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 인적 청산-간첩 수사 내홍 진압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3 10: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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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원장, 방첩센터로 국정원 장악…“윤석열 대통령 전폭적 신임”
조상준 전 기조실장 낙마에 권춘택 1차장 견제

2024년 1월1일 대공수사권이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이관되는 가운데, 국정원이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김규현 국정원장과 문재인 정부 서훈·박지원 전 원장의 잔존 세력 간에 이념과 인사를 놓고 치열한 내부 투쟁이 벌어졌다. 이는 국정원 지휘부 간 대립으로까지 비화했다.

가장 먼저, ‘이념적 선명성’을 중시하는 김규현 원장과 ‘법적 하자가 있는 과거 인물의 복귀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조상준 전 기획조정실장의 1차 내부 투쟁이 있었다. 조 전 실장은 지난해 10월, 4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이후 ‘국정원 복원’과 ‘간첩 수사’에 확고한 입장을 세운 김규현 원장과 ‘속도 조절’과 ‘내부 인화’도 신경 써야 한다는 권춘택 1차장 등 고위 간부 사이에 미묘한 갈등 전선이 형성됐다.

그러나 최근 김규현 원장이 신설한 ‘방첩센터’가 창원·진주·전주·제주-민주노총 간첩 사건 등 대공·방첩 수사를 주도하면서, 김 원장이 마침내 국정원을 완벽히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 때 득세했던 ‘비둘기파’를 대신해 ‘매파’가 주류가 된 것이다.

이들은 국정원이 ‘안보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는 신념으로 무장했다. 원훈을 1961년 고(故)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만든 ‘우리는 陰地(음지)에서 일하고 陽地(양지)를 지향한다’로 교체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 김규현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면서 “국정원은 본연의 목적에 맞게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022년 10월26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규현 원장, 文정부 서훈·박지원 잔존 세력과 내부 투쟁”

“김대중 정부 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도 이뤄졌다. 그러나 국정원의 핵심 가치는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사실상 반 토막 내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 핵심은 △대공수사권 폐지(경찰 이관) △국내 정보 수집 폐지(정치 개입 근절)다. 이에 대해 전 국정원 고위 간부는 “대북 관계에서도 통일부가 해야 할 일을 국정원이 맡아왔다”면서 “국정원이 안보기관이 아닌 대북 교섭단체로 전락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인수위원회 때부터 국정원 운영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큰 틀은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국정원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전 국정원 고위 간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부분 해외 정보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안은 수십 년에 걸쳐 ‘소 잡는 칼’을 만들어 놓고서는 지금에 와서 ‘닭 잡는 칼’로만 쓰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文정부 국정원, 코로나 백신·요소수 수급 실패”

해외 정보 부재로 인한 실패 사례로는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와 ‘요소수 대란’이 거론됐다. 2020년 말~2021년 초 코로나19 백신 구입과 관련해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백신 구입을 보건복지부에서 시작했다가 2020년 12월초 질병관리청이 맡게 됐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2020년 9월에야 질병관리본부에서 ‘청’으로 승격했다. 인력이나 시스템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해외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국정원을 백신 구입에 적극 활용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요소수 대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소수 수급 문제가 본격화한 2021년 11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 달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에서 정치 관여 기능을 최소화하고 해외 기능을 확대하겠다고 하고선, 이런 긴밀한 정보가 파악이 안 돼 국민 불편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때 권력기관 개혁의 첫 단추가 국정원이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국정원은 크게 요동쳤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시작된 것이다. 인적 쇄신의 기조는 “문재인 정부 때의 지휘부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윤석열 정부는 신임 국정원장을 임명하기도 전에 박지원 당시 원장을 해임했다. 김규현 신임 원장이 임명장을 받은 것은 2022년 5월27일인데, 박지원 전 원장이 옷을 벗은 것은 5월11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5월10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국가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해 정권교체기에도 국정원장 자리만큼은 연결성을 중시했던 과거 사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2022년 6월에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했다. 본격적인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박지원 전 원장이 정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원훈이 1년 만에 전격 교체됐다.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시절 첫 원훈이었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가 채택됐다. 이에 대해 김규현 원장은 “첫 원훈을 다시 쓰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의미”라면서 쇄신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권춘택 국정원 1차장, 김수연 국정원 2차장, 백종욱 국정원 3차장(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
권춘택 국정원 1차장, 김수연 국정원 2차장, 백종욱 국정원 3차장(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 정부 때 지휘부와는 함께 갈 수 없다”

2022년 7월, 국정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해 각각 박지원·서훈 전 원장을 고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2년 말, 2·3급 간부 인사가 단행되면서 100여 명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이로써 정무직인 국정원장, 기조실장, 1~3차장은 물론 1~3급 간부까지 모두 ‘물갈이’됐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지면서 국정원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상준 전 기획조정실장이 그중 한 명이었다. 기조실장은 국정원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핵심 자리다. 더구나 검사 출신인 조 전 실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론될 정도였다. 조 전 실장은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으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검찰을 떠난 후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를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정원에서 윤 대통령의 ‘복심’은 조 전 실장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그런데 조상준 전 실장이 4개월여 만에 자진 사퇴했다. 국회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2022년 10월25일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그 배경을 놓고 관심이 집중됐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를 놓고 김규현 원장과 조 전 실장 간에 극심한 의견 대립이 발생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 때 좌천된 대공·첩보 인력을 전진 배치했는데,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인 조 전 실장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고 한다. 법적 문제가 있는 인물의 복귀를 반대한 것이다. 반면 김 원장은 법적 처벌이 마무리됐고, 투철한 국가관과 능력이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내부 투쟁은 주지하다시피 김 원장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해 12월27일 발표된 특별사면에는 국정원·기무사령부 관계자가 대거 포함됐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등 전직 국정원장 4명을 포함해 안보·정보기관 관련 17명이 감형·사면·복권됐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12월13일에 형이 확정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까지도 특별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이 이들을 수사해 기소한 검사로서 스스로 다룬 사건 자체를 부정하며 되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적 쇄신이 마무리되고 대공·첩보 인력이 전진 배치되면서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로 인해 지난해 말 ‘방첩센터’가 신설됐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내부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문재인 알박기 인사’가 국정원 곳곳에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대공 수사를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방첩센터를 만든 것”이라면서 “쉽게 말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은 셈”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청사 내에 설치된 ‘이름 없는 별’ 조형물 ⓒ
국가정보원 청사 내에 설치된 ‘이름 없는 별’ 조형물 ⓒ뉴시스

“방첩센터, 김규현 원장의 ‘신의 한 수’”

그러나 방첩센터는 내부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나온 김규현 원장의 ‘신의 한 수’라는 분석도 있다. 국정원의 기존 조직도로 보면, 방첩센터는 대공 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에 두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굳이 국정원장의 직접 지휘를 받도록 했다. 여기에는 김 원장과 차장급 간 미묘한 주도권 싸움이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국정원 1~3차장과 기조실장은 차관급이다. 대략적으로 1차장은 해외·대북 분석을, 2차장은 국내 정보 수집 및 분석과 대공 수사를, 3차장은 과학·산업·방첩 업무를 담당한다. 그중 권춘택 1차장은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 후보군에 올랐을 정도로 국정원 안팎에서 신임을 받고 있다.

권춘택 차장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86년 국정원에 들어와 주로 해외 파트에서 근무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미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에서 정무2공사로 근무했다. 이때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담당했다. 이 때문에 ‘미국통’으로 분류된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 지고 ‘고영 라인(고려대 영문과 출신)’이 부상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고대 영문과 출신으로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이문희 대통령실 외교비서관 등이 있다. 원훈 교체를 주도한 인물도 권 차장으로 알려졌다.

권춘택 차장은 국정원 공채 출신인 ‘정통 국정원맨’이다. 반면 김규현 원장은 외무고시를 패스한 외무부 출신이다. 이 때문에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놓고, 김 원장과 권 차장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김 원장은 속도와 효율을 내세웠지만, 권 차장은 급격한 쇄신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규현 원장은 차장급을 거치지 않는 국정원장 직속 방첩센터를 신설했다.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김 원장은 방첩센터장으로 김○○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이에 따라 김 센터장은 현재 비서실장에서 물러나 방첩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국내 파트에서 주로 활동해 왔으며, 인수위원회에 파견 나갈 정도로 윤석열 정부에서 각광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전 원장은 “김씨는 박근혜 정권 때 잘나갔는데 (문재인 정부 때) 인사 불이익을 받아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똑똑하더라. 내가 4급에서 3급으로 승진시켰다”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줄이 좋았는지 인수위에 가더라. 내가 김씨에게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적 또는 국내 정보를 수집해 이런 소용돌이가 없어야 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방첩센터는 최근 발표된 창원·진주·전주·제주-민주노총 간첩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 방첩센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계-시민단체-예술계 쪽으로 간첩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방첩센터가 신설되면서 간첩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고, 전 정권이 외면하거나 무시했던 민주노총 등에 뿌리내린 간첩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권이 바뀌었고 국정원장도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내홍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정세는 북의 도발, 양안(중국-대만)의 군사적 긴장, 중국-러시아-일본의 군비 확충 등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국정원 중앙 현관에는 ‘이름 없는 별’ 조형물이 있다. 검은 돌 위에는 19개 별이 새겨져 있다. 순직한 요원들이다. 이들의 이름은 물론 직책도 공개되지 않는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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