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불로초’로 수명 연장의 꿈 이룰까?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1.29 12:0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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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들 모인 ’어벤져스’ 연구진, 노화 예방약부터 혈액·분변까지 연구 중
“500세 이상 사는 게 가능하냐 물으면 내 답은 ‘그렇다’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1년 기준 약 83세다. 10년 전보다 3세가량 늘어났다. 위생 개선과 질병 치료 등 인간의 개입으로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만일 노화까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다면 수명은 상상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노화를 늦추거나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찾는 시도가 지금 한창이다. 이미 사용 중인 약물에서 수명 연장 효과를 발견하는가 하면, 늙은 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방법도 찾았다. 젊은 피나 건강한 분변으로 회춘을 꾀하거나, 심지어 해파리·코끼리 같은 장수 생물에서 장수 비결을 찾는 연구도 있다. 이른바 현대판 불로초를 찾는 시도는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만하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수명 연장을 위한 세계적인 연구의 방향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웰 에이징(well-aging)이다. 노화를 막지는 못해도 약물 등으로 잘 늙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항노화(anti-aging)다. 늙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웰 에이징이 좀 더 주목받는 분위기다. 세 번째는 웰 에이징을 조기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화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관리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freepik

면역억제제·당뇨약의 새로운 발견

웰 에이징을 약물에서 찾는 시도가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라파마이신과 메트포르민이다.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는 면역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라파마이신과 같은 면역억제제를 먹는다. 이 약물에서 최근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발견됐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교수가 쓴 책 《노화의 종말》에 라파마이신의 발견 과정과 효능을 연구하는 과정이 묘사돼 있다. 본래 이 약은 1965년 이스터섬에서 발견한 미생물을 이용해 곰팡이나 무좀균을 제거하는 항진균제로 개발됐다. 이후 이 약에서 인간의 면역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견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면역억제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약이 노화를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싱클레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효모 2000마리는 6주 후 몇 마리만 생존하는데, 효모에 라파마이신을 주입한 경우에는 절반이나 살아남았다. 또 초파리에 라파마이신을 주입하자 수명이 5% 늘어났고, 늙은 생쥐는 수명이 9~14% 연장됐다. 사람으로 치면 5~10년에 해당하는 셈이다.

2016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도 20개월 된 늙은 쥐에게 90일간 라파마이신을 투여하자 수명이 최대 60% 연장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60세 노인이 140세까지 생존한 셈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연구팀은 이 약의 기전을 밝히기 위한 쥐 실험을 진행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끝부분(텔로미어)이 점점 짧아지고 어느 시점에는 세포분열이 중단되면서 노화가 일어난다. 라파마이신이 이 과정을 억제해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 연구 결과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 사람들은 당뇨병 치료를 위해 특정 식물 성분(구아니딘)을 사용해 왔다. 1920년 이 성분을 이용한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이 탄생했다. 최근 이 약의 새로운 효능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메트포르민을 투여한 생쥐의 수명이 6%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사람으로 치면 약 5년 수명이 연장되는 셈이다. 메트포르민을 먹은 생쥐는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신체능력도 향상됐다. 그 기전은 아직 모르지만 이 약이 산화로 인한 손상을 줄여 세포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68~81세의 메트포르민 복용자 4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메트포르민이 치매, 심혈관질환, 암, 노쇠, 우울증 확률을 상당 수준 낮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노쇠한 상태에서 9년 동안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집단을 조사해 보니 치매는 4%, 우울증은 16%, 심혈관질환은 19%, 노쇠는 24%, 암은 4% 낮아졌다는 것이다. 영국 카디프대학 연구팀은 2014년 1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메트포르민을 복용하는 당뇨병 환자의 생존 기간을 살펴봤다. 다른 약을 먹는 사람보다 생존 기간이 38% 증가했다.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생존 기간이 15% 증가했다. 

현재 이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수명 연장 효과를 덤으로 얻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14개 의료센터가 2016년 65~79세 3000명을 대상으로 ‘TAME’라는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TAME는 메트포르민으로 노화를 잡는다(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는 뜻이다. 이런 대형 연구에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면 메트포르민은 항노화 약으로 재탄생할지도 모른다.

 

늙은 세포를 회춘시키는 야마나카 인자

더 적극적인 시도, 즉 항노화 방법을 찾는 연구도 있다.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인데,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방법은 동물실험을 통해 성공한 바 있다.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iPS세포연구소장은 쥐의 피부 세포에 네 가지 유전자 조절 인자를 주입해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기술(역분화)을 개발했다. 이 공로로 그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는 네 가지 인자에 ‘야마나카 인자’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인자를 주입해 만든 줄기세포를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라고 명명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세계적인 생명과학연구소인 소크연구소는 2016년 조로증(빨리 늙는 병)에 걸린 쥐에게 야마나카 인자를 주입해 회춘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명과학연구소는 53세의 인체 피부 세포에 야마나카 인자를 투여해 23세 피부 세포로 되돌렸다. 30년을 회춘한 피부 세포가 정상적인 피부 기능을 하는지를 관찰한 결과, 콜라겐 생성 등 본래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야마나카 신야 소장, 조로증에 걸린 쥐의 수명을 연장한 소크연구소의 후안 카를로스 박사, 늙은 쥐의 인지능력을 향상한 피터 월터 UCSF(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 피부 세포의 역분화에 성공한 볼프 레익 영국 바브라함연구소장 등 항노화 관련 석학이 알토스 랩이라는 연구소에 모였다. 알토스 랩은 2020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릭 클라우스너 전 미국 국립암연구소장 등이 창업한 연구소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 목표는 세포의 나이를 거꾸로 돌려 인체를 회춘시키는 것이다. 이 연구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등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조금 더 간편한 항노화 방법을 찾는 시도도 있다. 한 사례로 젊은 사람의 혈액으로 회춘을 꾀하는 연구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연구진은 200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젊은 피를 수혈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생후 3개월의 젊은 쥐를 매일 쳇바퀴에서 10km씩 달리도록 했다. 28일 후 이 쥐의 혈장을 채취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쥐에게 3일 간격으로 28일 동안 수혈하자 인지능력이 향상됐다. 운동을 많이 한 쥐의 혈액이 게으른 쥐의 뇌에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결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대 연구진도 2014년 젊은 쥐의 혈액을 반복적으로 공급받은 늙은 쥐의 기억력이 실제로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에 대한 연구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2017년 65세 이상 치매환자 18명에게 젊은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을 투여한 결과, 치매 증상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미국 벤처기업 암브로시아는 2018년 16~25세 청년의 혈액을 공급받아 35세 이상에게 수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감염과 거부반응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고를 받고 수혈 사업을 중단했다. 

혈액뿐만 아니라 분변에서 건강 비결을 찾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팀은 젊은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이 노화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많은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이 인간의 기분을 비롯해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노화까지 막을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었다. 연구팀은 3개월 된 젊은 쥐의 분변을 채취해 20개월 된 늙은 쥐에게 일주일에 두 차례씩 8주 동안 이식했다. 또 같은 20개월 된 늙은 쥐에게 늙은 쥐의 분변을 공급해 둘을 비교했다. 젊은 쥐의 분변을 공급받은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 군집은 점차 젊은 쥐의 미생물 군집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뇌에서도 변화가 관찰됐다. 학습·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인 해마가 젊은 쥐의 해마와 물리적·화학적으로 비슷해진 것이다. 젊은 쥐의 분변을 공급받은 늙은 쥐는 미로에서 더 빨리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미로의 경로를 더 빨리 기억해 냈다. 늙은 쥐의 분변을 이식받은 늙은 쥐에게는 이런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2015년 ‘의학저널’(바이오 메디컬센트럴미생물학)에 장수 마을과 도시에 사는 고령자의 장내 미생물을 비교한 논문이 게재됐다. 장수인의 장내 미생물 중 유익균은 도시인보다 많았다. 장내 유해균이 내뿜는 독소의 양은 장수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비슷할 정도로 낮았다. 양철수 한양대 분자생명과학과 교수는 “장수인의 장에 유익균이 보통사람보다 2~5배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장수하는 사람은 발효식품을 오래 먹어왔고 그것이 그들의 장내 미생물 군집을 건강하게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서울 한강가족공원 이촌지구의 우드볼장에서 노인들이 우드볼경기를 즐기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오래 사는 생물체 통해 장수 비결 연구 

심지어 오래 사는 생물체에서 장수의 열쇠를 찾는 연구도 활발하다. 세계 최고 인터넷 기업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바이오 기업 칼리코를 세웠다. 칼리코는 ‘캘리포니아 생명 기업(California Life Company)’의 약자다. 기업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기업의 목표는 노화의 비밀을 밝혀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칼리코 설립 아이디어를 낸 빌 매리스 전 구글벤처스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500세 이상 사는 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내 답은 ‘그렇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 세계 1위 제약사 애비브는 이 연구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칼리코가 첫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벌거숭이두더지쥐다.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 사는 이 동물은 몸길이 8cm에, 이름 그대로 털이 거의 없다. 땅속에서 마치 개미처럼 우두머리 암컷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한다. 하지만 수명은 32년으로, 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10배 이상 길다. 사람으로 치면 800세 이상 사는 셈이다. 칼리코는 2018년 국제학술지(이라이프)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30세 이후 8년마다 사망률이 2배 상승하는 반면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사망률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세포의 변형을 막는 물질을 만들어내 암세포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칼리코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혈액이나 분비물을 분석해 수명과 관련된 특정 물질을 찾고 있다. 동시에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외에 해파리·바닷가재·코끼리도 연구 대상이다. 보통 해파리는 번식을 마친 뒤 죽는다. 그런데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5mm가량의 작은보호탑해파리는 번식 뒤에 미성숙 상태인 폴립으로 돌아간 후 다시 성장한다. 이론상으로는 영생하는 셈이다. 이런 사실은 연구실에서 확인됐고, 자연상태에서는 천적에게 잡아먹히거나 수온 등 환경의 변화로 죽는다. 바닷가재도 대표적인 무병장수 생물이다. 바닷가재 중에서도 미국 주변에 서식하는 아메리칸 랍스터(또는 메인 랍스터)는 최대 100년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랍스터를 연구 중인 미국 글로스터 해양유전체학연구소는 2019년 미국 바닷가재 유전체 중 72%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또 연구팀은 바닷가재의 특유한 이온 통로(세포막에 존재하면서 세포의 안과 밖으로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 단백질)가 질병 저항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했다.

코끼리는 약 70년 동안 살면서도 암 발병률은 5%로 사람의 8분의 1 수준이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던 미국 유타대 연구팀은 2015년 코끼리가 인간보다 20배 많은 항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코끼리에서 항암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광준 교수는 “여러 웰 에이징 또는 항노화 연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노화를 늦추는 방법은 웰 에이징을 조기에 시작하는 일이다. 예컨대 영양 균형을 맞추고 식사량을 줄이는 식사 조절은 수명을 연장한다. 이런 습관을 젊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인 웰 에이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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