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거침없는 행보가 시작됐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0 12: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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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장에서 부각되는 티빙의 존재감
《환승연애》 《술꾼도시여자들》 《몸값》 등 오리지널 콘텐츠 흥행으로 이용자 증가
파라마운트부터 시즌까지 끌어안아…토종 OTT 순위 재편

추격이 시작됐다. ‘넷플릭스 천하’와 같았던 OTT 시장에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것은 티빙이다. 올해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글로벌 OTT 플랫폼인 파라마운트플러스를 안으며 콘텐츠를 확장한 티빙은, 12월1일 KT 시즌과의 합병법인을 출범하면서 몸집을 더 키운다. 《환승연애》 《술꾼도시여자들》 《몸값》 등 오리지널 콘텐츠의 연속 흥행에 힘입어 이용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라인과 손잡고 해외시장 진출 계획까지 공식화한 상황. 모두가 OTT 시장의 ‘정체’를 말할 때 ‘성장’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하던 티빙은 이제 토종 OTT 서비스 1위 자리를 차지하고 넷플릭스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티빙의 성장 배경에는 어떤 전략이 있었던 걸까. 티빙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술꾼도시여자들2》ⓒ티빙

‘연합’에서 나오는 경쟁력

‘콘텐츠’는 티빙의 힘이고, ‘연합’은 또 하나의 활로다. 결국 티빙의 성장 공식은 이 두 단어로 풀이된다. “개별 기업이 승자독식하는 구조보다 각 분야에서 잘하는 곳들을 모아 연합하면 훨씬 더 빠르고 명확하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달 초 차세대 미디어 주간 행사에 참석한 양지을 티빙 대표의 말이다. 이 말이 곧 티빙의 기본 전략을 설명한다. 연합의 전제는 콘텐츠의 확장이다. OTT의 성패는 콘텐츠가 가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콘텐츠의 힘은 전 세계적으로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시장 1위 넷플릭스가 이미 보여줬다. 티빙이 콘텐츠 확장을 위한 협력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혀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미 티빙은 ‘K콘텐츠 명가’로 불리는 CJ ENM의 DNA를 가지고 있다.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직후에는 JTBC가 합류했고,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네이버의 지분 투자를 유치한 이후부터는 웹툰과 웹소설 IP를 활용한 작품 제작에도 나섰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과의 연계를 통해 이용자를 확보한 것도 가입자 증가에 시너지를 냈다. 연합은 ‘제작’과 ‘유통’의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6월에는 글로벌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플러스(이하 파라마운트+)와 손잡고 700만 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욘더》를 시작으로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공동투자도 진행하기로 했다.

ⓒ티빙
파라마운트+와의 공동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오리지널 드라마 《욘더》ⓒ티빙

이 외에도 티빙과 파라마운트는 서로를 콘텐츠 유통 거점으로 삼기로 했는데, 티빙 내 브랜드관을 통해 파라마운트+의 작품을 공개하고, 파라마운트+를 통해 티빙 작품을 해외에 공개하는 방식이다. 캐서린 박 파라마운트 아시아 사업 대표는 11월16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국제OTT포럼에서 “티빙과의 협력은 ‘윈윈’이다. 파라마운트는 티빙을 통해 한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앞으로 파라마운트는 티빙의 해외 진출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기존 플랫폼과 손을 잡음으로써 로컬 구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서로 취한 것이다. 최근 공개돼 호평을 받은 티빙의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도 2023년 파라마운트+를 통해 해외에 공개될 계획이다.

최근 이슈가 된 것은 통신사와의 연합이다. 이미 KT와 LG유플러스의 번들 상품을 출시한 티빙은, 다음 달 초 KT의 OTT 서비스인 시즌과 합병법인을 출범시킨다. 사실 이전부터 국내 OTT가 넷플릭스에 대항해 경쟁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제기됐었다.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한국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상황에서 제기된 일종의 통합론이었다. 티빙이 선택한 OTT는 시즌이었다. 티빙은 지난 7월 시즌과의 합병을 발표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말 티빙의 시즌 흡수합병을 승인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를 할 때 시장 집중도 변화나 진입 용이성 등을 살핀다. 이번 기업 심사에서 우선적으로 본 것은 구독료 인상 우려였다. 공정위는 ‘통합 티빙’의 시장점유율 변화가 크지 않아 단독으로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합병으로 추정되는 티빙의 기업 가치는 약 2조3000억원 수준이다. 중복 가입자가 이탈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시즌이 확보한 이용자의 대다수가 티빙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 합산할 경우 ‘통합 티빙’의 시장점유율은 18.05%까지 늘어난다(1~9월 월평균 이용자 수 기준). 38.22%의 점유율을 지닌 넷플릭스를 단기간에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토종 OTT 사업자 중에서는 웨이브의 점유율(14.37%)을 제치고 1위에 오르게 된다.

공정위는 “티빙과 시즌의 기업결합은 경쟁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더 효과적으로 수급할 수 있고, 콘텐츠 제작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합병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OTT 구독자들의 후생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기획, 투자, 제작 능력을 입증받은 KT와 콘텐츠 제작 명가 CJ ENM·스튜디오드래곤이 만들어낼 시너지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신은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KT가 티빙을 선택할 수 있는 초이스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티빙은 향후 국내 가입자 확보가 더욱 유리해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K-OTT 1위 사업자 위치를 굳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과 티빙에서 먼저 공개된 《유미의 세포들2》는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티빙의 유료가입자들을 견인했다.ⓒ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과 티빙에서 먼저 공개된 《유미의 세포들2》는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티빙의 유료가입자들을 견인했다.ⓒ티빙

‘시즌2’로 이어가는 콘텐츠의 힘

전제는 콘텐츠다. 결국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위해 협업하는 것이니만큼, 콘텐츠에 대한 투자 역시 적극적이다. 이는 적자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티빙이 성장한 배경 역시 흥행 콘텐츠에 있다. 티빙은 예능부터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에 투자하며 콘텐츠를 키운다. 《여고추리반》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본격적으로 등판시켰는데, 《환승연애》 《술꾼도시여자들》은 특히 티빙의 상승세를 견인한 대표적인 작품들로 꼽힌다. 티빙은 시즌2를 통해 이 경쟁력을 이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환승연애2》ⓒ티빙

지난해 3분기 티빙 이용률을 끌어올린 1등 공신인 《환승연애》는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이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간다는 취지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일찌감치 시즌2를 확정하면서 프랜차이즈 IP화에 성공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수억원대 출연료를 자랑하는 톱스타들로 꾸려진 예능 사이에서 일반인 출연진으로 만들어진 《환승연애》가 거둔 효과는 대단했다. 청룡시리즈 어워즈 예능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면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지난 7월 시즌2는 공개되자마자 또 한 번 이용자를 급증시켰고, 유료가입자 기여도 1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화제성 역시 다시 한번 입증했다. 역대 티빙 콘텐츠 중 주간 시청 UV(앱 방문 이후 특정 콘텐츠를 일정 시간 시청한 사용자 숫자를 바탕으로 추산된 수치) 1위를 기록했고, 《환승연애2》가 공개되는 매주 금요일에 일일활성이용자수(DAU)가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현상까지 이끌었다.

화제성과 작품성을 입증한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술꾼도시여자들》이다. 술 한잔이 인생의 신념인 세 여자의 일상을 그린 이 드라마는 방영 5주간 티빙의 신규 유료 가입자 수를 견인하며 흥행했고, 2022년 상반기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인 코리아 포커스 섹션에 국내 OTT 오리지널 콘텐츠 최초로 공식 초청된 바 있다. 티빙은 12월9일 《술꾼도시여자들》 시즌2를 공개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적실 예정이다.

《몸값》ⓒ티빙

그리고 올해,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흥행 콘텐츠를 내놓던 티빙이 야심 차게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의 성공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예능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티빙은, 이 콘텐츠를 통해 경쟁력 있는 시리즈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값》의 스토리를 확장시켜 장편 드라마로 만든 이 작품은 원작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수위와 구성으로 토종 OTT 시리즈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는 플랫폼의 성황을 이끌어낸다. 《몸값》은 공개 첫 주부터 역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중 시청 UV 최고치를 달성했고, 2주 연속 티빙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에 등극했다. 올해 공개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완주율도 기록했다(3주 차 기준). 《환승연애》나 《술도녀》가 여성 가입자를 늘렸다면, 《몸값》은 남성 이용자들의 가입을 견인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수익성 확보는 과제…전망은 긍정적

다음 스텝은 장르물이다. 뒤이을 오리지널 콘텐츠는 《아일랜드》다. 제주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한국형 호러 판타지물로, 만화 IP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 만화계를 대표하는 윤인완·양경일 작가의 만화 《아일랜드》의 후속 시즌으로, 20여 년 만에 웹툰으로 리마스터링돼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바 있다. 원작자인 윤인완 작가가 직접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작품의 퀄리티를 높인 이 작품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해외에서도 동시 공개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영화 《샤크: 더 비기닝》의 후속 드라마인 《샤크: 더 스톰》, 드라마 《잔혹한 인턴》,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방과 후 전쟁활동》 등 콘텐츠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예능 명가라는 이름을 다시 입증하듯 새로운 형태의 예능도 시작한다. 웹툰 OST를 중심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 《웹툰싱어》도 내년 중 공개할 계획이다.

몸집과 존재감을 키워가는 티빙에도 과제는 있다. 수익성 확보다. 올해 3분기 티빙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1.6% 늘었고, 콘텐츠 판매 역시 168.9% 늘어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과감한 콘텐츠 투자를 이어온 만큼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티빙의 개별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서는 200억~300억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한다. 다만 티빙이 늘 강조하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이다.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려면 적자를 거듭하더라도 좋은 서비스로 고객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래야만 결국 큰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양지을 대표는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와 올해 티빙은 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로 괄목할 만한 가입자 성장을 이뤄냈다. 이를 위한 투자가 실행되면서 손익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성장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상태라 2023년에는 의미 있는 손익 개선을 목표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티빙은 내년 초부터 시즌과의 합병 성과가 가시화하는 등 의미 있는 손익 개선이 있을 것으로 본다. 당장의 흑자 전환은 쉽지 않지만 KT 시즌과의 합병을 통해 가입자는 늘고 제작비 부담은 줄어든다는 점을 볼 때, 손실이 축소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CJ ENM의 성장동력은 티빙인데 이번 합병으로 내년부터 티빙 사업은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용현 KB증권 연구원은 “내년부터는 KT 시즌과 협업을 통해 가입자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향후 수익화 전략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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