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 주민행동’ 조직을 만들자 [쓴소리 곧은 소리]
  •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sglee@uos.ac.kr)
  • 승인 2022.11.25 16: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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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22년 인명사고 난 32개 재난 분석…대부분 官이 예측 못 한 곳에서 발생
246개 시·군·구, 3000여 읍·면·동마다 주민신고 단체 만들어 官을 움직이게 해야

158명이 사망한 10·29 이태원 참사 뒤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경찰청장은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찰의 112 녹취록이 공개되자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11차례에 걸쳐 112 신고가 접수된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문제도 함께 드러났다. 이렇게 사고 초반에 문제가 과감하게 공개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사실 확인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의지가 읽힌다.

큰 재난을 당했던 시기의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도 컨트롤타워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를 많은 사람이 하고 있다. 그런데 재난은 종류가 다양하고 현장이 수도 없이 많으며 상황이 24시간 계속 변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해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만으로 실태가 파악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이 과도하면 국민들이 정부에 능력 이상의 기대를 갖게 해 정직하고 적절한 대책 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점이 있다.

2011년 7월 서울 우면산 산사태,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는 형태만 다를 뿐, 서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 산사태는 산의 상부에서 시작해 산의 하부로 내려온다. 그런데 산 상부에는 산림청의 ‘산사태취약지역’ 2만6000곳, 산 하부에는 행정안전부의 ‘급경사지 위험지역’ 1만6000곳이 행정편의적으로 각각 나뉘어 관리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산사태로 인해 실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은 대부분 산림청과 행안부의 관리 대상 바깥에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뭘까. 행정기관들이 산사태를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똑같았으나 35년간 수백 개의 재난 현장을 경험하면서 탁상공론적 접근의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다.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시민들이 119 구조대원들과 함께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수백 개 재난 현장의 공통점: 행정기관들이 안 움직인다

산사태에서 인명피해가 처음 발생한 부분을 살펴보면 도로·주택·태양광 등과 같이 사람이 건드린 곳이 80% 정도다. 인명피해의 20%만이 자연적인 산사태 지역에서 발생했다. 즉, 산을 인위적으로 건드리면서 지질과 지형에 맞는 재난 방지대책을 소홀히 한 것이 인명피해의 주요 원인이었다.

2009년 7월 여름 폭우 때 부산에서 300곳과 2010년 9월 가을 폭우 때 서울에서 80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대부분 관리 시스템(부산시에서 600곳, 서울시에서 325곳이 관리 대상) 밖에서 발생했다. 특히 2010년 9월 서울 우면산 2곳에서 큰 사태가 발생했으나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묻혔다. 필자는 두 달 뒤인 2010년 11월 산사태 대책이 시급하다는 49쪽의 정책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으나 후속 조치가 없었다. 결국 이듬해인 2011년 7월 서울에서 또다시 78곳의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때 우면산 산사태는 12곳에서 발생해 16명이 사망했다. 물론 78곳 대부분은 서울시가 관리하는 290곳 이외의 지역이었다.

인명피해가 난 산사태 현장을 가보면 사고 직전에 위험하다고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무원들이 무시하기 일쑤이고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해 304명이 사망했는데, 이 사고 역시 3개월 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가 있었다. 세월호 직후 5개 분야 전문가들이 초청된 국회 공청회에서 필자는 우면산 산사태 문제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다른 분야 발표자가 “어떻게 분야는 다른데 공무원들의 행태가 똑같냐”고 놀라워했다. 우면산 산사태 3주기인 2014년 7월 유족 대표는 “우면산 산사태 원인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는 통한의 추도사를 했다.

최근 인명피해가 발생한 다른 재난들로 작년 6월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철거 현장 17명 사상, 올해 1월초 광주광역시 신축 아파트 공사장 6명 사망. 올해 1월말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3명 사망, 지난 9월초 경북 포항시에서 하천 범람 침수로 아파트 지하주차장 7명 사망과 포스코 제철소 1조5000억원 피해, 지난 10월말 경북 봉화 탄광에서 광부 2명 매몰 뒤 구조 등이 있다. 대부분 사전에 주민들이나 공사 관계자들이 위험을 알았거나 민원이 제기되는 등 똑같은 구조였다.

 

재난 예방을 위한 공익제보자 신고 장려해야

또한 이태원 사고 직후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많은데 압사 사고의 골든타임은 4분이다. 사고 후 119구급대가 빨리 출동하더라도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재난으로부터 인명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사후 대처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필자는 예방을 강조하는 신문 기고를 2018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4차례 했다. 부처 간 이기주의, 이해관계자들의 충돌 때문에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국내 재난관리시스템의 현실과 인명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제안’ 134쪽을 작성해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난 8월 ‘대통령실 국민제안’으로 각각 제출했다. 정책제안서는 1994년 성수대교 사고부터 올해 초순까지 32개 주요 재난사고를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사전에 대부분 제보가 있었는데 거의 묵살되었고, 국내 재난관리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예방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다.

첫째, 현장을 잘 아는 지역 주민들이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고 퇴직한 베테랑들과 함께) 하부 풀뿌리 조직인 ‘재난안전 주민행동조직’을 전국 240여 개 시·군·구 및 3000여 개 읍·면·동 단위로 모두 만들어야 한다. 평소에 각 지역을 24시간 감시하고, 위험 조짐이 보이면 주민이 바로 경찰이나 파출소, 시청이나 구청 및 군수에게 신고해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

둘째, 재난 예방을 위해 공익제보자의 도움이 필요한데 고발자라고 폄하하고 매장시키려는 사회 분위기가 있으므로, 지역사회에서 철저한 신분보호와 보상이 필요하다. 셋째, 원인조사보고서를 공개해 왜곡을 사전 방지하고, 사고 원인을 시스템이나 법규 개선에 적용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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