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기업들은 왜 비건 시장을 정조준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11:05
  • 호수 17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물성 식품’ 브랜드 출시하고 비건 레스토랑 운영
대체육 등 식물성 식품이 식품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

고기는 옳다. 하지만 언제나 옳지는 않다. 전자가 ‘맛’을 고려한 명제라면, 후자는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문장이다. 국내 식품 기업들이 대체육 등을 활용한 식물성 식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배경이다. 고기의 맛은 최대한 구현하되,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식물성 식품’. 콩으로 만든 고기, 그것을 이용해 만든 가공식품, 식물성 재료로 만든 계란과 우유 같은 식물성 식품을 기업들은 ‘차세대 먹거리’로 삼기로 했다. 일명 비건 식품이라고 불리는 식물성 식품이 소수의 채식주의자를 타기팅하는 상품이 아닌, 식품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대체육 기술, 어디까지 왔나

시판되고 있는 식물성 식품을 먹어봤다. 먼저 만두. 생김새는 일반 만두와 같았다. 반을 갈라봐도 일반 만두의 만두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감은 촉촉했다. 고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오히려 담백한 맛이 났고, 육즙과 같은 풍미도 있었다. 표기된 재료는 식물성 대체육. 원재료에는 두부와 대두유, 농축대두단백 등이 들어있다. 식물성 식품이라고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식감과 맛을 일반 만두와 구별하기 어려웠다. 재료를 잘게 갈거나 다져 넣는 만두 제품의 특성도 한몫했겠지만, 식물성 만두는 대체로 고기만두와 비슷한 맛을 구현하고 있었다. 대체육을 양념에 재워 만든 제육볶음밥은 양념 맛이 강해 건강한 맛을 지향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좋아할 ‘단짠’ 양념을 가미한 대체육의 식감은 이전에 먹어본 콩고기에 비해 부드러웠다.

대부분의 식물성 식품은 콩으로 만든 고기 등 대체육을 가공해 제조한다. 동물 세포를 이용한 배양육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워 대중화되지 않았다. 식물성 식품에 ‘고기’나 ‘육(肉)’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축산업계의 반발이 존재하지만, 대체육이라는 용어가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제품의 속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제품이 대체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체육을 포함한 식물성 식품 개발이 늦은 편이다. 이미 2020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식물성 식품 시장 규모는 2조4600억원, 중국 시장 규모는 8770억원에 달했지만(유로모니터), 한국은 94억원에 불과했다. 그 이유를 한국인들의 유별난 고기 사랑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국내에 들어온 대체육 브랜드들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2016년 이후부터 식물성 식품 개발에 들어간 국내 기업들이 최근 관련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한국 식물성 식품 시장을 본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식품 기업들은 비건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기존 메뉴에 대체육을 접목해 선보이면서 채식 경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은 풀무원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운영하는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 ⓒ시사저널 최준필
신세계푸드가 식물성 정육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더 베러 베키아에누보(좌)와 농심이 운영하는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키친 ⓒ시사저널 최준필

CJ제일제당은 식물성 식품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천명했다. 식물성 식품 브랜드인 플랜테이블을 통해 내놓은 만두와 떡갈비, 함박스테이크 등의 성적도 좋다. 출시 10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 개를 달성했고, 월평균 매출 성장률이 20%에 달한다. 제품 구매자 중 30·40대 비중이 70%다. CJ제일제당은 2025년까지 식물성 식품 사업에서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윤효정 CJ제일제당식품연구소 상무는 “식물성 식품 기술을 가진 기업이 미래 식품 산업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식물성 대체육 상품을 선보인 농심과 풀무원은 비건 레스토랑을 열고 ‘채식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농심은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고, 대체육과 냉동식품, 편의식 등을 내놨다. 농심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운영하는 ‘포리스트키친’에서는 5만~7만원대 비건 코스요리를 판매하는데, 주말 예약률이 100%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비건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버리게 됐다’ ‘고기를 좋아하는데 메뉴들이 거부감 없이 맛있다’는 방문자들의 평도 이어졌다. 풀무원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운영하는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의 주력 메뉴는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한 불고기 덮밥이다. 기존 사업장인 ‘자연은 맛있다’를 운영할 당시보다 2배 이상 매출이 늘어나면서 비건 식문화의 확장세를 입증했다. 올해 3월에는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2호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채식을 먹거리로 삼으려는 식품 기업들의 행보는 이어진다. 이미 전 세계 인구의 40% 가까이가 종교적·윤리적 이유로 채식을 하고 있는 만큼, 식물성 식품 개발과 출시를 통해 해외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 오뚜기는 헬로베지라는 브랜드를 통해 식물성 식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고, 신세계푸드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더 베러 베키아에누보’에서 식물성 정육을 활용한 메뉴들을 선보였다. 기존 베키아에누보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던 인기 메뉴에 식물성 재료로 만든 미트볼 등을 접목해,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대체육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내에 채식 간편식 제품을 새로 출시했다.

환경·윤리적 가치 중시하는 MZ세대…대체육에 긍정적

아직 국내시장은 작지만, 대규모 식품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향후 성장 가능성은 크다.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2022년 250만 명으로 16배 이상 증가했다(한국채식연합).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식물성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20년 1740만 달러(약 226억원)에서 2025년 2260만 달러(약 293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육이 전체 육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040년까지 대체육은 전체 고기 소비량의 6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부각되는 친환경, 동물 복지 등 이슈도 식물성 식품 시장을 키운다. 육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축산용 공장 시설로 인한 환경 파괴 등을 막기 위해 대체육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딜로이트그룹은 최근 ‘기후위기로 부상한 대체식품과 푸드테크’ 리포트를 통해 “식물성 대체육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친환경 시멘트의 3배, 친환경 건물의 7배, 전기자동차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의 11배 이상에 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대체육 배러미트를 개발한 신세계푸드는 MZ세대의 의견을 물었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2030세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체육으로 식탁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71.4%의 응답자가 ‘환경을 생각해서’라고 답했다(복수응답). 동물 복지(53%), 건강한 식습관(43.5%), 식량난 대비(36.5%)가 그 뒤를 이었다.

축산 산업을 위해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문제 역시 식물성 식품을 소비하는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MZ세대가 소비행위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 현상이 식물성 식품 시장에서도 표출되면서 시장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이 세대는 식물성 대체육에 긍정적이다. 이미 42.6%의 응답자가 대체육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 중 78.2%가 향후 경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맛’의 과제는 남아…성분은 안전한가

반면 대체육을 구매할 의향이 없다고 한 응답자 중 72.3%가 우려한 것은 ‘맛’과 ‘식감’이었다. 기존 고기를 대체할 만큼 유사하거나, 혹은 식물성 식품만의 특별한 맛과 품질이 구현돼야 하는 이유다. 특히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고물가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대체육 기반 제품들의 성장도 정체되고 있다. 세계적인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인 비욘드 미트의 매출도 감소했을 정도다. 식물성 식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과거보다 품질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육류 제품에 비해 비싼 가격의 대체육 제품들이 선택받기 위해서는 맛이나 식감, 건강 등 여러 측면에서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영양과 안전성 면에서는 어떨까. 대체육은 조류독감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의 전염병 위험성에서 자유롭고,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식물성 식품의 건강상 우려는 ‘가공’에서 나온다. 육류의 맛과 식감을 내기 위해 가공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진짜 고기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고기로 만든 가공식품과 비교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주원료가 되는 콩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단백질에 부정적인 영향이 가지는 않지만(식품과학저널 영양학 프런티어), 가공식품의 특성상 나트륨 함량이나 칼로리가 무조건 낮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유통되는 식물성 대체육 15개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시험한 결과, 대체육의 단백질 함량(100g당 1일 영양 성분 기준치의 31%)은 기존 소고기 패티(22%)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성 식품답게 열량은 소고기 패티보다 낮았고, 전 제품에서 콜레스테롤은 검출되지 않았다. 포화지방 평균 함량은 1일 영양 성분 기준치의 27%, 나트륨 함량은 26%로 소고기 패티와 유사하거나 다소 낮았지만, 일부 제품에서는 포화지방과 나트륨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소브산, 안식향산, 데히드로초산, 파라옥시안식향산메틸·에틸 등 보존료나 캐러멜색소도 검출되지 않아 안전성 기준을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소고기 패티보다 영양적으로 건강한 대체육 제품을 원한다면 포화지방 27% 미만, 나트륨 함량은 30% 미만인 제품을 고르는 게 좋다고 권고한다.

현재 국내에는 식물성 식품, 특히 대체육 유형에 대한 명확한 원료·제조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비건’ 등 문구를 기재하고 있지만 동물성 원료인 계란 등이 함유된 제품들도 존재한다.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위해 원료, 제조 기준뿐 아니라 정확한 표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소비자원은 “채식을 위해 식물성 대체육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제품의 표시사항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