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대통령 문재인’은 왜 3시간30분간 행동하지 않았을까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9 09: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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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첫 정상회담을 2000년 6월 성사시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북한 측 요구에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지 않았다.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던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의 《증언》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당시 북한 측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특정 언론사 기자의 방북을 거부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가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북측이 위협하는 대로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으니 강력히 항의하고 정면 돌파하라”며 강경 대응을 지시해 해당 기자의 방북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발표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해피격수사에 대한 공식입장문을 한 기자가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발표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해피격수사에 대한 공식입장문을 한 기자가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준 월북몰이’의 진실보다 더 알고 싶은 것

눈앞에서 국민의 생명·인권·국체가 훼손당하는 상황을 보고 있을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런 편에 속했다. 그는 2017년 12월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차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한국 기자단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구타당했으나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았다. 대신 공식 연설에서 “저는 시진핑 주석에게서 중국의 통 큰 꿈을 보았다…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대통령을 자임하는 그가 중국이나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정성을 기울이는 점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자국민 인권과 국체 훼손에 이렇게 무감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22일 ‘북한군에 의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때 어떤 행동을 했는지 밝혀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씨가 산 채로 북한 해역에 부유하고 있는 사실이 우리 군 당국의 대북 감청 등에 의해 확인된 시점이 9월22일 오후 3시30분이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관련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간은 오후 6시30분. 북한군이 이대진씨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해상 현지에서 소각하였”(북한이 한국 정부에 보낸 통지문)던 시각은 밤 10시였다.

일련의 시간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후 6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이대진씨를 살릴 ‘3시간30분’의 행동할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친문 세력과 검찰이 이른바 월북몰이의 진실을 놓고 공방하고 있는데 ‘사람 살리기’ 입장에서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죽은 사람이 월북을 했느니 실족을 했느니 따지면 뭘 하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시늉 아닌가. 문재인 측 사람들은 이대진씨가 월북했다면 더 이상 우리 국민이 아니니 생명 보호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판이다. 그런다고 인간을 구하지 못한 죄가 벗겨질 리 만무하다. 현 정권 사람들은 이대진씨가 실족했다면 전 정권 사람들이 조작·은폐죄를 저지른 셈이니 기를 쓰고 증명하려 한다.

 

김정은에게 ‘죽이지 말라’ 요구했으면 살지 않았을까

사람이 죽으면 법적 책임을 어쩔 수 없이 가려야 하지만 그보다 천 번 만 번 중한 게 죽기 전에 살릴 행동을 하는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행동은 인륜과 양심의 일이다. 대통령에게 적용하면 통치권자의 일이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골든타임 3시간30분 동안 남북 핫라인을 가동하거나 안보·외교 관계망을 총동원해 이대준씨한테 적대행위를 하지 말 것을 김정은에게 요구했어야 했다. 혹은 긴급 기자회견 등 생방송으로 한국의 공무원이 북한군에 포획되었으며 그에게 어떤 위해도 가해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어야 했다. 문 전 대통령이 그랬다면 이대준씨는 살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문제의 시간에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밝히는 일은 피살자의 월북 또는 실족을 가리는 일보다 중요하다. 법이든 정치든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 아닌가.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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