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왜 OTT 드라마의 귀한 소재가 됐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6 15:0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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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송혜교 배우 협업한 《더 글로리》, 국내외에서 주목
학폭의 자극성에 사회적 맥락 더해 공감대

학교폭력이 최근 OTT 드라마의 뜨거운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웨이브 《약한 영웅》, 디즈니+ 《3인칭 복수》, 티빙 《돼지의 왕》은 물론이고 최근 넷플릭스가 내놓은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도 학교폭력이 소재다. 무엇이 이런 경향을 만들었을까.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가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시선을 끌었다. 《태양의 후예》로 중국 대륙을 뒤흔들어 놨던 이들의 주력 장르는 멜로드라마. 하지만 《더 글로리》는 그간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가 해왔던 작품 세계와는 사뭇 다른 다크한 복수극이다. 그것도 끔찍한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는. 

ⓒ웨이브·넷플릭스·디즈니+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 변신의 소재가 하필이면 학폭

고등학생들이지만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을 일삼는 이들은 그 어떤 범죄집단보다 살벌하다.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와 다리미로 온몸을 지져 살갗을 문드러지게 만든다. 박연진(임지연),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손명오(김건우) 등이 학창 시절 문동은(송혜교)에게 저지른 이 끔찍한 폭력에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이유라면 그렇게 해도 자신들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문동은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된 건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 부모의 힘 때문이다. 폭력을 저지르는 걸 알고 있어도 담임선생님은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경찰도 그들 편이다. 심지어 문동은의 엄마도 가해자 엄마에게 돈을 받고 합의서를 써주고는 여인숙 방을 빼서 딸을 버리고 도망간다. 

살짝 소개했지만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는 시종일관 어둡다. 문동은 역할의 송혜교는 그 많은 작품 속에서 밝고 당찬 모습을 보여왔지만, 《더 글로리》에서는 웃는 모습을 보는 일이 한 회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그는 웃음이 나는 순간에도 웃지 않는다. 이유는 웃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란다. 복수의 일념 하나로 그 어둠을 뚫고 버텨내며 살아가는 문동은의 처절함은 웃음기 싹 지워버리고 온몸에 화상 상처를 드러내는 송혜교의 연기 변신으로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 모두 《더 글로리》라는 작품을 통해 이례적인 변신을 보여주게 된 건 이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고정화된 이미지를 깨려는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소재가 하필이면 ‘학교폭력’이라는 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 소재는 최근 특히 많아졌다. 이미 웹소설이나 웹툰에서는 ‘학원 액션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소비되던 이 소재는 최근 드라마에도 점점 그 저변을 넓혀왔다. 최근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소개된 《약한 영웅》은 물론이고 디즈니+의 《3인칭 복수》, 그리고 티빙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돼지의 왕》이 모두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뤘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도 좀비물 속에 학교폭력이 다뤄졌고, 《소년심판》 역시 법정물에 촉법소년들의 학교폭력이 다뤄진 바 있다. 그러니 이러한 최근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학교폭력이 최근 드라마들의 주요 소재로 떠오른 건,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간 청소년들의 문제는 주로 청춘멜로, 교육 문제 정도로 순화돼 다뤄져 왔다. 그것은 OTT 등장 이전에 지상파 중심의 방송 체제가 갖고 있던 소재나 표현 수위의 한계 때문이었다. 학교폭력 같은 청소년 문제는 이미 이전부터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현실적인 사안이 됐지만, ‘보편적인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중심의 방송 체제는 이러한 소재를 다루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틀을 처음 깨고 나온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이었다. 청소년들이 등장하지만 ‘성매매’를 소재로 다룬 이 작품에는 OTT여서 가능한 높은 수위의 이야기가 담겼다.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들은 관람할 수 없는 콘텐츠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소년비행》 같은 청소년 마약 문제가 소재로 다뤄지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고, 《소년심판》이나 《3인칭 복수》 같은 작품에서 촉법소년 문제 역시 중요한 이슈로 다뤄졌다. 그리고 《돼지의 왕》처럼 학교폭력과 이러한 폭력을 만들어내는 양극화된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이 등장했다. 《약한 영웅》처럼 학교폭력을 온전한 학원 액션물로 그려낸 작품 또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선택적 시청’을 하는 OTT라는 플랫폼이 아니면 가능할 수 없는 소재와 수위의 표현들이 이들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속에 담겼다. 

학교폭력 소재의 드라마들이 OTT에서 계속 등장하고 그만한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자극성과 더불어 사회적 맥락 같은 메시지가 적절히 조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폭력이나 액션이라고 해도 ‘학교폭력’은 그 대상이 청소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극성이 강하다. 하지만 K드라마가 다루는 ‘학교폭력’은 그 말초적인 자극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담긴 사회적 맥락을 담아 넣음으로써 보다 공감대를 넓혔다. ‘수저계급’으로 나뉘는 차별적인 사회의 비뚤어진 모습들이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양상으로 등장하는 그 맥락을 담아낸 것. 그래서 《더 글로리》를 보면 끔찍한 학교폭력도 그렇지만, 이를 알면서도 그 누구도 피해자를 돕지 않는 어른들(사회 시스템)에 대한 공분이 생겨난다. 결국 사적인 복수극이 ‘사회적 복수’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웨이브·넷플릭스·디즈니+ 제공
웨이브 드라마 《약한 영웅》의 한 장면 ⓒ웨이브 제공
ⓒ웨이브·넷플릭스·디즈니+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웨이브·넷플릭스·디즈니+ 제공
디즈니+ 드라마 《3인칭 복수》의 한 장면 ⓒ디즈니+ 제공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TV부문 3위 랭크 

흥미로운 건 이러한 우리네 사회적 상황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긴 학교폭력을 다루는 K콘텐츠가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는 점이다. “정교하고 슬픈 복수 이야기. 연출, 대본과 연기 모두 다 훌륭했다”(imdb), “송혜교는 미묘한 연기를 통해 상처 입은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다. 1분 만에 문동은의 복수를 수긍하게 된다”(Forbes), “시리즈의 매혹적인 미장센과 동은의 서정적인 내레이션으로 보여진 김은숙 작가의 우아한 글 솜씨는 금상첨화다”(South china Morning Post), “가해자들이 불쌍하게 그려지는 몇몇 다른 복수극과 다르게 피해자의 복수를 꺼림칙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송혜교의 다채로운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놀라움을 자아낸다”(Leisurebyte) 등 외신 반응들과 더불어 이 작품의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도 급상승했다. 1월4일 넷플릭스 톱10 웹사이트에 따르면 《더 글로리》는 공개 3일 만에 2541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단숨에 톱10 TV부문(비영어) 3위에 올랐다. 

외신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더 글로리》 같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루는 작품들이 글로벌한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자극성과 사회적 맥락을 더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웰 메이드’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 가는 내용이지만 그걸 대본과 연기, 연출이 삼박자를 맞춰 미학적으로도 완성도 높게 구현해 냈기 때문에 그만한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학교폭력을 다루는 학원 액션물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는 리메이크 역시 기대되는 대목이다. 똑같은 장르를 그려도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K콘텐츠의 특징은 이제 학교폭력이라는 소재와 만나 글로벌 저변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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