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음울해서 매력적인 수요일의 아이 《웬즈데이》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1 13: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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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이 만든 화제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웬즈데이》
북미 포함 전 세계 89개국 1위 기록

웬즈데이, 즉 수요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있다. 그의 어머니가 영국 민요인 《마더 구스》의 가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슬픔이 많다(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 아이에게 우울한 이름을 지어주고 더없이 기뻐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딸은 음침한 얼굴에, 공포와 어둠에 뿌리를 둔 고딕 문화를 대변하는 고스(goth) 차림을 고수하며, 남들을 비꼬는 재주가 탁월한 소녀로 자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웬즈데이》는 별종들을 모아놓은 학교 안에서도 손꼽히는 별종인 웬즈데이 아담스(제나 오르테가)를 둘러싼 판타지 드라마다. 11월23일 공개 직후 북미에서 단숨에 화제의 시리즈로 떠오른 이 작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록적인 반응부터 살펴봐야 한다.

ⓒ넷플릭스 제공

별종 중 별종이 살아남는 법

넷플릭스를 둘러싼 왕좌의 게임에 새로운 주자가 등장했다. 《웬즈데이》는 북미 시간으로 12월6일 누적 시청시간 7억5252만 시간을 돌파했다. 첫 주 기록만 3억4123만 시간이다. 기존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작품으로 손꼽히는 《기묘한 이야기 4》와 《다머》는 공개 60일 만에 각각 조회 수 10억 시간을 돌파했다. 이미 전 세계 89개국 1위를 기록한 《웬즈데이》가 북미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역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담스’라는 성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감지했다면 정확하다. 《웬즈데이》는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오프(spin-off·오리지널로부터 새롭게 파생된 작품)다. 전형적인 미국의 가족상을 고딕 호러풍에 버무려 만든 이 시리즈는 1930년대 주간지 ‘뉴요커’의 연재만화로 시작해 1960년대 TV 시리즈, 1990년대 극장용 영화 세 편, 2000년대에는 3D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웬즈데이는 이 집안의 딸. 가지런하게 땋아 내린 양갈래 머리와 음침한 분위기, 무표정과 독설 그리고 기괴한 장난으로 일관하는 캐릭터였던 그가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8부작 드라마의 배경은 네버모어 아카데미. 청소년이 된 웬즈데이가 전학 온 곳이다. 과거 아빠 고메즈(루이스 구스만)와 엄마 모티시아(캐서린 지타존스)가 다녔던 학교이기도 하다. 웬즈데이는 이전 학교에서 남동생 퍽슬리(아이작 오르도네즈)를 괴롭힌 소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영장에 피라냐떼를 풀어버리는 방식의 복수를 자행한 덕에 쫓겨났다. 모두가 경악했지만 정작 “그 애는 고환 하나를 잃었을 뿐”이라고 응수하는 웬즈데이의 무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네버모어는 뱀파이어(Fangs), 늑대 인간(Furs), 고르곤(Stoners), 사이렌(Scales) 등 별종들이 다니는 학교다. 지역사회인 제리코 사람들은 네버모어 학생들의 존재를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그들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얼마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 사건과 자꾸만 얽히던 웬즈데이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모와 학교, 제리코 마을의 과거가 복잡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결국 자신의 근원과 닿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방영 전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든 이름은 단연 팀 버튼 감독이다. 《비틀 쥬스》(1988), 《가위손》(1991) 등의 초기작부터 최근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 《덤보》(2019)에 이르기까지 괴짜 아웃사이더들의 세계를 그리는 데 필모그래피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왔던 그는 이 시리즈의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다. 8부작 중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고 연출한 초반 4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어둠을 조합한 세계관을 보여줬던 《유령 신부》(2005), 《프랑켄위니》(2012) 등 기존 연출작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연한다. ‘이상한 나라의 웬즈데이’는 그렇게 독하고 음산한 별종들의 세계 속 매력적인 안내자로 소개된다. 주인공이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캐리》(1976)의 명장면 패러디, 발코니에서 음산한 첼로 연주를 신들린 듯 선보이는 웬즈데이의 모습처럼 인상적인 순간도 여럿 나온다.

넷플릭스 영화 《웬즈데이》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아담스 패밀리》 한 장면ⓒMGM Television 제공

타인의 규정을 거부하는 다크 히어로

《웬즈데이》는 슈퍼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스몰빌》 시리즈를 성공시켰던 제작자 알프레드 고프와 마일즈 밀러 콤비가 다시 한번 손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스몰빌》에 이어 이 작품은 과거의 유산을 부활시켜야 할 때 참고할 만한 하나의 성공적인 이정표가 될 만하다. 1990년대 실사영화에서 웬즈데이 역할을 맡았던 크리스티나 리치를 네버모어의 기숙사 사감이자 식물학 교사로 캐스팅하거나, 아담스 패밀리가 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두 번 튕기는 동작이 인상적이었던 TV 시리즈 오프닝을 패러디해 웬즈데이가 비밀 장소로 들어서기 위한 중요 암호로 사용하는 것은 기존 작품의 팬들을 위한 기분 좋은 배려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결국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와 어떻게 조응하게 만들었는가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에 《크루엘라》(2021) 같은 못된 여자의 서사를 뒤섞은 듯한 《웬즈데이》가 자기중심적이라 불릴 만한 성격의 외톨이, 마녀의 후손이라는 별종 기질을 타고난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그건 타인의 무례함에 맞서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모습이다. 이 시리즈는 포용과 사랑만이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하는 무조건적인 가치라는 데 솔직한 반기를 든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애완 전갈이 무참히 죽었을 때, 우는 것은 상황을 원하는 대로 바꾸거나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웬즈데이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웃지도 않는 아이가 된 웬즈데이는 무도회에서 관능적인 움직임 대신 관절이 꺾이는 듯한 해괴한 춤을 선보이고, ‘인스타그램 흑백 필터를 입힌 듯’ 오로지 모노톤의 고스 의상만 고집하는 어딘가 뒤틀린 10대다.

동시에 웬즈데이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 혐오와 차별의 위협에 맞설 줄 아는 ‘다크 히어로’다. 그는 ‘타인이 (자신을) 규정하게 두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며, 그건 성장하는 존재가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다. 비관적이기만 했던 웬즈데이가 서서히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은 성장 드라마로서의 미덕이기도 하다.

웬즈데이를 비롯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이 판타지 세계관을 더욱 탄탄하게 견인한다. 그중에서도 잘린 손 모양의 수행비서 씽(thing)은 등장 때마다 시선을 붙잡아두는 신스틸러다. 화면에는 손가락만 보이지만, 루마니아의 핸드트릭 마술사가 손 연기를 펼친 뒤 CG를 입혀 완성했다. 이 어둠의 시리즈에서는 조력자마저 말이 없다.

넷플릭스의 괴짜 여성들

어딘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괴짜 소녀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단골 캐릭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버티기 위해 약물에 절어있지만, 프로 체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체스에 집착하는 《퀸즈 갬빗》(2020)의 엘리자베스 하먼이 대표 주자. 반은 마녀이고 반은 인간인 사브리나가 활약하는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시리즈(2018~)도 빼놓을 수 없는 괴짜 스토리다. 위력적인 염력으로 친구들과 마을, 나아가 세상을 구하는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2016~)의 일레븐(밀리 바비 브라운)도 폭넓게는 웬즈데이와 DNA를 공유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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