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대법관 권순일’의 재판거래 의혹 수사는 어디로 증발했나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8 08: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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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전 대법관(63)은 좋은 머리로 명판결을 많이 남겼지만 결정적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저지르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대체로 돈이든 자리든 마땅히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않고 한번 더 욕심을 부리다 발생했다. 그는 2020년 9월 대법관 임기를 마치게 되자 사법부의 예외 없는 관행에 따라 겸직하던 중앙선관위원장직도 관둬야 했는데 그 일은 계속하려 했다. 권순일의 과욕은 선관위 안팎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급기야 여야 정당에 자리 로비를 하는 볼썽사나운 지경에 이르러 실패했다.

ⓒ연합뉴스

이재명한테 면죄부 준 ‘소극적 거짓말은 무죄’ 판례

권순일의 이른바 ‘이재명과의 재판거래 의혹’은 대법관 12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사건의 판결과 관련됐다. 2심에서 유죄였던 ‘이재명 피고인’의 허위사실 공표죄가 3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뒤집은 핵심 논리는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사실이 아니다”는 대담한 궤변이었다. 이 논리를 개발한 주인공이 당시 12명 대법관의 최선임(김명수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선배)인 권순일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한국은 공직 선거 후보자들이 유권자를 상대로 ‘소극적 거짓말’은 얼마든지 해도 죄가 되지 않는 괴상한 사회가 되었다. 인간 역사는 어떤 측면에선 참말과 거짓말이 싸우는 역사다. 참과 거짓을 가르기도 어려운데 앞으로 적극적 거짓말과 소극적 거짓말은 또 어떻게 나누라는 말인지.

2020년 7월, 임기 두 달을 남겨둔 권순일 대법관이 가세해 7대5로 승리한 ‘소극적 거짓말은 무죄’ 판례는 사법부의 신뢰를 붕괴시킨 판도라 상자였다. 결과적으로 대법관 권순일은 그 좋은 머리로 사법부뿐 아니라 이재명 피고인에게 대선 출마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오늘의 정치 상황을 야기한 정치 판도라 상자까지 열었다. 이 대목에서 권순일과 이재명 사이에 ‘이재명 무죄’로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 ‘권순일 대법원장’이 약속되었으리라는 재판거래설이 떠돌았는데 역사에서 가정이 성립하지 않기에 이 소문의 진실은 추적하지 않는 게 좋겠다.

 

대장동보다 더 무서운 사법부 신뢰 붕괴 사건

재판거래설이 소문이 아니라 실체적 단서를 갖게 된 것은 1년3개월이 지난 2021년 10월이었다. 대장동 사건이 터져 주범으로 유명해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가 ‘이재명 무죄 판결’을 전후해 “동향 지인이라 가끔 전화하는 사이(김만배의 표현)”였던 권순일 대법관을 8번이나 대법원 청사로 찾아가 만난 사실이 동아일보 특종으로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베푼 특혜로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긴 김만배가 권순일에게 로비를 했고, 그 결과 ‘이재명은 무죄’라는 대가가 지불됐다는 재판거래 의혹의 한 조각퍼즐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퍼즐로 권순일이 대법관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직을 맡아 김만배로부터 매달 15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을 챙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완성도 높은 재판 거래의 실체적 단서가 드러났는데도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시늉만 냈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물증 확보를 위해 검찰이 청구한 대법원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세월이 흘러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무슨 일인지 권순일 사건만은 묻혀있다. 검사와 판사끼리 담합 구조라도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대장동 사건보다 훨씬 더 무서운 대법관이 낀 재판거래의 진상이 규명되기 전엔 검찰과 사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 최근 권순일은 변호사 개업 등록을 신청했고, 이에 대한변협이 자진 철회를 요청한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권순일이 변호사 활동을 하는 거야 막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사법부 신뢰 붕괴 사건은 특검을 해서라도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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