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추억’ 되살리는 반도체 불황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7 11:05
  • 호수 17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역수지 적자와 반도체 침체로 원화 가치 재하락
코스피 끌어올린 외국인들 행보 주목

원-달러 환율이 다시 1320원까지 치솟았다. 2월3일 장중에 1220원까지 하락했던 걸 감안하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100원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지난해 9~10월에도 원화 약세가 있었다. 당시 최고치는 1440원이었는데, 아직 그 수준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지금이 그때보다 더 나쁘다. 작년엔 달러 강세가 원화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의 위상을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14까지 상승하면서 ‘킹달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주요국 대부분이 높은 물가와 금리 인상, 경기 둔화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세계 경제가 어려운 만큼 달러가 강해졌다. 유로나 엔처럼 달러와 견줄 수 있는 안전통화가 약세를 면치 못했던 것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운드화다. 영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 파운드화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 정책 내용이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의 통화정책 방향과 상충됐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BOE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7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수요 억제에 주력하고 있었다. 반면, 정부는 수요 진작에 나섰다. 이런 정책 미스로 파운드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하락해 달러-파운드 환율이 1985년 3월 이후 최저치인 1.1달러까지 밀렸다.

ⓒ연합뉴스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다시 1320원까지 치솟으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 환전소 모습 ⓒ연합뉴스

이번엔 ‘킹달러’보다 국내 요인 더 커

이번에도 달러가 강하지만 작년만큼은 아니다. 달러 인덱스는 2월초 101에서 현재 105까지 4% 정도 상승하는 데 그치고 있다. 같은 기간 원화는 8% 넘게 절하됐다. 달러 강세를 제외한 4% 정도가 국내 요인 때문에 발생한 부분이다. 지난해 4분기에 우리 경제는 전분기 대비 -0.4% 성장했다. 유럽이 0.1% 성장했고, 똑같은 방식으로 환산할 경우 미국이 0.7% 넘게 성장했다. 우리 경제가 유독 약해서인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7%로 0.3%포인트 낮췄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올린 것과 비교된다.

2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만 사상 최대인 180억 달러를 기록했다. 12개월째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오랜 시간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진 건 25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가장 많은 흑자를 안겨줬던 대중국 무역 역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수출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수출이 줄어들고 무역수지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경기가 둔화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올 1분기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5.2% 상승했다. 작년 12월 5.0%보다 높다. 올 들어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공공요금 인상을 고려하면 앞으로 몇 달간 5% 물가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불황 역시 심각하다. 지난해 4분기에 SK하이닉스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고, 삼성전자 역시 2700억원밖에 이익을 내지 못했다. 반도체 경기 둔화는 외환위기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1995년까지 반도체 경기 호황이 계속되자 정부는 해당 산업에서 300억 달러 가까운 무역흑자가 발생할 걸로 전망하고 경제 계획을 세웠다. 기대와 달리 1996년부터 반도체에서 큰 폭의 적자가 발생했고, 외환위기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최근 반도체 회사들의 이익이 크게 줄어드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외환위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모든 사항이 원화를 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원화 약세는 지난해처럼 자연적으로 치유되기 힘들다. 지난해 ‘킹달러’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미 많은 돈이 달러 매수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의심하게 되고, 의심하는 순간 매수 카르텔이 깨지게 된다. 그러면 달러가 빠르게 약해지는데, 이번에는 매수 카르텔이 없기 때문에 가격 변화가 천천히 이루어질 것이다.

원화 약세가 주로 국내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만큼 원화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해당 요인의 개선이 필요하다. 최소한 3월에는 무역수지가 적자에서 벗어나야 하고, 반도체 경기도 개선 조짐을 보여야 한다.

ⓒ연합뉴스
문동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2022년 12월1일 수출입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화 절하는 국내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그렇다면 원화 절하는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까. 원화가 절하될 때 수출 채산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확률이 높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반대 의견도 있다.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약하다는 건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미이므로 원화가 절하될 때 주가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뒤의 얘기가 맞다. 원화가 절상되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나빠지지만 원화를 절상으로 이끈 강한 경기의 힘이 환율 영향력을 압도해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원화 절하는 국내 경기 부진 때문이다. 다른 나라 통화보다 원화의 약세가 심할 때 주식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커지는데 지금이 그런 상태다.

외국인 매수도 생각해야 한다. 1월에 주가가 상승하고, 2월에 코스피를 2500 부근에 묶어 놓았던 힘은 외국인 매수다. 원화가 빠르게 절하될 경우 외국인은 환차손 우려 때문에 우리 시장에 적극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2월초에 주식을 산 외국인이 주가 하락과 원화 절하로 11% 가까운 손실을 본 걸로 추정된다. 이렇게 단기간에 큰 손해가 나면 외국인은 추가 매수를 꺼릴 수밖에 없다.

올해 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매수 덕분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매수의 35%가 몰릴 정도였는데, 이 정도로 매수가 몰리면 기업 내용에 관계없이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급에 의한 상승은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화가 약해지면서 외국인 매수가 줄어들거나 매도로 변할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들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순차적으로 코스피 하락을 가져오게 된다.

상황이 어려워졌다. 한 달 넘게 코스피가 박스권 상단을 뚫지 못한 상태에서 원화 절하 등 시장 환경이 나빠졌다. 주가가 박스권을 넘기 힘들 것으로 보이므로 주식 비중을 줄이는 게 맞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