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땅 밑에 ‘잠자고 있는 단층’, 언제든 재앙 될 수 있어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5 15: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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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지뢰’ 단층, 전국에서 영남이 가장 많지만 내진율은 전국 최저
튀르키예 지진 여파, 경북 지역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

너무도 많이 죽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으로 3월2일 현재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추가 여진 예고는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여전히 공포에 빠트리고 있다. 특히 6~7년 전 경주·포항 지진 피해를 직접 경험한 영남 주민들의 트라우마는 남다르다. 활성단층대가 지나가는 영남권은 전국에서 지진 발생 빈도가 가장 높지만 건축물 내진율은 가장 낮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 규모를 7∼7.4로 보고 있다. 튀르키예 지진 강도(7.8)와 비슷한 예측치다. 영남 지역이 지진 재앙의 중심에 있는 이유다.   

지구는 10개 지각판으로 구성돼 있고 물리·화학적 변화에 따라 판이 부딪치거나 멀어진다. 이때 두 판끼리 스치면서 생성된 응력이 단층을 따라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두 판이 멀어지면서 그 틈새로 지각물질이 채워지면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파는 지표면을 흔들고 넓은 지역에서 동시에 감지된다. 종을 치면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라시아 지각판 가운데에 있는 우리나라는 지진 발생 빈도가 낮지만 안전지대는 아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응력이 지각에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반도에 가장 강한 압력을 준 건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동해안과 울릉 지역이 진앙 방향으로 5cm가량 이동했다고 밝혔다.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 여파로 ‘경주·포항 지진’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 1978년부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33년간 규모 5.0 이상 지진은 5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단 9년 만에 규모 5.0 이상 지진이 5회 발생하면서 이전에 비해 3.7배 증가했다. 한반도의 역대급 지진들은 대부분 양산~울산(언양)~경주~포항을 잇는 영남권에서 발생했다. 2016년 9월12일 경북 경주시 남서쪽 8.7km(내남)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이 가장 큰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어 2017년 11월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8km 지점에서 규모 5.4, 2016년 7월5일 울산 동구 동쪽 52km 해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났다. 

2016년 9월12일 규모 5.8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경북 경주 내남면 부지리 주택의 담벼락이 무너졌다. ⓒ연합뉴스
2016년 9월12일 규모 5.8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경북 경주 내남면 부지리 주택의 담벼락이 무너졌다. ⓒ연합뉴스

전국 지진의 32%가 경북 지역에서 발생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44년간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 지진 2101회 중 경북에서만 31.6%인 664건이 발생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조사에 착수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항과 경주를 잇는 영남권에서만 최소 14개 활성단층이 발견됐다. 경북이 다른 지역보다 지진 위험이 높은 이유다. 주목할 점은 지진 규모 상위 10건 중 6건이 최근 10년 새 발생했고 영남권에서 더 자주, 더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경주와 포항은 약한 해성퇴적층이 많아 상대적으로 지진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이 지진에 가장 위험한 지역이지만 건축물 내진율은 최하위다. 경북도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도내 민간건축물 내진율은 10.9%로 전국 평균(15.3%)에도 크게 못 미치는 꼴찌 수준이다. 공공시설물 내진율도 54.7%로 전국 평균 66.2%보다 훨씬 낮다. 특히 내진 대상 4144곳 중 1879곳은 보강이 시급한 상태로 조사됐다. 경북도는 경주·포항 지진 이후 5개년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노후건물이 너무 많아 재정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게 경북도의 설명이다.

대규모 화학공단과 원전이 있는 울산도 지진 피해 위험 지역이다. 울산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울산의 전체 면적 1061㎢ 중 20㎢가 연약지반이다. 이런 곳에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 있고 설비 노후화는 극히 심한 상태로 25년 이상이 60%, 40년 이상이 17%나 된다.

땅 밑에는 액체위험물질과 가스를 운반하는 지하매설배관이 1000km나 깔려 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는 원자력단지가 있다. 그런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시설물은 15% 남짓에 불과하다. 신승부 전 산업안전공단 울산지도원장은 “울산에 규모 5.0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재앙 수준이 될 수 있다”며 내진설계 강화를 주문했다.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2층 이상 또는 200㎡ 이상 건물은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규정이 여러 차례 강화됐지만 소급 적용이 안 되다 보니 수많은 노후건물은 사각지대에 위험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포항 지진 당시 피해가 집중됐던 곳도 오래된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이었다.

현행법상 국가지진위험지도는 5년 주기 개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2013년 제작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현행 유지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개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최근 지진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만큼 혁신모델 정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017년 11월15일 규모 5.4 지진이 발생해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 연합뉴스
2017년 11월15일 규모 5.4 지진이 발생해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지진 발생 가능 규모는 7∼7.4
 
국내 지진 발생은 디지털 관측이 시작된 1999년 37회에서 지난해 77회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한반도 지진의 대다수가 4~15km 사이 얕은 지각에서 발생한다. 이 정도 깊이의 지진은 진원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거의 감소되지 않은 채 지표에 전달된다. 지진 규모가 작더라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포항 지진 피해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7.4,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7.0으로 각각 추정한다.

전문가들은 강진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단층대가 많은 영남 지역을 꼽고 있다. 지질학자인 황상일 경북대, 윤순옥 경희대 교수가 2001년 공동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체 지진의 32%는 영남 지역에서 발생했고, 경상분지에서 지진 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기상청이 최근 발간한 ‘2022 지진연보’와도 일치하는 분석이다. 

대륙 땅덩어리는 움직이고 있다. 이때 판 경계부의 압축력이 내부로 전달되고 단층이 붕괴돼 지진이 발생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그랬듯이 튀르키예 강진도 한반도의 단층을 흔들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740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 이후 국내 지하수위를 탐지한 결과 경북 문경 관측정이 7cm 상승했다. 튀르키예 지진에 경북 지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지진파로 벌어진 암석의 틈새로 지하수가 들어가 수위가 올라가면 지진을 촉발한다는 사실은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의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과학자들은 단층을 ‘숨겨진 지뢰’라고 부른다.

영남권에는 잠자고 있는 단층이 많다. 응력이 계속 쌓여 이 잠든 단층을 깨우면 지진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규모 7.0의 지진을 예고한 바 있고, 진원지는 영남 지역을 꼽고 있다. 지진에 가장 위험한 곳이지만 건축물 내진설계는 전국 최하위다. 그렇다고 정부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은 '대비하는 곳에선 재해, 설마 하는 곳에선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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