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후계구도 대해부 ⑦오리온그룹] ‘재벌집 외손자’ 초고속 승진했지만…승계까지는 ‘첩첩산중’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07:35
  • 호수 17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적 상승 흐름 따라 담서원 상무에 무게중심 쏠려   
능력 입증·지분 증여·오너家 리스크 등 과제 산적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 자리에 오르려면 보통 20년 넘게 걸린다. 군필 남자가 대학 졸업 직후인 27세에 대기업에 입사할 경우 40대 후반에야 부장에서 이사로의 승진을 노려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20여 년을 버텨도 임원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입사원 1000명 중 8명 정도만 임원 승진의 바늘구멍을 뚫는다. MZ세대 임원 증가도 아직 추세적인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중 1980년 이후 출생자 비율은 1.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더구나 그중 상당수는 오너가(家) 출신이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오리온 본사 전경· 담서원 오리온 경영관리 담당 상무 ⓒ시사저널 임준선·오리온 제공

평사원보다 13배 빠른 임원 승진에 ‘시끌’ 

식품·헬스케어 기업 오리온그룹의 담서원 경영관리 담당 상무(34)는 최근 발탁된 대표적인 오너가 출신의 젊은 임원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말 2023년 정기인사에서 담철곤 회장(68)의 장남인 담서원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을 상무로 승진시켰다. 2021년 7월 입사 이후 1년6개월 만의 임원 승진이었다. 

담 상무가 보통사람들보다 13배 이상 빨리 임원에 오르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선 “담 사원은 이 자리에 앉으면 되고 김 대리가 앞으로 담 대리 많이 도와줄 거예요. 먼저 팀원들과 인사 나누세요, 담 과장님. 담 차장님, 이따 점심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은 없나 한번 체크해 보겠습니다, 담 부장님. 담 상무님, 보니까 오후에 사장님 면담 일정이 있습니다”라는 식의 유머가 유행하기도 했다. 단시간에 초고속으로 승진한 담 상무의 상황을 재치 넘치게 풍자한 것이다.

한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오너 일가가 최대주주로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건 인정하지만, 자녀의 고속 승진은 못 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경영권 승계 시 합법적으로 지분을 물려주고 온당한 세금을 내는 등 절차를 거치되 입사와 진급만큼은 일반 직원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공정하다”고 지적했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2006년 대리로 입사해 과장, 차장, 부장 등 직급을 차근차근 지나 9년 만인 2015년 임원(상무)으로 승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 같은 재벌 총수가 상대적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었다. 

담 상무의 승진에 관해 오리온 관계자는 “성과·능력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 상무가 몸담았던 경영지원팀은 국내외 법인의 사업 계획과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그룹 핵심 부서 중 하나다. 지난해 오리온이 원가 부담 등 불리한 환경을 딛고 실적 성장세를 지속한 결과에 경영지원팀의 공로가 컸다고 오리온 측은 홍보했다. 

오리온의 지난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411억원, 1217억원이다. 2분기 대비 각각 18%, 35%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4분기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도 매출 7511억원, 영업이익 1315억원으로 전분기보다 높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시장의 매출 상승이 주효했다. 올해 실적 전망 역시 밝다. 오리온의 올해 매출,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각각 3조155억원, 509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8%, 11%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CJ그룹, BGF그룹 등 주요 유통기업이 실적 성장기를 맞아 승계 작업에 가속 페달을 밟는 움직임에 오리온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호황과 신사업 추진기 맞아 승계 가속 페달 

오리온이 경영관리 담당 임원 자리를 신설해 담 상무에게 맡긴 것도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 담 상무는 경영지원팀 산하 경영관리팀을 이끌며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골몰하는 중이다. 오리온은 따로 신규사업팀을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담  상무에게 인수합병(M&A)과 신사업 발굴을 총괄하게 해 후계자로서 성과를 내도록 한 셈이다. 

특히 오리온은 바이오 사업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신설 자회사인 오리온바이오로직스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의약품과 소비재, 식품 원료 등을 개발해 해외시장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오리온바이오로직스가 주력 시장으로 삼은 중국 실적을 내는 데 담 상무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계는 담 상무의 이번 승진으로 오리온의 후계구도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89년생인 담 상무는 담철곤 회장 슬하 1남 1녀 중 둘째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하고 베이징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오리온 입사 직전까지는 카카오의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했다. 담 상무의 누나인 담경선 오리온재단 이사(38)도 미국 뉴욕대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 컨설팅 회사를 거쳐 2010년 오리온에 입사했다. 과자 브랜드 ‘마켓오’ 사업부와 전략기획팀 등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오리온 내 직책 없이 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담 회장이 2018년 자신의 오리온 주식 61만9780주를 자녀에게 증여할 때도 아들에게 훨씬 더 많은 몫이 돌아갔다. 담 상무가 43만3846주를, 담 이사가 18만5934주를 각각 받았다. 베이징대에서 유학 중이던 담 상무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오리온 주식을 대량으로 물려받자 ‘아들로의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담 상무는 1대 주주인 오리온홀딩스, 2대 주주인 어머니 이화경 부회장(67)에 이어 3대 주주로 단숨에 등극했다. 그러나 지분율로 따지면 1.23%로 미미한 수준이다. 담 상무가 2017년 확보한 그룹 지주사 오리온홀딩스 지분율도 1.22%에 불과하다. 

현재 담 회장의 오리온과 오리온홀딩스 지분은 각각 0.5%, 28.73%이고, 이 부회장의 지분은 각각 4.08%, 32.63%다. 담 회장 부부가 3세 승계 완성을 위해 담 상무에게 지분을 대량 증여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낼 여력부터 갖춰야 한다. 

그동안 오리온 오너 일가의 행태를 두고 불거진 각종 의혹과 논란도 승계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담 상무는 2013년 홍콩에 스텔라웨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랑방애보포장유한공사(랑방애보)를 215억원에 인수했다. 인수자금은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마련했다. 애초 담 회장 소유이던 랑방애보는 오리온이 중국에 설립한 제과 계열사에 포장재 등을 납품하며 매출을 올렸다. 이후 랑방애보는 사내유보금을 스텔라웨이에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이를 통해 담 상무는 랑방애보 매입을 위한 대출금 전액을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담 상무는 랑방애보를 다시 오리온 중국법인 오리온푸드에 매각하면서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을 받았다. 

ⓒ시사저널 박정훈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2018년 9월10일 개인 별장 건축에 회삿돈을 쓴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능력 입증보다 가족 리스크가 더 난제” 

담철곤 회장의 경우 2011년 고가 미술품을 법인 자금으로 구입해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하는 방법 등으로 총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구속 기소됐다가 이듬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앞서 오리온을 정조준한 검찰은 담 회장이 부인 이 부회장과 함께 최측근 경영진을 통해 총 160억원의 비자금 조성을 계획·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담 회장이 2002~06년 계열사에서 법인 자금으로 리스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쉐 카이엔, 벤츠 CL500 등 고급 외제차를 개인 용도로 무상 사용해 해당 계열사에 20억여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지적했다. 당시 10대였던 담 상무가 통학 시 해당 차량을 이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담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6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제외됐는데,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연루된 전직 오리온 임원들의 폭로가 이어졌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2018년 담 회장은 개인 별장 건축에 회삿돈 200억원을 끌어다 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2014년 경기 양평군에 있는 그룹 연수원과 본사 부회장실에 걸어둔 미술품 2점(시가 4억2000여만원 상당)을 자택에 가져다 놓고, 진품이 있던 자리는 모조품으로 대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법원은 이 부회장의 업무상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오리온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일단 담 상무가 다른 기업 후계자들에 비해 업무 경력이 짧기 때문에 자신만의 성과나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의구심 어린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가족 리스크에 있다. 담 상무가 뛰어난 아웃풋을 낸다고 해도 지분 증여 등 승계 과정에서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계속 소환될 터라 그야말로 첩첩산중을 앞뒀다”고 말했다.   

 

■ 불경기 속에 임원 줄어도 후계자 승진 시계는 빨라져 

최근 발표된 2023년도 대기업 정기 임원 인사를 보면 2022년도보다 그 규모가 크게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불황에 시달리는 대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통한 위기 대응 차원에서 임원 조직부터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유니코써치의 조사 결과, 100대 기업 임원 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6932명이었고 2020년 6871명, 2021년 6664명으로 계속 감소했다. 지난해엔 악재를 딛고 실적 회복에 성공한 기업이 많아지면서 임원 수가 7175명으로 반등했다. 호실적에 따른 보상 차원이었던 ‘임원 승진 잔치’는 반짝 행사에 그쳤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올 연말쯤 100대 기업 임원 수가 6900명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성·3040세대와 오너가 출신 임원은 예외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유니코써치는 관측했다. 특히 불확실성에 대비해 경영권 승계 작업을 가속화하는 재벌기업이 늘어나면서 오너 3·4세들의 승진 시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들 이선호씨(33)는 2021년 임원으로 승진해 CJ제일제당 식품전략기획1 담당 경영리더로 일하다 지난해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내부 승진했다.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37·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40·사장→부회장)과 3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리조트 전무(34·상무→전무),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그룹 회장 아들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39·부사장→사장), 구동휘 E1 부사장(41·전무→부사장) 등 1980년대생 오너가 임원들이 대거 직급을 한 단계 올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