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급증하는 한국 유방암, 무엇이 문제이길래…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5 14: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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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초경과 늦은 폐경, 미혼, 저출산, 모유 수유 않는 경향 등으로 여성호르몬 노출 증가

6082명과 2만4933명. 2000년과 2019년 국내 유방암 환자 수다. 보건복지부 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약 20년 사이에 국내 유방암 환자 수는 무려 4배 이상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유병률로 따져도 같은 기간 12.8명에서 34.3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가파른 상승세다. 특히 50대 미만에서 발병하는 ‘젊은 유방암’ 증세가 두드러진다. 전체 유방암 중 젊은 유방암은 약 10%로 서양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이렇게 국내 유방암이 급증한 원인은 무엇일까. 유방암 발생은 크게 유전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유전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5% 정도다. 게다가 한국 여성의 유전자가 지난 20년 동안 크게 변해 유전성 유방암이 급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후천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freepik

여성 호르몬 노출이 주요인

후천적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성호르몬이다. 여성호르몬은 여성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국내 유방암 80~90%와 관련이 있다.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수록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커진다. 여성호르몬은 평소보다 생리 때 더 많이 분비되는데, 여성의 초경이 빨라지고 폐경이 늦어지면서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예전보다 길어졌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여성이 많아졌고, 출산하더라도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점도 여성호르몬 노출 시간을 길게 만들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임신을 일찍 할수록,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유방암 위험은 감소한다.

정소연 국립암센터 유방암외과 전문의는 “평균수명 증가, 출산 여부, 첫 출산 나이, 폐경 나이, 모유 수유 여부,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한 호르몬제 복용, 체중 증가 등이 유방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인구가 늘면서 미혼 여성이 늘어났고 출산은 줄어들었다. 첫 출산 나이도 높아졌는데, 예전에는 노산으로 여겼던 35세 이후 첫 출산도 요즘은 흔하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체중이 증가했는데 이 또한 유방암 발병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서구 식단은 대체로 고지방식이다. 고지방식 섭취량은 유방암 위험도와 비례한다. 고지방식으로 체내 지방세포가 증가하는데, 지방세포도 여성호르몬을 분비한다. 일반적으로 뚱뚱할수록 유방암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폐경돼 여성호르몬 분비량이 줄더라도 체질량지수(MBI, kg/㎡)가 5씩 높아질 때마다 유방암 위험도는 약 15%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방과 겨드랑이의 덩어리 살펴봐야

대개 유방에 통증이 생기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유방 통증은 대부분 암과 무관하다. 스트레스·비만·음식에 의한 유방 통증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유방암으로 통증이 생길 수 있지만 그 정도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다. 통증보다는 덩어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유방암은 스스로가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암이다. 위암, 폐암, 대장암 등과 달리 덩어리를 손으로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과 겨드랑이 주변에 덩어리가 만져질 때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른바 ‘333 자가 진단법’을 기억하면 좋다. 매달 생리가 끝난 3일 후 손가락 3개로 양쪽 가슴 부위를 3개의 원을 그리듯이 덩어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유두에서 맑은 물이나 우윳빛이 아니라 핏빛이나 진물 같은 분비물이 나올 때도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선의 유방암 조기 발견법은 주기적인 검사다. 예컨대 40세 이후부터는 2년마다 국가건강검진을 받고 그 중간에 주기적으로 자가 진단을 하면 조기에 유방암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소연 전문의는 “폐경 전 여성은 매달 생리 3일 후 유방이 부드러울 때 유방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덩어리가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폐경 여성은 매달 한 번씩 자가 검진을 하고 2년마다 국가건강검진에서 유방암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간혹 검진 결과지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결과를 꼭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40세 이하 여성이라도 유방암·난소암 가족력이 있다면 고위험군에 해당하므로 정기적으로 유방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방암 검사법으로는 크게 유방촬영과 초음파검사가 있다. 유방촬영은 유방암 진단의 기본이다. 유방촬영은 유방을 납작하게 누른 상태에서 X선을 쪼여 유방 내부의 영상을 얻는 수단이다. 그러나 치밀 유방(고밀도 유방)일수록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암을 놓칠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치밀 유방 비율은 70~80%로 미국 여성(40% 내외)보다 매우 높다. 치밀 유방인 경우에는 초음파검사를 추가로 받으면 된다. 치밀 유방이면서 40세 이상인 여성은 유방촬영과 초음파검사를 모두 받는 것이 조기에 암을 발견할 확률을 높인다. 필요할 경우 MRI(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단층촬영)를 이용한다. 이런 진단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조직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유방암 여부를 판단한다. 

유방암 치료의 기본은 수술이다. 과거에는 암을 제거하기 위해 유방 전체를 잘라냈다. 암의 크기가 작아도 재발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치료 후 환자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유방암 수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암의 크기, 위치, 진행 정도에 따라 유방의 일부분만 제거한다. 예를 들어 암의 크기가 유방에 비해 작고 암의 위치가 유두와 1cm 이상 떨어져 있다면 유방 안쪽에 있는 암 조직만 제거하고 유두와 유방 피부 등을 그대로 보존한다. 또 겨드랑이를 통해 유방의 암을 제거할 경우에는 유방에 흉터가 남지 않는다. 

ⓒ국립암센터 제공
유방암 자가 진단은 매달 생리 3일 후 손가락 3개로 가슴 부위를 3개의 원을 그리듯이 만져보는 방법이다. ⓒ국립암센터 제공

국내 5년 생존율 93%로 세계 최고 수준

수술 전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필요하다. 정소연 전문의는 “항암치료에는 한 가지 약제가 아니라 여러 약제를 병용한다. 요즘은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찾아내 그것을 목표로 항암제를 투여하는 표적 치료나 면역치료를 많이 시행한다. 유방암 치료 순서도 과거에는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했지만, 지금은 환자의 상태나 암 종류에 따라 항암치료를 수술보다 먼저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은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으나 지금은 70·80대 환자도 항암치료를 받는다. 항암치료를 견딜 만큼 기초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 방사선치료는 병기에 따라 사용 범위가 달라 유방, 목 부위 림프절 또는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유방암 치료가 다른 암 치료와 다른 점은 ‘재건 수술(암 성형수술)’이 포함된다는 부분이다. 암과 함께 유방을 제거하면 여성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 미용뿐만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할 목적에서 유방 재건 수술은 유방암 수술의 일부가 됐다. 유두와 피부를 남겨놓고 안에 있는 암과 유방 조직을 제거한 뒤 그 빈자리를 메우는 수술이다. 등이나 배 주변 근육과 지방을 사용하거나 인공 보형물을 삽입해 유방 형태를 잡아준다. 유방 재건 수술은 유방암 진행 정도,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해 시행한다. 

유방암 조기 발견과 적극적인 치료 등으로 국내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소연 전문의는 “유방 초음파검사를 외국에서는 기사가 하고 의사가 영상을 보고 판단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검사하고 판단하므로 더 정확하고 잘 발견한다. 국내 영상의학 수준은 세계적이다. 치료제나 치료법도 발전했다. 유방암 치료비도 국가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래도 유방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유방암 예방을 위해 유전적 요인을 제거할 수 없고,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을 줄이기도 어렵다. 그러나 후천적 요인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한국유방암학회 등 의학계가 최우선으로 제시한 유방암 예방법은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매일 30분 이상 일주일에 3일 이상 운동할 경우 유방암 발병 위험은 50% 감소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로 확인됐다. 이쯤 되면 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유방암 예방법이다. 

그다음으로는 고지방식을 되도록 줄이는 식습관이다. 고지방식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고 육류를 전혀 먹지 않을 순 없다. 살코기 위주로 찜이나 조림 형태로 육류를 섭취하면 된다. 음식을 조리할 때는 동물성 기름보다 올리브유·들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조리하는 것이 좋다. 유방암 예방법에서 금주도 빠트릴 수 없다. 술은 폐경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 하루 알코올을 10g(소주 1잔) 이상 섭취할 때 유방암 발생률이 7~10%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알코올 대사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그 자체가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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