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수원·신촌 모녀 비극’ 도돌이표…‘복지 그늘’에 햇살 비춰줄 법안은?
  • 변문우 기자·정용석 인턴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3 12: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야, 복지 사각지대 발굴 위해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 발의
전문가들 “데이터에 치중하지 말고, 현장 인력부터 확충해야”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한 노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한 노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기사 내용과 무관) ⓒ시사저널 임준선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 만인 11월25일. 서울 서대문구 먹자골목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납부를 독촉하는 고지서와, 10개월째 월세가 미납됐다며 퇴거를 요구하는 집주인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모녀는 건강보험료 14개월, 통신비 7개월, 금융채무상환도 7개월째 연체되는 등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은 ‘수원 세 모녀’와 마찬가지로 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채권자들을 피하기 위해 전입신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석 달이 지나도 복지 사각지대에 볕은 들지 않았다.

이 같은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촌 모녀가 사망한 날도 그랬다. 정부가 수원 세 모녀와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날, 또 다른 모녀가 같은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복지 대상자들의 주민등록상 집 주소와 실 거주지가 달라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관련 법은 있다. 앞서 정부는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회보장급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사회보장급여법)’을 2014년에 제정했다. 이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겠다는 의지였다.

다만 현실은 도돌이표다. 기존 법의 허점은 무엇일까. 현행법에 따르면,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를 경우, 영유아 보육료와 양육수당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사회보장급여를 다른 보장기관을 통해 신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회보장급여에 대한 접근성에 제약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들의 연락처까지 누락돼있을 경우, 지원을 하려고 해도 행방을 못 찾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살던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현관문에 8월23일 엑스자 형태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 연합뉴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살던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현관문에 8월23일 엑스자 형태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 연합뉴스

국회, 데이터 기반 ‘그물망 복지’로 허점 메운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 같은 법의 허점을 보완하고 복지 대상자들을 촘촘히 발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복지 대상자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의 종류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소득·재산·인적정보 등을 수집해 사회보장급여를 안내하는 ‘복지 멤버십’ 가입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여야도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후인 지난 10월,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을 동시에 올렸다. 국민의힘에선 강기윤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선 신현영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강기윤 의원은 법안 5조에 집중해,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를 경우 현 거주지에서도 사회보장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현영 의원은 법안 11조에 집중해, 복지 지원대상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전기통신사업자 및 관계 기관 등으로부터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조속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강기윤 의원실 관계자는 “오는 6~7일쯤 법안소위원회를 통해 안건에 대해 논의될 예정”이라며 “법안소위 위원들이 논의하기에 100% 통과를 확답할 수는 없지만, 여야 이견 없는 쟁점 없는 법안이라 (통과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는 현장 인력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는 현장 인력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실효성엔 물음표…“신청 의지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

전문가들도 해당 법안의 취지와 일부 내용에 대해선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위원은 전기통신사업자 등으로부터 소재 파악 조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일반적으로 복지 신청할 때는 연락처 기재를 하는데, 신청 이력이 없는 분들은 연락처가 없을 것이다. 또 기존 연락처가 남아있더라도 변경된 경우가 상당하다”며 “이런 분들의 경우 조회 요청을 통해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일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법안의 실효성이 크진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 위원은 “복지 혜택을 받으려는 의지가 있는 분들에 한해서만 소용이 있다”며 “채무 등을 피해 신변을 숨기고 숨어들어간 분들은 (법안 대상에) 해당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돌리기 시작한 게 2015년 말부터인데도 계속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또 여야 발의안과 정부에서 내놓은 해결책이 ‘데이터 확보’에만 방점을 찍은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앞서 복지부의 개선 대책과 여야 발의안에서도 사회복지인력 확충과 관련한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최 위원은 “데이터가 지원대상자를 찾아내는 건 아니다”라며 데이터 확보가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는 현장 인력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은 “위기가구는 여러 서비스들을 연계해서 지원해야 해서, 결국 사람이 할 수 밖에 없는 일”라며 “인력이 없으면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기도 힘들고 오히려 데이터들이 현장 인력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보를 사회복지 공무원분들에게 제공하면, 지자체 공무원들이나 사회복지 전문 인력들이 실제 방문을 해봐야 확인이 되는 것”이라며 “공무원을 확충하거나 민간과 연계해서 지역사회 네트워크 등을 옆에서 지원하면 (생활고 사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도 “계속 빅데이터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 지역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으로는 엄청난 행정력이 필요한데, 우리가 그만한 행정력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고 꼬집으며 “동사무소 등 행정 인력을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