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끼’ 소녀의 대활약…뮤지컬 《마틸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3 13:0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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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고도 숨죽인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자신만의 기적을 찾아가는 천재 소녀의 성장과 모험을 담은 뮤지컬《마틸다》가 돌아왔다. 2018년 한국 초연을 가진 지 4년 만이다. 이 작품은 영국 출신으로 아동문학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로 꼽히는 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이 1988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 아이들의 필독서 중 하나인 《마틸다》는 1996년 미국에서 《배트맨》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배우 대니 드비토가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면서 직접 감독까지 맡은 영화 버전이 나오면서 대중화됐다.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 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 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 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4년 만에 돌아온 작은 영웅, 마틸다 

2003년에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만들었던 영국의 명문 극단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뮤지컬 버전 창작에 들어가 무려 7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쳤는데 영국 배우 팀 민친이 작사·작곡을 맡아 2010년 스트라트포드에서 초연을 가졌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다. 영국 공연계의 최고 권위의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최고의 작품에 등극했고, 브로드웨이 공연으로도 토니상 대본과 무대디자인 등 여러 부문을 수상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공연은 전 세계적으로 오리지널 무대가 동일하게 공연되는 ‘레플리카’ 라이선스 버전이어서 특유의 연출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토니상 대본상을 받은 이 작품의 대사는 어른 관객들에게는 뼈 있는 사회 풍자적인 위트를 느끼게 해주고, 아동 관객에게는 즉각적인 웃음과 공감을 유도한다. 주요 배우들이 수시로 객석으로 퇴장하고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쇼 장면도 배치돼 있어 무대와의 간격이 가깝다. 토니상 무대디자인과 조명디자인상을 받은 인상적인 무대에는 알파벳 블록이 무대 전면에 쌓여 있는 압도적인 광경을 보여주며 화려한 댄스 대회의 안무, 교실에서의 마법, 감옥에서의 레이저 조명 등 볼거리도 많다. 

이 작품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5세 여자아이 마틸다가 탄생과 함께 가정 내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불행하게 차별받으며 무관심 속에 방치돼 성장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깜찍한 소녀였던 마틸다에게는 가족이란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애정 없는 사람들이다. 중고차 매매상인 아버지는 고물차를 헐값에 사서 마일리지를 조작하는 수법 등으로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사기꾼이다. 엄마는 외모 가꾸기와 춤에만 관심이 있고 다가오는 댄스대회 출전에만 온통 신경이 팔려 있어 평소 마틸다의 교육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집 안에서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TV뿐이며 아들이자 마틸다의 오빠 역시 이런 분위기에 순순히 적응해 마틸다를 제외한 세 식구는 집에 오면 온종일 TV만 시청한다. 

마틸다는 자생적으로 독서의 취미를 키워가면서 수학에서도 천재성을 보여주는데도 부모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마틸다를 별종 취급하며 TV 시청을 강요하고 독서를 방해한다. 결국 학교에 갈 나이가 됐어도 보내지 않으려다 학생들을 꽉 잡기로 악명 높은 트런치불 교장이 있는 학교에 입학시킨다. 교장은 전직 투포환 올림픽 대표선수 출신으로 그 힘을 아이들에게 마구 써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공중에 날려 버린다. 트런치불은 교장이면서도 세상에서 아이들을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학교에서도 마틸다는 친구들을 하나씩 사귀게 되고 결정적으로 착한 담임 선생님 미스 허니를 만날 수 있었다. 

담임은 마틸다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발견해 월반시켜 주려고 교장과 부모에게 제안하지만 모두 거절당하며 오히려 마틸다가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해 직접 독서와 면담을 통해 아이를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악조건하에서 과연 마틸다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무신경한 가족들과 교장의 감시를 피해 천재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뮤지컬에서 마틸다는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친구들이 교장으로부터 부당하게 체벌을 받으면 ‘이건 옳지 않아!’라고 항변하기도 하고, 이에 친구들은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목소리를 서서히 찾아간다. 운율에 맞춰 ‘똘끼’로 번역된 ‘노티(Naughty)’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또한 마틸다는 단골 도서관의 사서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주변 인물과의 연관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교장과 부모들은 동화적인 특징을 담은 강한 악역으로 묘사되지만 반대편의 약자들인 마틸다와 담임 그리고 친구들을 돋보이게 하는 풍자적인 캐릭터로 재미를 준다. 특히 트런치불은 여성 배역이지만 남자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코믹과 위압감을 동시에 극대화한다. 한국 공연에서는 최재림, 장지후 배우가 열연 중이다. 

이 작품에서 또 다른 풍자적인 소재는 TV와 독서의 대비다. 현재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정보 위주로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성장기 아이들이 ‘바보상자’로 불리는 전통적인 매체인 TV에 몰두하는 시청 행태는 교육에 부정적이라고 인식되었다. 마틸다는 집에서 유일하게 독서를 취미로 삼고 있는데 이를 두고 부모들이 여자애가 책을 읽으면 여자답지 못하다고 다그치고 이를 괴짜 취급하며 관객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장면은 큰 웃음을 준다. 만약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거나 TV는 아니어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많이 빠져 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재미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한 장면ⓒ연합뉴스·신시컴퍼니 제공

아역 배우들이 이끄는 ‘꽉 찬 무대’ 

이 작품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처럼 작품의 핵심 서사를 책임지며 극 전체를 이끌고 가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은 여자아이 ‘마틸다’ 역의 배우들이 돋보인다. 성인 배우의 ‘아역’이 아니고 그 자체가 타이틀 롤이자 원톱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마틸다는 4명이 캐스팅되는데 초연 배우들은 올리비에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에 이어 이번에도 4명(임하윤, 진연우, 최은영, 하신비)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활약 중이다. 같은 반 브루스, 라벤더, 토미, 앨리스, 나이젤, 아만다, 에릭 등 학교 친구들을 맡은 스무 명의 조연 역할도 모두 마틸다 또래의 어린 배우들이다. 이들의 춤과 노래도 놀랍지만 특히 그네를 활용해 성인 앙상블 배우들과 교차하며 노래하는 2막의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 장면은 무대와 객석에 모인 세대를 초월한 모든 사람을 하나로 엮어내는 마법 같은 장면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연말을 맞아 뮤지컬 《마틸다》를 영화화해 처음 공개할 예정이다.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 마틸다 역으로는 알리샤 위어, 미스 허니 역에는 흑인 배우인 라샤나 린치가 캐스팅되었으며 트런치불은 여배우 엠마 톰슨이 맡아 기대감을 더한다.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하고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에너지가 넘치는 5세 소녀 마틸다가 어른들이 구축한 부조리한 세상에 유쾌하게 맞서는 《마틸다》는 온 가족이 응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공연은 내년 2월26일까지 서울 신도림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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