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판 블랙리스트” vs “소신 인사”…재점화된 ‘경찰국’ 불씨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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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인사…경찰의 정치 예속화 우려”
경찰국 설치에 반발하는 전국총경회의를 주도해 징계를 받은 류삼영 총경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경찰기념공원에서 경찰 총경급 정기 전보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국 설치에 반발하는 전국총경회의를 주도해 징계를 받은 류삼영 총경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경찰기념공원에서 경찰 총경급 정기 전보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다시 경찰 간부 인사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경찰국 신설 반대 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이 대거 한직으로 밀려나면서다. 내부에서 '경찰판 블랙리스트'라며 거센 반발이 일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지난해 경찰국 신설을 두고 일었던 내부 반발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양상이다. 

광주·전남 경찰 직장협의회는 7일 입장문을 내고 "경찰청은 이번 상반기 총경 인사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한 총경들이 복수직급제 도입으로 늘어난 경정급 직무에 대부분 배치됐다"며 "누가 봐도 보복성 인사"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의견을 낸 총경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수사권 조정을 이끌어 온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은 이번 인사로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인사 참사"라며 "복수직급제의 원취지를 살려 능력과 자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공정한 인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총경 인사 대상 총 457명 가운데 10%가 넘는 47명이 지난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총경 회의 참석자로 파악됐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한 단계 아래 계급인 경정이 맡던 자리로 이동하면서 보복성 인사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달 총경 복수직급제를 도입으로 갓 승진한 총경급 경찰관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팀장에 총경 회의 참석자들이 대거 배치되면서 인사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졌다. 부산 지역의 16개 경찰서 직장협의회장단은 "총경회의 참석자 54명 중 47명이 상식 밖의 문책성 인사를 당했다"고 비판했다. 

경찰국은 457명의 인사 기준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윤 청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인사는 인사 대상자의 역량과 자질은 물론 공직관과 책임의식, 대내·외 다양한 평가 등을 고려해 심사숙고한 결과"라며 보복인사 논란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457명에 달하는 보직 인사의 기준을 다 설명해드릴 수는 없다. 총경 복수직급제 도입으로 기존 인사 원칙에 개선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총경 회의 참석자 중 인사 대상이 된 47명 가운데, 통상 총경보다 한 계급 아래인 경정이 맡아온 112상황팀장 등에 28명이 발령됐다. 이례적으로 6개월 만에 인사가 난 총경도 12명이나 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류삼영 총경은 윤 청장의 기자회견 직후 반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지적하며 '문책성 인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다가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윤희근 경찰청장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관내 술에 취한 시민을 놔둔 채 철수했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한 파출소를 점검차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길들이기'라는 지적이다. 류 총경은 "(상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치욕을 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청장이 자기 소신대로 했다면 인사권을 남용하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소문대로 다른 외풍이 불고 상부에 압력이 있었다면 이건 권력 남용에 해당된다"면서 국회에 "국정조사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밝혀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경찰청 차장 출신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윤 청장을 방문해 "이번 인사는 류 총경을 비롯해 총경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에게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보복성 인사"라고 항의했다.

경찰의 '정치 예속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경찰 인사를 "전대미문의 인사"라고 평가하면서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인사가 상식에 부합해야 하는데, 비정상적으로 이뤄진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인 점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회의 참석자들 중에서도 다시 줄세우기를 통해 인사에서 배제한 사례가 있어 보인다"면서 "본청에서도 몇 년 이상 근무자는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전 정권에서 중용됐던 이들을 배척하는 인사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경찰의 정치 예속화가 확실해진 것으로 보여 매우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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