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장애인들의 ‘SNS 장벽’ 부수려면…어떤 법 수술대 오르나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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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장애인 미디어 편의 위해 ‘지능정보화법’·‘저작권법’ 동시 개정 추진
정부의 ‘미디어 접근성’ 감독 의무화…장애인 콘텐츠 활용 범위도 확대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정보가 중요한 SNS와 영상콘텐츠를 접할 때 ‘장벽’을 자주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정보가 중요한 SNS와 영상콘텐츠를 접할 때 ‘장벽’을 자주 느낀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김지현(가명·22)씨는 요즘 친구들과 SN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예전처럼 SNS 화면의 세세한 부분들을 못 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스크린리더(화면의 내용과 자신이 입력한 키보드 정보나 마우스 좌표 등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 기능이 있지만, 이걸로는 역부족이다. 사진 속 친구가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또 댓글의 이모티콘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김씨는 《환승연애》를 비롯한 예능이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을 볼 때도 답답함을 자주 느낀다. 영상 속 출연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포즈로 그 말을 하는 지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주인공은 헤어지기 싫은 표정인데, 말을 차갑게 하더라”라고 장면을 묘사하는데, 김씨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SNS, 유튜브 등은 전 세대에서 ‘모르면 간첩’일 만큼 널리 대중화됐다. 해당 콘텐츠들은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시각 정보가 중요한 SNS와 영상콘텐츠를 접할 때 ‘장벽’을 자주 느낀다. 다른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배려해야 할 디지털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의 웹 접근성 등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인 대비 81.7% 수준에 그쳤다.

정부에선 장애인의 콘텐츠 접근 개선을 위해, ‘지능정보화기본법’으로 웹사이트와 스마트폰에 설치되는 응용소프트웨어에 대해 ‘접근성’ 지침을 규정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장애인을 비롯한 정보 취약계층이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고 관리·감독하는 등 노력해야 한다. 다만 해당 지침에선 ‘의무’라는 단어도 빠져있고 관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명시돼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서비스 제공업체들도 접근성 항목에 대한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VOD 등 영상콘텐츠 저작물 이용은 더 어렵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의 동의나 허락 없이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변경할 수 있는 저작물은 어문저작물로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일부 방송사 프로그램을 제외한 VOD 콘텐츠에 대해선 화면해설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어렵다. 영상 속 출연진들의 대사만 들을 수 있을 뿐, 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말하는지 시각적 정보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정보가 중요한 SNS와 영상콘텐츠를 접할 때 ‘장벽’을 자주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정보가 중요한 SNS와 영상콘텐츠를 접할 때 ‘장벽’을 자주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능정보화기본법’·‘저작권법’, 어떤 방향으로 개정 추진되나

이 같은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장애인들의 콘텐츠 이용 편의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임오경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능정보화기본법’과 ‘저작권법’ 개정안을 ‘점자의 날’이었던 지난 4일 동시에 발의했다.

‘지능정보화기본법’ 개정안은 정부가 SNS 제공업체의 웹사이트와 모바일 접근성 준수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감독을 하도록 정하고, 제공업체에 대해서도 정부가 필요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서비스 제공 업체에 ‘의무’와 ‘혜택’을 함께 주는 것이다. 임 의원은 “정부가 서비스 제공업체의 접근성 준수를 제대로 감독,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를 통해 장애인 등 정보 취약계층의 삶의 만족도가 증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저작권법’ 개정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제 대상에 연극·영상 저작물도 가능하도록 하고, 장애인을 위한 저작물 복제·배포·전송이 가능한 시설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까지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 의원은 “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저작물을 확대하고, 적어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복제·배포·전송이 가능하게 해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이 더 편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텍스트 없는 카드뉴스를 시각장애인들은 읽을 수가 없다. ⓒ시사저널 박정훈
텍스트 없는 카드뉴스를 시각장애인들은 읽을 수가 없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각장애인들이 보는 두 개정안의 실효성은?

해당 개정안들의 실효성은 얼마나 있을까. 시각장애인들은 법안의 취지에 대해선 일단 공감하는 반응이다. 시각장애인인 정형규(31)씨는 “본인도 SNS를 활용할 때 불편한 점도 많고, 박탈감도 많이 느꼈다”며 “국회에서 이런 움직임을 추진하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좋다”고 기대했다. 

다만 일각에선 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법안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접근성 인증’도 의무화해 인증을 획득하지 않은 기업 등에는 서비스를 공공영역에 납품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인증 대상도 ‘모바일 앱’까지 포함시켜, 접근성 미인증 앱은 스토어에도 등록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등에서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기관평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총장은 현행 방송사 영상의 화면해설서비스 제공도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선 방송사가 송출하는 영상에 대해 10%가량만 화면해설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일부 영화에 대해 화면해설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제공 영화는 연간 100편 내외에 불과하다.

특히 현행 저작권법에선 어문출판물에 대해 시각장애인 전용기록방식으로서의 가공·보급이 허용됨에도 출판사 등에서 여전히 저작권 침해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임 사무총장은 “해당 개정안들이 통과돼도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 같다”며 “단순 접근성 보장을 넘어, 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성 향상을 위해 구체적으로 손봐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총장은 해외 통신접근성 관련 법들을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연합의 통신접근성법과 미국의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외국에선 법의 강제성을 통해 벌금이나 상품출하 불가 등 불이익을 업체들에 주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법인의 홈페이지에 대한 접근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유럽 지역의 법인들은 접근성 개선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도 이런 법들을 참고해, 실질적인 장애인 미디어 접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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