 인간이 겪는 고통과 비극, 분노와 슬픔이 모두 여과 없이 온라인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추세다.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 2014년의 돈바스 전쟁은 일찍부터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전쟁의 직접적 현장들을 계속 송출했고, 군사집단들은 선전의 목적으로 이런 영상들을 끊임없이 이용했다. 2019년 이슬람 혐오에 빠진 한 극우파 남성이 뉴질랜드의 모스크에 총기 난사 테러를 가했을 때는 아예 자신의 테러를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는 일까지 있었다.

 

비극 현장의 이미지·영상 함부로 퍼트리지 않는 분별력 갖춰야

때로는 현장의 이미지와 영상이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 행동에 나서게 하기도 했다. 2020년 미국에서 폭발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시위는 한 경찰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다 살해한 현장 영상이 계기가 되어 일어났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의 여성이 도덕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돼,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이란 시위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가하는 폭력을 담은 무수한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냈다. 경찰 폭력의 현장이 이란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되며 시위에 동력을 공급하자,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하며 막고 있다.

물론 재난과 전쟁, 폭력과 시위가 단순히 스마트폰을 통해 퍼진다는 이유로 동질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건은 개별적 맥락이 있고, 다른 성격을 지니며, 하나하나의 사건에는 정말 수많은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특별하다. 하지만 이 같은 영상과 이미지에는 강한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감정을 몹시 흔들어 놓는 자극성이다. 거기서 느끼는 감정이 끔찍함, 슬픔, 분노라는 점에서 제각기 다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대응도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에 계속 노출되는 것은 개인을 심리적으로 지치게 만들고, 사회의 상처를 계속 의도치 않게, 불필요한 수준으로 확인하게 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우리가 공동체의 비극을 직시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 현장의 이미지와 영상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절제된 시각 자료와 텍스트를 통해서도 우리는 같은 일을 더 진중한 자세로 해낼 수 있다. 물론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이미지와 영상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비극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몇 시간 전에, ‘내려가’를 외치며 질서를 형성했던 여성의 존재는 스마트폰이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비극의 진상을 파악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차원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과,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의 목적으로 비극의 현장을 무절제하게 공유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믿는다.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들이 재난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극과 관련된 불필요한 자극적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가 공동체에 상처를 주는 것을 방지할 제도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방안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는 미지수다. 그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설령 비극의 현장을 접하게 되더라도 함부로 퍼트리지 않을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는 것 아닐까.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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