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금리 인상 자제” 요청한 정부의 두 가지 속내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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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마르는 2금융권, 유동성 위기 우려
대출금리 연쇄 상승에 차주 곡소리만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정기 예금 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정기 예금 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5%대에 진입하면서 정기예금에 돈이 몰리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수신 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재차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데다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태에서 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최근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대까지 올랐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은행권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821조546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0월 말보다 13조원이 증가했다. 은행권에서는 지난 8월(30조6838억원)에 이어 또다시 30조원대의 정기예금 증가폭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되자 금융당국은 이달에만 두 차례나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모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에는 20개 은행장들과, 지난 14일에는 7개 은행 담당 부행장들과 간담회 및 시장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불과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은행권과 연쇄 접촉을 한 셈이다.

금융위가 이들을 불러놓고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주문했다. 은행권으로 자금이 쏠려 제2금융권 등에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20일에도 “강제할 수는 없지만 금리 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은행권에 당부하고 있다”며 연일 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최근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7~8%대 특판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저축은행 정기예금은 이미 연 6%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7%대를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고금리의 예금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유동성 확보 때문이다. 지난 9월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이 30조원 느는 동안 저축은행은 1조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예금 수신으로만 자금을 조달하는 저축은행의 경우 시중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고금리로 고객을 유인해야 한다. 하지만 수지타산을 고려하면 무작정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금융위는 저축은행 예대율 규제 비율을 100%에서 110%로 완화하기도 했다.

정부가 금리 인상 자제 요청의 근본적인 이유는 대출금리 상승 때문이다. 은행권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산정요인 중 저축성 수신상품 금리의 기여도가 80% 이상이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코픽스 금리가 오르고 주담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은행권 유동성 완화 요구에 정부 답변은?

지난 15일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로 공시 시작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새 코픽스가 공시된 직후 주요 시중은행의 신규 코픽스 연동 주담대 금리 상단은 7%대로 오른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금리 인상으로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의 이자 부담액이 내년 말까지 33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도 금리인상 부작용을 줄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중은행이 대출이자에 예금자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등을 포함했다”며 “은행이 자기비용을 들여야 하는 걸 대출 차주에게 덤터기 씌운 비용은 환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여신에 부담할 게 아니라 수신 쪽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가산금리 형태로 부담한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지급준비예치금이나 예금보험료를 가산금리에서 빼는 방안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관련 규정 등의 검토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 이외에는 수신금리 인상을 강제로 억제할 뾰족한 수단은 없다”며 “결국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의 자발적인 자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밟혔다. 은행권은 최근 중장기 유동성 지표인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등 건전성 규제의 완화를 추가로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NSFR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등과 함께 바젤Ⅲ 체제 은행감독규정에 따라 도입된 유동성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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