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매년 날아드는 철새를 어찌 막나”…‘AI 발병’에 허탈한 전남 장흥군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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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육용오리농장서 AI 고병원성 확진…전남 가금농장 첫 사례
또 찾아온 불청객 AI…전남 철새도래지서 잇단 AI바이러스 검출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식 대책’에…“철새 핑계대지 마라” 비판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를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전남의 한 지자체 방역 관계자의 말이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방역에 대한 현실적 한계를 토로한 것이다. 우리 기술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과학기술의 진전에도 AI방역 대책은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식’에 그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AI가 발생하면 해당 농가를 중심으로 살처분하거나 창궐하는 월동기만 무사하게 지나기만 바라는 일이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국내에 고병원성 AI가 보고된지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병 원인이 오리무중이고 대책 또한 큰 진전없이 궁색하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불편한 진실…유력 용의자는 ‘월동 철새’, 대책은 ‘살처분’ 뿐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AI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력한 용의자로 ‘월동 철새’가 지목돼 왔다. 올해도 철새가 날아 든 겨울 초입에 어김없이 불청객 AI가 찾아와 방역당국과 가금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방역초소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매년 철새 수십만 마리가 날아드는데 AI가 전국으로 퍼질까 걱정이 앞선다. 초소 앞으로 오는 자동차는 우리가 막는다고 해도 날아다니는 새를 막을 도리가 있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올해도 겨울 초입에 불청객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어김없이 찾아와 방역당국과 가금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8일 오후, 전날 오리 1만2000여 마리가 살처분 된 전남 장흥 부산면의 오리 농장 주변은 방역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오리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방역초소와 차단막을 설치하고, 차량 출입을 막았다. 양윤성 장흥군 부산면사무소 산업팀장이 AI발병 오리농장을 가르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올해도 겨울 초입에 불청객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어김없이 찾아와 방역당국과 가금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8일 오후, 전날 오리 1만2000여 마리가 살처분 된 전남 장흥 부산면의 오리 농장 주변은 방역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오리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방역초소와 차단막을 설치하고, 차량 출입을 막았다. 양윤성 장흥군 부산면사무소 산업팀장이 AI발병 오리농장을 가르키고 있다. ⓒ시사저널 호남본부 정성환

지난 18일 오후 전남 장흥 부산면 비동리 성자마을 입구. 이틀 전 오리 1만5000여 마리가 살처분 된 육용오리 농장 주변에서 방역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논 한가운데에 있는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방역초소와 차단막을 설치하고, 차량 출입을 막았다. 해당 농장과 불과 100m 가량 떨어진 마을은 아예 오가는 주민이 없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AI 발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뜩이나 한적한 마을에 찾아오는 외부인이나 차량도 뜸해졌다.

이 마을은 주민등록상 인구가 44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마을이다. 취재진과 함께 현장을 찾은 양윤성 부산면 행정복지센터 산업팀장은 “마을 중심 논을 따라 농가 19채가 모여 있지만, 최근 심각한 인구유출로 빈집이 많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아무개씨는 “마을 앞 논 한 가운데 농장에서 AI가 발병해 초소로 딱 막혀버리니까 주민들도 오가는 게 불편하다. 농사가 끝났기에 망정이지 추수도 제대로 못 할 뻔했다”고 말했다. 

일대 가금류 농장들도 시름이 깊어졌다. 마치 감시받는 듯한 따가운 시선에다 잠복기인 21일이 지난 뒤 정밀조사 뒤 재입식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면서다. 농장주 김영인(장흥군 부산면)씨는 “한 번 유입되면 가금류 농가 존립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게 AI다”며 “오리를 금방 키운다면 문제가 없는 데 빚을 잔뜩 지고 있는 데 몇개월 동안 농장을 놀려야 돼 앞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16일 이 마을 한 오리 농장에서 기르는 오리의 폐사체에서 나온 H5형 AI 항원이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 해당 농장은 14일 150마리, 15일 70마리의 오리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가을 들어 닭·오리 등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 확진된 전남 첫 사례로, 본격적인 철새 남하에 따라 도내 전역에 AI 방역 비상이 걸렸다.

지난 11일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발견된 야생조류 폐사체 검사에서는 고병원성 AI 확진 사례가 나왔고, 순천만에서는 13일에 이어 또다시 야생조류 폐사체 검사에서 H5형 항원이 검출돼 고병원성 확진검사가 진행 중이다. 전남도는 21일 “순천만에 서식하는 흑두루미 폐사체에서 H5형 AI 항원이 검출됐다"며 "고병원성 여부는 금주 중 판가름 난다”고 밝혔다.

 

원인은 오리무중…‘운송 차량’ vs ‘월동 철새’

문제는 AI 바이러스 유입경로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방역당국은 일단 이번 AI 발병 원인을 두고 야생조류 분변이 해당 농장으로 우연히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AI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력한 용의자로 대부분 ‘월동 철새’가 지목돼 왔을 뿐이다. 

이번 장흥 해당 농장도 겨울철새 도래지인 탐진강을 둑 하나 사이로 끼고 있어 일단 철새가 주범으로 몰렸다. 탐진강 일대는 올겨울도 어김없이 흰뺨검둥오리, 큰고니, 가창오리와 청둥오리 등 철새 10여만 마리가 겨울을 보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사료 운송 차량 등에 의해 방역망이 뚫렸을 수평 전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장흥 부산면 해당 농가는 A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사육농가다. 전남 나주와 영암, 장흥은 전국 가금류 사육량의 65%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양계와 오리 잡산지다. 현재 3개의 대형 육가공업체가 각각 농가에 오리와 병아리를 위탁 사육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차량이 사료 등을 공급하기 위해 수십호에 달하는 계열 농가에 출입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발병한 나주 세지면 송제리 해당 농가는 앞서 AI가 발생한 육용오리 농가와 1.3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진군 신전면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이 발생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두 곳 모두 동일 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사육농가였다. 당시 같은 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입식 농가에서 잇따라 AI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서 사료 운송 차량 등에 의해 방역망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낳았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또한 가설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AI의 발병 원인은 역학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역외 지역에서 발생한 AI가 전남으로부터 전파된 건지 현지에서 자연 발생한 것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처럼 AI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어 앞으로 예방과 방역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도 겨울 초입에 불청객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어김없이 찾아와 방역당국과 가금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8일 오후, 전날 오리 1만2000여 마리가 살처분 된 전남 장흥 부산면의 오리 농장 주변은 방역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오리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방역초소와 차단막을 설치하고, 차량 출입을 막았다. AI 발병 농장은 겨울 철새 도래지인 탐진강을 둑 하나를 끼고 있어 일단 철새가 주범으로 꼽힌다. 탐진강 너머 해당 농장 ⓒ시사저널 정성환
올해도 겨울 초입에 불청객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어김없이 찾아와 방역당국과 가금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8일 오후, 전날 오리 1만2000여 마리가 살처분 된 전남 장흥 부산면의 오리 농장 주변은 방역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오리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방역초소와 차단막을 설치하고, 차량 출입을 막았다. AI 발병 농장은 겨울 철새 도래지인 탐진강을 둑 하나를 끼고 있어 일단 철새가 주범으로 꼽힌다. 탐진강 너머 해당 농장 ⓒ시사저널 호남본부 정성환

방역 놓고 당국과 가금류 농가 ‘서로 네 탓’ 전가
“허술한 방역이 화 불러” vs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 탓” 

그럼에도 정작 방역을 놓고도 방역당국과 농가가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는 모양새다. 방역 당국은 농가의 허술한 방역이 화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오리 농가들은 논 한가운데 재래식 하우스에서 별다른 방호시설을 하지 않는 등 축사가 낙후된 데다 방역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전도현 전남도 동물방역과장은 “농가가 방역수칙을 지키고 있는지 매일 확인하고, 안 될 경우 이번에는 보상금 삭감 등 과감한 방역대책을 세울 예정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가는 방역 당국의 초기대응 실패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장흥의 한 농장 주인은  “AI 철이 되면 예찰이 강화돼 선제적 점검이 이뤄졌으면 예방이 될 텐데 발생한 후에 소독하면 아무래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발생한 AI가 예찰과정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농장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한 뒤 신고 후에 확진판정을 받았다“며 ”방역당국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육용 오리 1만500마리를 기르는 이 농장에서는 이틀 전인 14일부터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AI는 닭·오리 등 가금류와 야생조류가 주로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국내에선 2003년 고병원성 AI가 처음 보고된 후 2~3년 간격으로 2018년까지 8차례 발생해 매번 수백억~수천억원씩 피해를 남겼다. 가장 피해가 컸던 2016~2017년에는 50개 시·군에서 383건이나 발생·보고됐고, 전국에서 3700만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경제적 손실이 1조원을 넘어서고, 대량·밀집 사육시설을 중심으로 전국 양계농가는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의심축 신고해달라”…매년 천수답식 방역 되풀이

그런데도 해마다 반복되는 AI 발생에 대한 비판도 많다. 한 네티즌은 “해마다 겪었으면 진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옛날 하던 방식을 계속 우려먹고 있으니 국민이 뭘 바랄 거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항상 AI는 하천서부터? 철새 첫 경로인가? 그럼 뭔가 대책을 세워야죠”라는 쓴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철새 핑계 대지 마라. 밀집 사육에 항생제, 살처분…해마다 되풀이되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고흥 나로도에서 인공위성을 쏘는 시대에 AI대책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의심축이 신고되면 방역당국과 해당 지자체는 대책반을 가동하고 방역대를 설치하고 해당 농장의 가금류 살처분과 예방 차원에서 영향권의 닭·오리를 예방 차원에서 추가 살처분한다.

그래서인지 전남도 등 지자체는 AI가 신고되거나 확진 판명을 받을 때마다 내놓는 보도자료 말미에 철새가 도래하는 동절기 AI 위험시기를 맞아 가금농가에서는 소독 등 4대 방역조치를 철저히 하고 의심 증상 발견시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한다. 말 그대로 동절기 AI 위험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천수답식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근 장흥군 축산사업소장은 “AI의 유입 차단 성패에 따라 가금류 농가의 존립 여부도 결정된다는 점에서 유입 차단은 생존권과 직결된다”며 “이를 위해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 관 주도의 방역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사실상 방역 최일선에 서있는 농가의 협력 대응이 절대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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