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00일도 안 돼 멈춰선 용산시대 상징 尹 ‘도어스테핑’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2: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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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으로 남느냐, 실패한 실험이냐…기로에 선 윤석열의 ‘소통 초심’

휴일인 11월20일 용산 대통령실 1층 현관 안쪽에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림막이 들어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이라 불리던 출근길 문답을 갖던 장소다. 1층 기자실 출입문과는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가림막이 들어서자 도어스테핑 중단을 예고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하루 만에 결국 도어스테핑은 중단됐다.

11월24일 윤 대통령 취임 200일을 코앞에 두고 용산 대통령실의 상징과 같았던 도어스테핑이 멈춰선 것이다. 소통을 강화하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고,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농축됐다는 평가를 받은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 취임 다음 날 시작해 194일 동안 총 61회가 진행됐지만 끝내 중단됐다.

윤 대통령은 5월11일 첫 도어스테핑을 했다. 새 대통령의 첫 출근길. 청와대에서 나온 첫 대통령에 대한 기대만큼 국민의 관심도 뜨거웠다. 당일 오전 8시35분. 용산 집무실로 출근한 윤 대통령은 중앙 현관으로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대기하던 기자들을 발견한 윤 대통령이 대뜸 “1층에 다 입주했어요? 책상들 다 마련하고? 잘 부탁한다”며 말을 건넸다.

곧이어 기자들과 짧은 문답이 이어졌고, 그렇게 도어스테핑은 시작됐다. 청와대 시절에는 출근하는 대통령과 대화를 매일 아침마다 나누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통령 집무실과 출입기자단이 있는 춘추관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야권에서도 “잘한 일”이란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이자 마지막 소통수석이었던 박수현 전 수석은 도어스테핑에 대해 “‘우리보다 잘하면 어떡하지?’ 하는 부러움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잦은 논란에도 신선한 충격 줬던 출근길 문답

도어스테핑이 진행된 기간 자체가 윤 대통령의 우여곡절과 발전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대통령과 취재진의 ‘즉석 문답’만 있었다. 경우에 따라 7~8개의 문답이 오간 적도 있었다. 이런 탓에 실수도 자주 벌어졌다. 즉흥으로 벌어지는 소통이 오히려 정부 정책에 혼선을 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7월24일 윤 대통령은 고용노동부가 전날 발표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관련 질문에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아침 언론에 나왔다”고 밝혀 혼란을 빚기도 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날도 여러 날이었다. 검사 출신 인사가 내각에 너무 많다는 지적에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나”(7월8일)라고 말하거나, 국무위원 후보자의 음주운전 논란에 대해 “여러 가지 상황이라든가 가벌성이라든가 도덕성 같은 걸 다 따져봐야 하지 않나”(7월10일)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7월11일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했다. 취임 두 달 만이었다. 코로나19 재유행을 중단 이유로 들었지만, 잦은 말실수에 부정평가가 처음으로 60%를 넘어선 점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TBS 의뢰, 7월8~9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 대상,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평가는 34.5%, 부정평가는 60.8%로 나타났다. 취임 두 달 만에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셈이다.

잦은 말실수가 논란이 됐지만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은 분명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7월9~10일)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어스테핑과 관련해 직접 소통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만큼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이 50.2%를 기록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 등 부작용이 있으니 ‘그만해야 한다’는 응답은 44%였다.

윤 대통령 역시 소통 의지를 꺾지 않았다. 도어스테핑은 하루 만에 재개됐다. 즉흥적인 답변에 실수가 많다는 지적을 받자 질문의 양을 줄였고, 대통령의 발언도 한껏 정제됐다. 도어스테핑이 자리를 잡아가며 ‘소통하는 대통령’이라는 의지와 차별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런 용산시대의 상징은 동남아시아(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직전 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서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용산시대를 상징하는 소통과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결국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의 공개 충돌까지 이어졌고, 도어스테핑도 막을 내렸다.

대통령실은 도어스테핑 중단과 관련해 언론 공지를 통해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도어스테핑 중단 사실을 알렸다. ‘불미스러운 사태’는 11월18일 MBC 기자가 문답을 마치고 집무실로 향하는 윤 대통령을 향해 항의성 질문을 한 데 이어, 대통령실 비서관과 충돌한 일을 뜻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도어스테핑이 실패한 실험으로 끝날지, 제대로 자리 잡는 전통이 될지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잘못된 대응이 지렁이를 용으로 만들어”

대통령실 측은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했으면 좋겠다는 저주와 비난은 참을 수 있지만, 국익을 저해하는 MBC의 왜곡이나 날조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MBC 기자의 질문이 다소 거칠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대국민 소통 창구를 닫는 것은 작은 일을 크게 키우는 과잉 대응일 뿐이라는 지적이 바로 제기됐다. 기자의 취재 예절이 문제라면 해당 언론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출입기자단에 출근길 문답 운영 방식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면 될 일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진중권 작가는 “잘못된 언론 대응으로 지렁이를 용으로 만들었다”고 MBC에 대한 대통령실의 대응을 꼬집었다.

논란은 그대로 정치권으로 옮겨 붙었다. 여권은 MBC 기자의 질문 내용과 태도를 규탄하는 동시에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이 불가피했다며 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나섰다. 반면 야권은 윤 대통령이 비판적인 언론을 배제하고 탄압하는 ‘선택적 언론관’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MBC 기자에 대한 징계나 도어스테핑에 참여하는 취재진의 제한 등을 구체적인 후속 조치로 거론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 기자가 대통령에게 할 법한 질문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서는 도어스테핑을 재개하기 어렵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소통이 아닌 ‘쇼통’이었다”며 “편협한 언론관이 결국 취임 200일 만에 옹졸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도어스테핑이 단순한 문답식 쇼통이 아닌 ‘소통 의지’였다면 그 초심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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