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1개당 5분도 안 보고 ‘밀실·담합’의 산실 소소위로 떠넘기는 국회 예산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9 13:05
  • 호수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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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 늦장 시작→부실 심사→날림 처리→소소위 넘기기
‘고양이 목에 방울’ 달려면 소소위의 ‘비공개 관행’ 반드시 깨야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이라 할 수 있는 63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지키지 못했다. 헌법 제54조는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12월2일로 못 박고 있다. 하지만 2014년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된 뒤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두 차례(2014·2020년)에 불과하다.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을 두고 정면충돌한 여야의 ‘벼랑 끝 대치’로 국회는 올해도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넘겼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12월2일 “헌법이 정한 처리 시한 내 나라 살림 심사를 마치지 못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법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켜야 할 민의의 전당 국회가 또다시 국민에게 실망을 안긴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는 과연 최선을 다해 심도 있는 예산안 심사를 했을까.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회의실이 여야의 내년도 예산안 협상 지연으로 열리지 못해 비어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부실·날림’ 심사가 낳은 늦장 시작

시사저널이 12월7일 기준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국회회의록과 회의 자료를 살펴본 결과,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안을 논의하는 공식 기구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는 8번 열려 총 1981분(33시간1분)간 회의를 했다. 한 번 회의할 때마다 4시간 좀 넘게 예산안 심사를 한 셈이다. 중간에 정회를 한 시간을 빼고 따져보면, 예산소위는 총 8번의 회의를 1차부터 8차까지 각각 4시간23분, 5시간35분, 6시간42분, 7시간44분, 2시간55분, 1시간53분, 2시간43분, 1시간6분 했다. 

내년도 세제개편안을 논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조세소위)가 법안들을 심의하는 데 들인 시간은 어떨까. 국회회의록과 회의 결과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해 보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세소위는 6번 열려 총 1432분(23시간52분) 동안 진행됐다. 한 번 회의에 4시간도 안 되게 진행된 것이다. 조세소위는 중간 정회 시간 등을 제외하고 6번의 회의를 3시간40분, 5시간17분, 3시간17분, 3시간28분, 3시간47분, 4시간23분 진행했다. 

4시간은 충분한 시간일까. 내년 세제개편안에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법안들이 쌓여 있다. 사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들 법안은 제대로 논의도 하지 못했다. 올해 조세소위에 상정돼 논의된 법안 수는 총 315개다. 그런데 회의가 진행된 총 시간은 1432분이다. 즉 법안 1개당 평균 논의 시간이 4.5분에 불과한 셈이다. 

예산소위와 조세소위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사전에 미리 모든 자료를 숙지했고, 모두 예산과 세법의 전문가들이라 심사에 이 정도 시간만 들여도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회의에서 법안과 검토 자료를 처음 봤고, 그 분량은 ‘벽돌’ 책이 여러 권일 만큼 방대하다. 무엇보다 시간은 촉박한데, 논의 내용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국회회의록을 보면, 회의에서 의원들은 종종 심사에 답답함과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 측이 제시한 현황 자료 등도 부실한 경우가 많아 추가 자료 요청이 쏟아지는 모습도 자주 포착됐다. 

국회회의록에 따르면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11월21일 열린 1차 조세소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회계사 출신이거든요. 그리고 일선에서 이걸 다 다뤄본 세무사 경력도 오래된 사람인데 지금 전문위원 얘기를 들어서는… 지금 법률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게 잘못 결정되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소위원들이 판단하기에,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든데… 좀 자세히 하고, 현황은 어떻고, 지금 개정의 사유는 뭐고, 정부안은 뭐고, 우리는 검토의견 어떻게 한다 이렇게 좀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회계사 출신 의원도 한정된 시간과 방대한 자료 속 심사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음이 잘 나타난 대목이다. 

정부 측의 부실한 자료에 의원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장면도 자주 보였다. 11월22일 2차 조세소위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아까 기획재정부에서 금투세 관련해서 야당 보좌진에게 뭘(자료) 다 돌리셨다고 했잖아요. 저희한테는 안 주셨어요. 돌리신 자료들 빠짐없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류성걸 조세소위 위원장은 정부 측에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자료는 모든 의원들에게 배포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예, 그렇게 하겠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여야 의원들이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초치기 심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승자박’ 같은 관행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지만, 여야는 심사를 뒤로 미뤄뒀다가 12월2일이라는 예산안 법정 시한을 코앞에 둔 11월 중순이 돼야 허둥지둥 심사를 시작한다. 

올해 예산소위는 여야의 갈등 끝에 제대로 가동된 날이 예년보다도 더 짧았다. 조세소위의 경우 여야가 소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싸우면서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늦은 11월21일에야 겨우 첫 회의가 열렸다. 장혜영 의원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법정 시한에서 겨우 2주를 남기고 조세소위가 구성된 순간부터 졸속심사는 예견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연합뉴스
여야가 원내대표를 포함한 ‘3+3 협의체’를 가동하며 63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담판에 돌입했다.ⓒ연합뉴스

‘짬짜미의 온상’ 된 소소위…문제의식은 없어 

여야는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못 지키면 이른바 ‘소소위(小小委)’라고 말하는 비공식·비공개 협의 창구를 가동한다. 즉 예산소위를 축소해 예결위원장과 교섭단체 여야 간사, 기재부 차관 등만 참여하는 것이다. 소수의 인원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한정된 시간 내에 타협점을 찾아간다는 명분을 들지만, 사실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꼼수’다. 비공개로 열리는 데다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아 ‘밀실 심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매년 일부 의원이 소소위와 은밀히 접촉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쪽지 예산’을 막판에 밀어넣는 통로로 악용돼 왔다. 

지난해의 경우 소소위를 통해 정부 원안에 없는 사업이 76개나 추가됐다. 여기엔 지역의 도로와 철도 사업 같은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이 상당수 포함됐다. 특히 거대 양당 원내대표 등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눈에 띄었다. 예산이 100억원씩 똑같이 불어난 도로·철도 사업도 7개나 됐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사업 규모가 각각 다르지만 증액 규모가 100억원으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필요에 의한 증액이라기보다 정치적 분배라고 해석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비판에도 올해 역시 소소위는 어김없이 가동되고 있다. 예산소위와 조세소위 모두에서 지금 소소위가 가동 중이다. 소소위 가동에도 결론이 나지 않자 원내대표까지 참여해 막판 ‘빅딜 협상’에 임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 같은 ‘윤석열표 예산’과 지역화폐 등 ‘이재명표 예산’은 물론 법인세율 인하, 종부세 완화, 금투세 유예 등을 한꺼번에 놓고 주고받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에 따르면, 종부세와 금투세 등은 일정한 절충점을 찾았다고 알려졌다.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서도 김진표 의장이 제안한 ‘선(先)통과 후(後)시행’ 방안이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양당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를 위해 수조원의 예산 증액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예산안이 타결돼 봐야 확인할 수 있지만, 지금 양당 의원들은 상당한 액수의 증액 요구를 소소위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적지 않은 양당 의원들이 이제 소위 심사는 형식적인 것처럼 여긴 채 오히려 소소위 가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예산소위와 조세소위에서도 상당수 양당 의원은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소소위 가동으로 자신들의 일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12월1일 5차 조세소위는 이런 대화로 마무리됐다. 

“그다음 또 소위가 아니고 소소위 형식으로 해서 좀 정리하는 작업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상훈 위원·국민의힘 

“내일까지 일독을 하게 되면 그 이후의 일정에 관련되어서는 신동근 간사님과 상의를, 협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류성걸 조세소위원장·국민의힘

“김상훈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좀 좁혀서 하는 부분은 그걸 또 소소위라는 표현을 쓰면 일부 기자들이 그렇게 쓰시더라고, 쓰면 약간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 계셔서 내용은, 형식은 그렇게 하더라도 그냥 어쨌든 간사 간 협의 이렇게 해서 플러스 알파로 하면 됩니다.” 신동근 위원·민주당

“간사 간 심도 있는 협의를, 심사를 하겠습니다.” 류성걸 조세소위원장·국민의힘

 

구태가 치적이 되는 구조 바꿔야 해결 가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당 의원들이 ‘소소위’ 가동으로 얻는 정치적 이득보다 언론의 비판과 여론의 질타 등과 같은 반대급부가 더 강해져야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성공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소소위 폐지는 교섭단체 거대 양당이 근절 의지를 보여야만 해결될 수 있는데 지금의 구조에서는 중단할 유인이 적다는 지적이다. 18대 국회 때부터 보좌관 생활을 해온 한 베테랑 보좌관의 설명이다.

“의원들에게 있어 ‘쪽지 예산’을 통해 지역구 예산을 더 챙겨왔다고 비판하는 기사는 전혀 아프지 않다. 욕은 잠시다. 그나마 욕도 의원들끼리 나눠 먹는다. 반면 예산은 다음 선거 당선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기사를 연말연초 의정보고서에 넣어 홍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구태가 치적이 되는 지금의 구조를 깨려면 반드시 비공개 관행을 깨야 한다. 그래야만 차후에라도 언론의 비판과 여론의 지적이라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최소한의 상벌 균형점이 맞춰졌을 때에야 거대 양당이 스스로 소소위 관행을 깰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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