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업은 재난’ 전면전 선포한 尹 정부, 파국 기로에 선 노·정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2 16:0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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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유의 업무개시명령 이어 안전운임제 폐지까지 고강도 압박
속전속결 초강수에 민주노총 추가 총파업 예고 속 동력 찾기 절치부심

윤석열 정부와 노동계가 정면충돌했다. 복합 경제위기 한가운데서 벌어진 ‘강 대 강’ 대치로 산업계와 민생은 비상이다. 가까스로 마주 앉은 자리마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불법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와 동투(冬鬪) 분수령을 맞은 노동계는 과연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전면전은 향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과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이기적 귀족노조” vs “생존 안전장치”

정부와 화물연대는 전면전을 선포하며 모두 ‘국민’을 최대 명분으로 내세웠다. 12월31일 만료를 앞둔 안전운임제 영구화와 품목 확대를 요구한 화물연대는 이 장치가 결국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응수했다.

파업이 가시화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정부 대응 속도와 수위가 한층 세졌다. 윤 대통령은 파업 이틀째로 접어든 11월25일 “업무개시명령 검토”를 공식화했다. 정부의 ‘대응 옵션’ 윤곽이 드러나면서 화물연대는 들끓었다. 이후 두 차례 테이블에 마주 앉은 노·정은 ‘예상대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세 번째 만남은 기약조차 없다. “귀족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운송거부를 지속하는 한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급기야 11월29일, 파업 6일 차에 국무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하며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국토부는 즉각 시멘트 운수 종사자와 업체를 향한 명령서 송달에 착수했다. 화물연대는 정부를 향해 “반헌법적” “계엄령”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파업 7일 차,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통령실이 총파업 출발점인 안전운임제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까지 거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당초 정부는 이 제도를 3년 유예한 뒤 효과를 검증해 추가 연장 여부를 검토하자고 했다. 화물연대는 사실상의 정책 종료 수순으로 보고 11월 총파업 명분으로 삼았다. 정부가 경로를 급선회하자 노동계는 “처음부터 협상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부는 화물연대와 협상하지 않는다”며 민주노총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공을 국회로 돌렸다. 화물연대의 요구 사안은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논의돼야 하는데, 정부에 협상 책임을 얹는 것은 ‘정치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이 기조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할 노동개혁과 노사관계 관련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이중화 구조에서 정부가 보호해야 할 ‘진정한 약자’는 하청업체 소속 등 세력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등 대규모 집단인 ‘강자’의 일방적 요구와 집단행동에 응하지 않겠다는 전략이 녹아있다. 정부 입장에선 이번 화물연대 파업 대응 결과와 성적표가 이 밑그림 완성에 중요한 퍼즐이 되는 셈이다.

 

12월 첫 주말 분수령…‘포스코 노조’도 변수

정부의 다음 수순은 각종 지원 중단과 안전운임제 폐지 검토다. 업무개시명령 범위도 피해가 큰 정유, 철강, 컨테이너 분야 등으로 확대 초읽기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 조치도 총동원할 기세다. 화물연대 압박 강도를 높이는 정부가 가장 큰 동력으로 삼은 건 ‘법과 원칙’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11월30일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워나가는 과정”이라며 “정부가 노사 문제를 법과 원칙에 따라 풀어가지 않고 그때그때 타협하면 또 다른 파업과 불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안전운임제가 파업을 봉합하기 위한 ‘그때그때’ 일회성 대책이었고, 현 정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 중 하나도 ‘법’이다. 화물연대는 그동안 정부는 화물운송 종사자를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규정해 왔는데, 이들에게 강제성 있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것은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온 ‘자유’와 ‘헌법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라 강변한다. 화물연대는 정부 조치의 법적 하자와 명령서 송달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을 지적하며 법정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공언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시작되자 조직 전열을 추스르며 고강도 맞대응을 선포했다. 당장 12월3일 서울·부산에서 노동자대회를 연 뒤 6일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에 돌입한다. ‘총파업→제재→총파업’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화물연대의 최대 동력이 ‘조직력’과 그에 기반한 ‘단체행동’인 점을 감안하면 투쟁 화력이 언제까지 유지될지가 관건이다. 업무명령 대상자 파악과 송달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번 주말이 최대 분수령이다. 현장 복귀자가 점차 늘어날 경우 대오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상황도 변수다. 6년 만에 파업에 돌입한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은 12월1일 새벽 사측과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내면서 하루 만에 종료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도 12월2일 파업을 예정했다가 당일 새벽 사측과 타결을 이뤄내며 전격 철회했다. 시민의 발이 묶일 경우 그 피해와 후폭풍은 노·정을 향해 쏟아질 수밖에 없는데, 양쪽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찬성률 69.93%)하며 이탈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포스코지회는 “지회는 포스코 직원 권익 향상을 위해 존재하지만, 금속노조는 지회가 금속노조를 위해 존재하기를 원한다”고 뼈 있는 비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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