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인’ 효과? 금융지주들, 잇단 주주환원 확대…당국은 불편 기색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8 15: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당 확대 없다면 주주 제안” 엄포에 자사주 매입 나서
당국 “주주 환원 집중하면 취약차주 지원여력 약해져” 우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금융지주들이 예년보다 높은 수준의 주주환원책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의 요구사항이 일부분 수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배당보다 자본 건전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라서다. 주주 요구에도 답하고 정부 눈치도 봐야 하는 금융지주들이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8일 결산 배당금을 865원(연간 2065원)으로 결의했다. 연간 보통주 배당성향은 전년 대비 2.4%포인트 하락한 22.8%, 우선주를 포함한 연간 배당성향은 23.5%로 결정했다. 아울러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1500억원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신한금융의 2022년 총 주주환원율은 30%를 달성했다.

KB금융지주도 지난 7일 현금 배당성향을 2021년과 같은 26%로 결정했다. 배당성향은 그대로지만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의결했다. 이에 지난해 총 주주환원율은 33%(현금배당성향 26%+자사주 3000억원 매입)로 2021년보다 7%포인트 높아졌다.

BNK금융지주 역시 주주환원을 확대했다. 배당성향을 전년 대비 2%포인트 오른 25%로 정했다. 이와 함께 당기 순이익의 2% 수준인 16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발표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들의 잇단 주주환원 확대를 놓고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얼라인은 지난 1월 은행의 배당확대를 요구하며 저평가된 은행주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상향을 위한 주주행동 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시 이창환 얼라인 대표는 “국내 상장 은행들은 해외 은행과 비교해 손색없는 자산건전성, 자본비율, 자기자본이익률을 갖췄지만, 부족한 주주 환원으로 인해 주식 시장에서는 장부상 순자산가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7개 금융지주(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를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대출성장률을 줄이고 주주환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자본 배치를 바꾸고, 목표 주주환원율로는 최소 50%를 제안한 것이다. 아울러 오는 9일까지 공개 주주 서한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주주 제안 등을 포함한 실력 행사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얼라인의 ‘공격’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분위기다. 금융지주들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의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꺼내 들어서다. 얼라인도 반기는 분위기다. 얼라인 측은 KB금융의 결정에 대해 “예상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크게 환영한다”며 당초 계획한 주주제안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BNK금융의 조치에 대해서도 고무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나머지 지주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주주제안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국 “주주 환원보다 자본 건전성부터 먼저 챙겨야”

하지만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확대를 바라보는 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당국 입장에서는 자본 건전성 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배당을 얼마나 할 것이냐 보다는 경제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에서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갖췄느냐가 핵심”이라며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면 배당은 부차적인 문제로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위는 은행권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주주들은 특별대손준비금으로 배당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배당 확대에 부정적이다. 이 원장은 지난 6일 “은행이 단순히 주주환원에만 집중한다면 최근 고금리, 경기침체 등 어려운 여건에서 고통 받는 중소기업·자영업자 등 취약차주에 대한 자금공급과 지원여력이 약화돼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융권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갈수록 주주환원 요구는 커지고 있는데 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실적이 개선되면서 쌓인 이익잉여금 덕분에 배당 확대에는 큰 문제는 없다”면서도 “당국의 우려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적정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