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에이전트와 손잡은 이정후, ‘사상 최고 계약’ 만들까
  •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5 11: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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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구단들에 ‘악마의 에이전트’로 불리는 보라스, 역대 최고액 ‘류현진 3600만 달러’ 기록 경신할 수도

톰 크루즈의 출세작인 1996년작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는 미식축구 선수인 하나뿐인 고객과 통화하면서 그가 시킨 말을 큰 소리로 따라 한다. 원래는 노상강도가 하는 말이었던 이 대사는 영화를 통해 엄청난 유행어가 된다. “Show me the money!(내게 돈을 보여줘!)”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게 영화의 주제지만, 오늘날 고객(스포츠 선수)에게 최대의 부를 안기는 본연의 임무를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평정한 스캇 보라스다. 

2022년 11월8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정후가 홈런을 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라스, 특유의 카리스마로 메이저리그에서 절대적 영향력 

보라스는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다. 2002년 텍사스의 박찬호에게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안긴 것도, 2014년 텍사스의 추신수에게 7년 1억3000만 달러 계약을 안긴 것도 보라스이기 때문이다. 박찬호와 추신수는 당시 FA를 앞두고 에이전트를 보라스로 교체했다. 류현진이 2013년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포스팅을 통해 미국에 진출했을 때도 에이전트는 보라스였다. 최고의 호흡을 자랑한 둘은 LA 다저스와의 협상에서 마감시한 30초 전까지 버팀으로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6년 3600만 달러 계약을 따냈다. FA가 되는 걸 1년 늦춘 류현진이 2019년 사이영 2위 시즌을 만든 후 토론토와 맺은 4년 8000만 달러 계약도 보라스의 완벽한 판단 덕분이었다. 

이렇게 한국 선수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긴 보라스였지만, 강정호·박병호·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국내 에이전시와 연결된 다른 에이전트들을 선임했다. 반면 류현진 이후 최대어로 꼽히는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이번에 보라스와 손을 잡았고, 보라스는 11년 만에 다시 한국 최고 선수의 포스팅을 진행하게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보라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년 내내 꾸준히 활약하는 500명 중 무려 175명이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두고 있으며, 고액 연봉 선수일수록 그 비중은 높아진다.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을 포함하면 보라스가 거느린 야구 선수의 숫자는 1500명을 넘어서며, 드래프트를 앞둔 아마추어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날수록 보라스의 품으로 들어오다 보니 보유 선수의 질과 양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트들은 계약 총액의 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그런데 보라스는 매년 겨울 10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성사시키고 5000만 달러를 가져간다. 기존 계약까지 포함하면 매년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보라스는 개인 자산만 5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보라스는 메이저리그 선수를 꿈꾸며 1974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5년 동안 세 번의 무릎 수술을 받고 은퇴했다. 보라스가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었던 팀인 시카고 컵스는 보라스의 로스쿨 등록금을 지원했다.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보라스는 어느날 마이너리그 시절 동료였던 빌 카우딜로부터 협상을 도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보라스는 카우딜에게 5년 750만 달러 계약을 안기면서 스포츠 에이전트 세계로 뛰어들었다. 

보라스는 무섭게 성장했다. 기존에 자리를 잡은 대형 에이전트들이 체면을 차리며 구단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안, 지금 당장 최고의 계약을 최우선 목표로 한 보라스는 구단과의 대립을 마다하지 않았다. 드래프트를 하는 선수가 만족스러운 제안을 받지 못하면 해당 선수를 독립리그로 보내 이듬해 드래프트에 나오도록 한 건 보라스의 카리스마가 등장하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보라스는 ‘악마의 에이전트’가 됐고, 보라스의 고객을 기피하는 구단도 생겨났다. 하지만 보라스가 구단과 극한 대립 속에 최고의 계약을 따낼수록 선수들로부터 보라스의 인기는 높아져 갔고, 대형 계약을 앞둔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보라스로 바꾸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연합뉴스
이정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보라스 코퍼레이션 사무실에서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스콧 보라스, 이정후, 모친 정연희씨, 부친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 ⓒ연합뉴스

이정후가 시장에 나올 1년 후 상황도 좋아

보라스의 필살기는 좋은 계약이 들어올 때까지 버티는 장기전이다. 보라스가 마음먹고 한 장기전은 실패한 역사가 없다. 워낙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라스는 FA 미아가 될 뻔한 카를로스 코레아에게도 결국 2억 달러 계약을 안겼다. 자신과 경쟁했던 에이전트들이 구단 운영에 참여하는 등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사이 한 우물만 판 보라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지게 됐고, 구단이 보라스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리그에 미치는 영향력은 롭 맨프래드 커미셔너와 토니 클락 선수노조위원장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라스에 대한 비판은 선수를 돈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선수에게 가장 잘 맞는 팀을 골라주기보다는 가장 좋은 계약을 통해 수수료를 가장 많이 챙길 수 있는 팀을 골라준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선수가 한다. 보라스가 가져온 양키스의 최고 연봉 제안을 거절하고 당시 더 강팀이었던 애틀랜타와 계약한 그레그 매덕스나 FA 시장에 나가자는 조언을 거절하고 에인절스에 잔류한 제러드 위버 등은 보라스 고객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돈을 포기한 사례들이다. 

보라스를 선택한 이정후의 결정이 의미를 가지는 건 경쟁력이 뛰어난 선수일수록 보라스의 능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KBO리그 출신 한국인 타자 중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1년 후 시장 상황도 대단히 좋다. 내년에 이정후와 함께 FA 시장에 나오는 메이저리그 외야수 중 정상급 선수는 전무하며, 20대 후반인 코디 벨린저와 이안 햅(이상 시카고 컵스)을 제외하면 20대 선수도 없다. 반면 24세에 올 시즌을 마치는 이정후는 나이에서도 독보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이정후를 데려가는 팀은 어디일까. KBO리그 최고의 스타 입지를 다진 이정후는 스타 마케팅을 내세우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크게 매력적일 수 있다. 외야 자원이 부족한 샌디에이고가 실제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김하성의 귀띔이다. 반면 히어로즈 팬들은 고척돔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을 주목하고 있다. 

경쟁팀이 늘어날수록 몸값은 높아지기 마련. 이정후가 2017년 프로 입단 후 무서울 정도의 성장세를 올해도 이어간다면 류현진의 3600만 달러 계약이나 김하성의 2800만 달러 계약, 박병호의 1200만 달러와 강정호의 1100만 달러 계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계약이 탄생할 수도 있다.

남은 건 이정후가 올 1년 동안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느냐다. 지난해 MVP가 되고도 미국으로 건너가 타격 폼을 수정한 이정후가 보라스라는 가장 날카로운 칼을 어떻게 휘두를지는 오직 이정후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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