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이슈, 윤석열 정부를 ‘진짜 시험대’에 올리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6 10: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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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기조’ 깨고 ‘중산층’까지 재정으로 지원 급선회
교통비·전기료 줄인상 대기…文 때린 부메랑 맞은 尹

난방비 이슈는 윤석열 정부가 맞이한 중요한 분기점이다. 얼핏 보면 지나가는 계절적 이슈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사회 전 분야에 ‘구조 개혁’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 맞닥뜨린 사실상 첫 번째 ‘딜레마적 민생 과제’이기 때문이다. 난방비 이슈는 생활밀착형이고, 전국적이며, 전 세대에 걸쳐 있다. 그래서 민심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빠르고 폭넓다. 인상된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든 민심은 들끓었고,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그런데 앞으로 대중교통 요금과 전기료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이 대기하고 있다. 난방비 이슈는 윤 대통령에게도, 국민에게도 그래서 ‘리트머스시험지’다. 

난방비 이슈는 윤석열 정부가 처한 딜레마적 상황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주로 두 개의 전선에서 정치적 득점을 쌓아왔다. 바로 ‘법치’와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전선이다. 법치는 사법 리스크로 표현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대대적인 사정 정국으로,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원점으로 회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시켜 왔다. 

여기에선 크게 세 가지 특징이 포착된다. 바로 ①여권 지지층에서 대체로 지지가 높고(‘反문재인’이라는 깃발) ②사정기관을 앞세워 상대를 때리는 통치 방식(적을 상정한 통치 방식) ③민생·경제 이슈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이념적 색채가 강한 정치 이슈(법치)였다는 점 등이다. 

ⓒ연합뉴스
1월2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계단이 얼어붙어 있다. 정부는 ‘난방비 폭탄’으로 인한 취약계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에너지 바우처 지원과 가스요금 할인을 확대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전임 정부 탓만으로 성난 민심 잡기 어려워

그런데 난방비 이슈는 이런 세 가지 특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권 지지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이 난방비 요금 인상에 부정적이다. 앞으로 오를 예정인 공공요금 인상에도 부정적 여론이 높다. 강고한 반대 여론이 전국적으로 펼쳐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윤 대통령과 용산(대통령실)의 ‘주 전공’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 참모 상당수는 사정기관 출신들로 경제·민생 이슈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용산 입장에서 더욱 어려운 부분은 때릴 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마냥 전임 정부 탓만 하기엔 상황이 시급하다. 그리고 ‘현재 권력’은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다. 남 탓만으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

이런 차이점을 갖고 있는 난방비 이슈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의 약한 고리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민생 이슈를 관리하는 데는 지금까지 득점을 쌓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메시지 발신부터 정부·여당의 대책 제시, 여론 대응, 프레임 장악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실점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물론 난방비 이슈도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포퓰리즘’에 빠졌던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과정에서 봉착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 등에 적자가 쌓여가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공공요금 인상 요인이 있었음에도 전임 정부는 물가 안정과 서민 보호 등의 이유로 요금 인상을 계속 미뤄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최근, 필요시 난방비 인상 등과 관련해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을 조정하지 않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는 이런 인식이 자리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난방비 인상은 전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명분이 있는 개혁 과제로 여겨진다.

그런데 ‘포퓰리즘과의 전쟁’에서 원칙을 절대 고수할 것처럼 보였던 윤 대통령은 난방비 정국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는 ‘법치’를 강조하며 대화와 협상 대신 강경·엄정 대응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런 윤 대통령이 1월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선 서민은 물론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난방비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재정 건전성과 감세 기조를 대원칙으로 천명한 윤석열 정부의 그간 입장을 고려하면, 한정된 예산으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취약계층을 좀 더 두텁게 핀셋 지원하자는 방식이 더 자연스럽다. 애써 난방요금을 올려놓고 상대적으로 소득 대비 연료비 지출 부담이 적은 중산층까지 지원하는 것은 결국 가스공사의 적자를 나랏돈으로 메워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尹, 중산층까지 말했지만 실제 대책에선 빠져

실제 바로 다음 날 한덕수 총리는 미묘하게 결이 다른 메시지를 내놨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대책으로 마련한 1800억원 규모의 가스비 지원책에 대해 “합리적인 에너지 취약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 있다고 판단한다면 포퓰리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포퓰리즘을 제대로 억제하거나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앞날도 암울하고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약층 지원’은 능력이 닿는 한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인기영합적 정책을 내놓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읽히는 발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 대통령이 말한 중산층까지 난방비를 지원하는 일은 포퓰리즘이 된다.

그래서일까. 난방비 지원을 놓고 당·정·대(대통령실)에서는 결이 다른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심지어 대통령실 내부에서조차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월31일 “윤 대통령이 난방비 급등과 관련해 중산층 지원책도 강구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는 취약계층과 중산층 지원 대책을 좀 더 꼼꼼히 마련해 달라”고 했다. 집권여당 역시 난방비 지원 대상에 중산층을 포함시킨 것이다. 

반면 대통령실은 ‘서민’에 방점을 찍은 입장을 내놨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일단 서민 계층에 대한 지원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하는 게 우선순위”라며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이 아닌 분들과 차상위 계층 등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을 빠른 시일 내에 관계 부처에서 논의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실제 대책은 우선 ‘서민’에 방점이 찍혀 제시됐다. 정부는 2월1일 높은 난방비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올겨울 난방비로 59만2000원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잠재적 빈곤층이라고 할 수 있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기는 했지만, 중산층까지 아우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범위다. 즉 일단 윤 대통령이 말한 ‘중산층까지 지원’은 이번 대책에는 빠진 셈이다.

난방비 정국을 유심히 지켜본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보고 내년 4월 총선이 걱정된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내년 총선은 겨울 선거운동에 달려 있다. 1년 후 더 오른 난방비 이슈가 여권을 덮칠 텐데, 그때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겠나? 반대로 그때 가서 지원의 폭을 넓힌다면 지금 쏟아낸 ‘포퓰리즘’ 발언들은 부메랑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밝힌 ‘중산층까지 지원’은 그래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난방비 이슈도 제때에 제대로 못 풀어내는데, 3대 개혁을 완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겠나? 지금이 고비다. 지금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난방비 이슈는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풀기 쉽지 않은 난제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가 윤석열 정부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라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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