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코로나 방역 영웅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간호법 향방은?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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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처우 개선, 간호인력 확보 담은 법…6개월째 국회 계류 중
간호사협 “현행 의료법 한계” vs 의사협 “의사진료권 침해 우려”
간호사들의 업무 강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간호사들의 업무 강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5년차 간호사 김지영(가명·31)씨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한다. 출근 후 병동 물품을 확인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혼쭐이 난다. 10명이 넘는 환자의 상태도 매 시간 체크한다. 이 과정에서 수 차례 실랑이도 발생한다. 약품 관리와 병실 정리도 김씨의 몫이다. 한숨 돌리고 당직표를 보니, 내일은 ‘나이트’(야간 근무) 순번이다. 이젠 적응될 법도 한데 여전히 막막하다.

특히 김씨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원업무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병동이 부족해 천막이나 컨테이너에서 숨 막히는 방역복을 입고 3~4시간씩 일했기 때문이다. 병동에 음압기도 없어 다른 시설에서 빌린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1시간 보장받는 쪽잠도 자지 못해 정신이 멍해질 때면, 당장이라도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씩 들었다.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오래 전부터 회자돼왔다. 통상 간호사 업계에선 힘든 업무 강도로 조기 퇴직하는 비율이 높아, 40대만 돼도 ‘올드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이에 간호사들도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의료법과 분리된 독자적 ‘간호법’ 제정이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 개선 ▲지역공공의료와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간호정책 마련 ▲간호인력 확보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 규정 ▲노인·장애인 등에게 요구되는 간호·돌봄 제공체계 마련 등을 담은 법안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법의 취지에 대해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제공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내용은 현재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에서 하위 항목으로 대신 다뤄지고 있다. 다만 대한간호협회(간협) 관계자는 “의료기관 외에도 지역사회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간호 업무를 체계화하고 간호정책도 수립해야한다. 그런데 70년도 넘은 현행 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간호 현장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독자적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아 모두 간호법 제정에는 공감대

국회에서도 간호법 제정 움직임을 보였지만 번번이 무산돼왔다. 그러던 중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당시 전선에서 땀방울을 흘린 간호사들은 ‘방역 영웅’으로 각광받았다. 이를 통해 간호법 입법 상황에 반전이 일어났다. 2021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연이어 간호법 추진에 재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지난 5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이 처음 통과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6개월이 흘렀고, 간호법은 법사위에 상정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간협 관계자는 “간호법이 여야대선 공통공약이었음에도 국민의힘에서 여전히 미온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석 의원실 관계자도 “이재명 대표의 공약 중 추진되고 있지 않은 법안으로 특히 간호법이 거론될 만큼, 간호법 제정은 전체 당론”이라며 “법사위 통과 등 남은 절차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 문제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간호사들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며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지난 16일 간호사와 간호대 학생들 약 1000명은 여당인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또 21일에도 국회의사당 대로에 약 3만 명이 모여 같은 취지의 궐기대회도 개최했다.

결국 여야는 24일 간호법 제정과 관련해 대선공통공약추진단을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했다. 간협 관계자는 “그동안 국민의힘이 소극적으로 나와 법안처리가 지체됐지만, 이제 여야 대선공통공약추진단이 운영되는 만큼 대선공통공약인 간호법이 조속히 제정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간호법 제정'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대학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간호법 제정'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대학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의협 반대에 간호법 제정 ‘첩첩산중’

다만 간호법 제정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인들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13개 보건단체에선 “간호법 자체가 특정 직역만을 위한 법안이고, 의료에서 간호를 떼서 생각하기 어려운데 인위적으로 분리해 의료법과 상충되는 문제가 많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도 의사처럼 진료행위가 가능해져 의사 진료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간호조무사나 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의 업무 영역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에 속도를 내는 것을 두고 “(의사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는 거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13개 의료단체들이 연대해 법안 통과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간협은 의협이 해당 법의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간협 관계자는 “어차피 진료의 주체는 의사일 것이며, 간호법은 간호사 단독개원과 무관하고, 특정 직역에게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코로나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들의 첨예한 대치, 과연 정치가 해결할 수 있을까. 낙관은 쉽지 않다. 간호법을 두고 여야 간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민주당 측은 간호법 제정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다만 적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간호법에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간협과 의협, 그리고 국민들이 여야의 논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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