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모든 길에 檢, 檢, 檢…‘정순신 사태’는 예견된 참사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3 14: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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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단’, 대통령에 직보…시스템 ‘흔들’ 인사검증 ‘부실’
검증팀 ‘前 정부 조사’에 더 집중한단 얘기도…“尹 스타일 변해야”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검찰 출신’들이 또 다른 ‘검찰 출신’ 공직 후보자를 추천·검증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검증하고 검증받는 자, 임명하고 임명되는 자들 사이엔 ‘연수원 동기’ ‘선후배’ ‘사단’ 등 끈끈한 관계표가 자주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정부 출범부터 인사 검증 과정에 끊임없이 공정성 의문이 제기되고 ‘검찰공화국’ ‘용산 검찰’이라는 오명이 이어져 왔다. 역시나 ‘검찰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사태를 두고 검찰의, 검찰에 의한 인사 시스템이 가져온 ‘예견된 참사’였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2월21~23일 한국갤럽이 윤석열 정부 9개월간의 분야별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공직자 인사’가 가장 높은 부정률(56%)을 기록하기도 했다(응답률 9.5%,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최근 온라인상에서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도 검찰 출신이 맡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떠돈 것도 이러한 여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견제와 균형 없이 시스템 보완은 미봉책”

이번 정순신 사태는 현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에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 역시나 검찰 출신이 시작해 검찰 출신이 끝맺는 정부 인사 검증 3단계에 대한 지적이 주를 이뤘다. ①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의 후보자 추천을 시작으로 ②한동훈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1차 검증을 거쳐 ③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2차 검증까지, 모든 절차의 책임자가 검찰 출신 ‘윤석열 사단’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또 다른 검찰 인연을 검증하다 보니, 아들의 학교폭력처럼 당연히 파악했어야 할 사안조차 거르지 못했거나 혹 거르지 않았을 거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실에서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다 전 정부 인사들의 비위를 조사하는 데 집중한 탓에 이번과 같은 인사 실패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엔 내부적으로 ‘검증2팀’으로 부르는 ‘공직감찰팀’이 구성돼 있다.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검증팀’과 별도로 기존 공직자들의 비위를 조사하는 팀이 새로 마련된 것이다. 최근 이곳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유시춘 EBS 이사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직 검찰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이 인사 검증 업무보다 과거 정부의 비위 등을 조사하는 업무에 더 집중한 나머지 계속 검증 부실과 인사 난맥상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최종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의 인재풀이 지나치게 좁은 점도 인사 실패의 주요한 문제로 지적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인사를 배제하는 이른바 ‘뺄셈 인사’를 거듭한 탓에, 인사는 더욱 획일화되고 정부의 국정운영을 상징할 만한 ‘파격’ 인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준비 기간이 짧다 보니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검사들만 믿고 맡기려 한다. 그렇게 임명된 검찰 출신들이 인사 검증을 주도하고 있으니 계속 사적 인연, 사적 네트워크가 먼저 발동하고 관대한 잣대가 가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 조직 전반에 ‘견제와 균형’이 무너져 있다고도 지적했다. 윤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인사수석에는 호남 출신 정찬용을, 이를 검증하는 자리인 민정수석은 영남 출신 문재인을 임명했다.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견제와 균형을 지키고자 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인사에 있어 근본적인 인식과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검증 시스템을 보완·강화해도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스템보다 가깝게 작동하는 검찰 보고 라인

인사 검증 외에도 대통령실 내 검찰 출신 인사들은 기존 시스템을 넘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대통령실에는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복두규·이원모·이시원 외에도 윤재순 총무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 검찰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비서관급인 이들은 조직도상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지만, 각종 사안에 대해 자주 대통령에게 직보(직접 보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행정관급 실무 라인에서 각종 정보를 올려도 검찰 출신 인사에 대한 검증 내용 등 검찰과 관련한 부분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검찰 라인이 공적 시스템보다 가깝게 작동한다는 건 지난해 10월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의 사표 논란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당시 조 전 실장은 직속 상사인 김규현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돌연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한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 전 실장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한 경력이 있으며, 흔히 ‘좌동훈(左한동훈)-우상준(右조상준)’이라 불릴 만큼 윤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 전 실장이 같은 검찰 라인을 통해 ‘비정상적인’ 보고를 한 것을 두고 검찰공화국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검찰 편중 인사가 특정 집단의 논리에 매몰돼 중요한 걸 놓치는 ‘집단사고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인사 검증을 비롯해 국정의 주요 사안들을 주로 ‘적법’ ‘위법’의 기준에 치우쳐 판단하기 때문에 국민 정서와 다소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데 대해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이들을 견제할 ‘레드팀’이 내부에 전무하다는 것도 더욱 우려되는 지점이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실 내 검찰 인사들이 대부분 차기 총선에서 서울 강남·영남권 등 경쟁력 높은 지역구에 출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통령실에서 최소 7~8명이 내년 총선에 도전할 것이며, 윤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공천을 당에 강하게 요구할 거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따라서 총선 모드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대통령실 내 검찰 출신 인사들은 윤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논란의 소지를 만들기보다, 안전한 보신의 길을 택할 거란 관측이 많다. 이러한 기류가 자칫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을 비롯해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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