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관장, 이혼소송에 대해 처음으로 입 열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9 10: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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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족 사랑,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 같아 고통스러워”
1심 불복…"항소할 것. 결국 법은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믿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1심 이혼소송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한다고 12월8일 밝혔다. 기술적 검토를 마치고 12일께 서울가정법원에 항소장을 접수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세기의 이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1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포함 666억원의 재산분할을 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노 관장이 청구한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 금액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SK그룹 안팎에서 법원이 사실상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 사진)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연합뉴스

최태원-노소영, 34년 결혼생활 종지부

최태원-노소영 이혼 재판은 천문학적 규모의 소송이란 점 말고도 가정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노소영 관장의 가족애가 조명되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시사저널은 노소영 관장의 심정과 선택을 들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노 관장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기에 한쪽 당사자의 얘기로 비춰지는 언론 인터뷰를 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였다. 정식 인터뷰는 불발됐지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그와 12월8일 대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보도할 가치 있는 얘기들을 접했다.

우선, 노소영 관장은 1심 판결을 납득하기 어려워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변호인들과 상의해 12월 12일께 항소장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항소 의지에 포함된 것처럼 보였다. 기자가 최태원 회장을 ‘전남편’이라고 표현하자 노 관장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최종 판결은 아직 남아있다. 전남편이란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며 용어를 수정해 줬다. 최태원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노소영의 남편’이란 뜻이다. 노 관장은 1심 판결에 대한 심정과 관련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는 전제를 달면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언급했다. 

“저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송구합니다. 가족에 대한 오랜 사랑이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 같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결국 법은 모두에게 공정하리라 믿습니다.”

그는 “여기서 ‘가족’이 최태원 회장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노소영 관장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최태원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심 판결이 나기까지도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법조계에서는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1~2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재산분할 금액이 최소 1조원이 넘으며, SK 계열사들의 주식 지분과 관련된 기여도, 부부가 재산 증식에 미친 영향 등을 2심 재판부가 또다시 원점에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 관장 항소로 이혼소송 장기화 전망

앞서 12월6일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이 서로에게 제기한 이혼소송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이혼한다.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판결 확정 후에도 재산분할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연 5%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연이자로 지급하도록 했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665억원은 국내 이혼소송 재산분할 금액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부인이 지분(1.76%)으로 받은 300억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141억원 지급액도 상회했다. 지난달 이혼 판결을 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13억3000만원을 배우자에게 지급하라는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이혼소송의 핵심 쟁점은 재산분할 대상이었다. 노 관장은 이혼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지주사인 SK㈜ 주식 17.5%(1297만여 주) 가운데 50%(648만여 주)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최태원 회장 측과 노소영 관장 측은 현재 SK주식회사 자본의 원천이 1994년 있었던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노 관장 측은 당시 인수 자금으로 투입된 2.8억원에 대해 결혼할 때 자신이 가져온 지참금이었기에 공동재산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26일 종가 기준으로 135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재산 분할로 노 관장이 요구한 근거다.

반면 최 회장측은 2.8억원이 자신이 선친으로부터 증여받은 돈이었다고 주장했다부친인 고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받은 SK 계열사 지분은 ‘특유재산’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유재산이란 당사자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특유재산은 이혼할 때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1심 법원이 노 관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최 회장으로서는 금전적인 손실을 떠나 그룹 지배력 약화와 함께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는 점을 최 회장측은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 관장은 2020년 5월 최 회장 보유 SK 주식 가운데 650만 주를 처분하지 못하도록 보전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2년이 지난 2022년 4월 서울가정법원은 노 관장이 가처분을 신청한 SK 주식 가운데 54%에 해당하는 지분에 한해 인용결정을 내렸다.

노소영 관장이 역대 재벌가 이혼 재산분할 금액 중 최고액을 경신했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재산분할 금액 665억원과 가사 사건에서 위자료 1억원은 상당히 큰 금액이 맞다. 하지만 당초 시가 1조원이 넘는 SK 주식 절반을 청구한 것에 견주면 법원에서 재산분할 대상으로 본 665억원은 극히 일부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산분할 대상에서 SK 주식을 제외했다. 이에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SK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 퇴직금, 예금 등만 재산분할 대상이 됐다.

 

재산분할 금액 666억원, 역대 최고지만 웃지 못해 

노소영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노 관장 측이 입증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그간 SK그룹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노소영 관장과의 결혼 및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은 포항제철, 코오롱을 제치고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기 위한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며 ‘사돈기업 특혜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SK는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재계에서는 이혼에 귀책사유가 있는 최 회장이 사실상 완승한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먼저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과 무관하다고 판단한 점이 최 회장에게는 ‘큰 짐’을 덜어줬다는 것이다. 노 관장이 판결에 불복해 재판이 이어지더라도 SK(주) 주식이 특유재산이라는 1심 판단이 유지될 경우 최 회장은 SK(주) 주식과 경영권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법원이 판결한 재산분할 665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SK 지분을 판다고 해도 지분율은 약 0.4% 떨어지는 데 그친다. 

다만, 재판부는 최 회장이 ‘유책 배우자’라는 점은 인정했다.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최 회장에 있음을 명백히 했다. 2015년 최 회장은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혼외 자녀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노 관장에게 이혼을 요구해 파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냈던 이혼소송은 기각했고,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위자료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물어야 하는 배상금이다.

1심 판결에 따라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결혼 34년 만에 이혼하게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학 유학 중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장남인 최태원 회장과 만나 교제한 끝에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에 선후배로 만나 테니스를 치며 연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 사이에는 장녀 윤정씨(1989년생), 차녀 민정씨(1991년생), 장남 인근씨(1995년생)가 있다. 최윤정씨와 최민정씨는 각각 SK바이오팜과 SK하이닉스에 근무하고 있다. 최인근씨는 SK E&S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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