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나는 게으른 배우이자 겁 없는 배우”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9 17: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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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올빼미》로 새로운 도전 시도한 류준열
“무난한 역할 선호하지만, 이번엔 저질렀다”

배우 류준열이 11월23일 개봉을 앞둔 웰메이드 사극 《올빼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영화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내용이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 장르다. 누적 관객 수 1051만 명을 동원한 《왕의 남자》(2005)의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에게 《올빼미》는 첫 상업영화다.

유해진과 류준열이 출연한다. 유해진은 《올빼미》에서 그동안 주로 보여왔던 친근한 이미지가 아닌 연기 인생 최초로 왕 역할을 선보인다. 류준열은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은 맹인 침술사 ‘경수’로 분한다. 류준열은 처음으로 맹인 연기를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눈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촬영한 유해진은 “류준열은 갈수록 섬세해진다. 아주 디테일하게 연기를 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두 사람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 《봉오동 전투》(2019)에 이어 세 번째 합이다. 유해진과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 이후 17년 만에 재회했다.

뿐만 아니라 《올빼미》 스태프와 류준열은 서너 편 이상의 작품을 함께 한 동료이자 절친으로 알려져 있어 시너지 효과가 더욱 기대된다. 실제로 류준열은 “개인적으로 같이 놀러 다닐 정도로 편한 사이다 보니 집요하게 작품에 대해 묻고 따졌다”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주)NEW 제공

주맹증에 걸린 침술사 역할이다. 핸디캡이 있는 역할은 처음인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나.

“아니다.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사실은 너무 겁이 없기도 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역할만 했다. 오디션을 볼 때도, 무난한 역할만 고집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주인공 역할엔 별로 욕심이 없었다. 덕분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핸디캡 있는 역할이나 부지런을 떨어야 되는 역할에는 대본 자체에 손이 많이 안 간 것도 사실이다. 이번 《올빼미》는 딱 봐도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럼에도 대본이 주는 힘이 엄청났다. 그래서 저질렀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당시의 내 컨디션, 감정 등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 편인 것 같다.”

주맹증(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을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맹인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누구든 그렇지 않나. 첫날부터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굉장히 유쾌하셨다. 맹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볼 수 없는 분들도 계시고, 제가 만난 어떤 분은 어느 정도 보이시고 또 뛰어다니는 분도 계신다. 극 속에서 경수가 어두운 궁궐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장면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실제로 제가 가진 편견으로는 뛰어다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데 맹인 학교에도 ‘뛰지 마시오’란 팻말이 있다고 해서 놀랐다. 맹인은 익숙한 공간에선 굉장히 능숙하게 생활한다. 맹인 학교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뛰어다닌다고 한다. 실제로 식사할 때도 능숙하게 하셨다.”

시선 처리가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패션쇼를 보는 걸 좋아한다. 모델들의 눈빛을 보면 명확하게 어떤 걸 보기보다는 뭐랄까, 꿈꾸는 듯한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먼 친척 중에서 시각장애인이 계셨다. 그분에 대한 기억도 떠올려 봤다. 당시엔 제가 그분들의 눈이 ‘꿈을 꾸고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한테 그렇게 말씀을 드린 적도 있다. 실제로 이번 역할을 하면서 그걸 표현하려고 애썼다. 한데 부작용도 있다.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 아침에 일어나면 눈의 초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 가서 여쭤보니 의식적으로 눈의 초점을 잡으려 애써야 한다고 하더라.”

연기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저는 작품을 준비할 때 제 역할과 관련된 많은 분을 인터뷰하지만 게을러서인지는 몰라도 같이 생활한다거나 심층 인터뷰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이 캐릭터가 말이 되나 안 되나’인 것 같다. 요즘 관객들은 워낙 영리하시고 제가 보는 것 이상으로 다 보신다. 어느 정도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만 납득이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층 인터뷰를 해서 아주 깊은 곳까지 소통하진 않는다. 사실 가까운 사이에도 깊은 이야기를 쉽게 나누지 않는데 일주일 생활을 하고 그들의 아픔을 다 알고 표현하는 게 과연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제가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받을 때도 있다. ‘연예인 누구는 어때요?’ ‘그 작품 너무 잘 봤어요’ 하시며 질문을 하신다(웃음). 저는 그저 제가 만나서 느낀 힌트 몇 가지를 캐릭터에 녹이는 편이다.”

유해진씨가 연기 인생 처음으로 왕 역할에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듣고 어땠나.

“주변에선 ‘유해진이 왕을 한다고?’라며 의아해하시는 분도 있었을 테지만 전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놀랍지 않았다. 그동안 해진 선배와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는 완성된 배우다. 오히려 영화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충분히 멋있었더라. 덧붙이자면,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같이 호흡을 맞추는 느낌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작품을 하면서 몇 번의 놀라운 순간이 있기만 해도 저는 그 영화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후회하지 않는데, 해진 선배와 연기하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다.”

첫 촬영 때 이준익 감독이 응원차 와서 슬레이트를 쳤다고 들었다.

“감독님을 비롯해 스태프들과도 《왕의 남자》로 인연이 있어 오셨다. 사실 저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저희 아버지가 20년 이상 충무로에서 근무하시면서 감독님과 같은 빌딩에 계셨다.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뒤 아버지 사무실에 갔다가 이준익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우리 아들도 연기를 한다고 말했고, 이 감독님이 ‘몇 살이냐’고 물으셨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스무 살쯤이었다. 그랬더니 “서른 먹고 와” 하고 쿨하게 말씀하시더라. 하하. 그리고 실제로 제가 딱 서른에 영화 《소셜포비아》(2015)로 데뷔를 했다. 시상식에 왔다 갔다 하다가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렸더니 “내가 (네 작품 중에) 볼 게 있을까?” 하고 물으시더라. 《소셜포비아》라는 영화가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때부터 연락처를 주고받고 지금까지 쭉 연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올빼미》 한 장면ⓒ
영화 《올빼미》 한 장면ⓒ(주)NEW 제공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선택한다. 캐릭터보다는 영화 자체를 먼저 본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전작과 캐릭터의 톤이 비슷하다고 해서 지양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 섭외가 오는 편이다. 아직은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살집이 있는 역할이나 살을 찌워야 하는 역할은 안 들어오는 것 같다.”

안태진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안 감독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 대체로 “난 다 좋아” 하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하나 자세히 말해 주신다. 무엇보다 안 감독님의 힘은 글이다. 압도적이다. 제가 잘 모르는 감독님과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 감독님과 작업한 이후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 감독님의 글을 읽어보면 확신이 생긴다. 그냥 그 글대로 촬영을 하면 수월하게 다 풀리는 부분이 있더라. 그게 저력이다. 안 감독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다른 신인 감독과도 해봐야겠다는 순간이 많이 생겼고, 또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감독님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 남들이 안 된다고 했을 때도 끈을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결국 되는구나, 싶었다. 오죽했으면 제가 ‘감독님, 다음 작품은 어떤 거예요?’ 하고 물었겠나. 사실 저는 제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에 대해 감독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제가 현재 사진전을 열고 있는데, 저와 함께했던 감독님 전부 다 오셔서 작품을 보고 축하해 주셨다.”

올해도 열일했다. 영화 《외계+인 1부》 《올빼미》를 비롯해 현재 드라마 《머니게임》 촬영이 막바지다.

“거창하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간다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다만 생각 이상의 결과가 보이는 순간이 많이 있어 스스로 놀란다. 상상하지 않은 게 현실이 된 느낌이다.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이 매일 생기고 있고 내일도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극장가의 상황이 좋지 않다. 대다수 작품에서 스코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미덕을 갖고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스코어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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